눈치채지 못했던 오버페이스
최근 들어 러닝에 다시 재미가 들려 밤마다 달리고 있습니다. 멋대로 걷다가 흥이 오르면 전속력으로 질주하곤 했던 예전과는 다르답니다. 이제는 제대로 목표 거리도 세우고 페이스와 케이던스라는 것도 확인합니다. 아마추어라곤 하지만 나름 ’러너‘라는 사람이 되어가는 중인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번 이야기한 적 있던 Run & Coffee 모임 일화를 기억하시는지요. 그때의 저는 “오늘은 630 페이스로 달리고자 하는데, 이보다 더 느린 분 계신가요? 다들 괜찮으시죠?” 라고 묻는 모임장 러너 분의 질문에 눈만 끔벅거렸습니다. 다들 좋다거나 혹은 더 빠르다는 분도 계셨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답변은 “페이스 같은 걸 한 번도 재 본 적 없을 정도로 처음이라서요...“ 하고 멋쩍스레 웃는 것뿐이었습니다. 630은 6분 30초를 뜻하는 말입니다. 즉, 1km를 6분 30초에 달리는 속도인 것입니다. 630 페이스로 호기롭게 첫 러닝을 시작한 그날, 저는 결국 3.5km 정도쯤 왔을 때 도중에 탈주를 하고 말았던 민망하고 쓰린 기억이 있습니다.
같이 하는 러닝이 아닌 저 혼자만의 러닝을 시작한 것은 그로부터 2주 정도 흐르고 난 뒤입니다. 나이키 런클럽 어플을 처음 깔고 설레는 마음으로 경의선 숲길을 뛰었습니다. 목표로 세운 시간도 페이스도 없었습니다.
“일단 나에게 가장 편한 느낌을 주는 속도로 달려 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뿐히 걸음을 내닫기 시작했습니다. 나에게 가장 편안한 속도, 그것을 우선 알아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숨이 헐떡이지도 않고 코로 편안히 숨을 쉬며 10분이고 20분이고 30분이 되어도 쉬지 않고 계속 평정한 상태로 달려 나갈 수 있는 속도. 그렇게 3.5km를 달리고 나서 저만의 페이스를 알게 되었습니다. 딱 7분 30초였습니다.
아, 나의 페이스는 7분 30초구나.
7분 30초 페이스로 3.5km를 달린다. 이것이 저의 새로운 러닝 습관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왜인지 몸이 더 가볍고 기운이 넘쳐흐르는가 싶더니 7분 페이스로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7분 페이스로 평소 달리던 3.5km를 가볍게 통과하고서도 왜인지 아직도 힘이 남아, 이렇게 된 이상 5km까지 달려보자는 생각에 조금 더 전력을 냈습니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러닝은 성공이었습니다. 한껏 뿌듯함에 취해 집으로 돌아왔는데, 샤워 후 잠자리에 들 무렵 갑작스레 저를 반긴 것은 무릎 바깥쪽의 낯선 통증이었습니다. 찾아보니 러너들에게 자주 찾아온다는 미미한 장경인대염이었지요. 결국 러닝을 쉴 수밖에 없어 일주일 동안 몸이 근질거리는 것을 견뎌야 했습니다.
조금 더 욕심내려다가 일주일을 못 뛰는구나. 이런 낭패감이 들면서 꿉꿉한 감정을 곱씹었습니다. 달리고자 한 만큼 달려낼 수 있다고 해서 나에게 맞는 속도인 것은 아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요.
그러던 중, 혼자 여행을 갔다가 식당에서 혼밥을 하던 점심의 일입니다. 냄비에서 끓는 전골을 보며 입맛을 다시고 있는데, 문득 어떤 안도감 비슷한 즐거움이 들었습니다. 아, 원 없이 천천히 먹어도 되겠다. 회사에서는 늘 동료들의 속도에 맞추고자 허겁지겁 먹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까. 그러다 아, 하고 어떤 깨달음이 찾아왔습니다.
오버페이스였던 것입니다. 평소보다 빠른 속도로 달렸던 그 밤도, 매일 동료들의 속도를 살피며 급한 마음으로 젓가락질을 하던 점심시간도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오버페이스를 하는 순간들이 참 많습니다. 타인과 어우러져 살다 보면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지요. 일행들의 먹는 속도에 맞추려고 덩달아 젓가락질이 빨라지고, 피곤해도 정해진 출근 시간에 맞추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나고, 합의된 마감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폭작(爆作)합니다. 달릴 생각이 없었는데 경쟁자를 보면 마음이 조급해져, 계획에도 없던 일을 벌이다가 체력이 동나 흐지부지 던져버립니다. 어쩌면 현대에 의젓한 사회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나의 바깥의 것들의 속도를 면밀히 살피고 나의 생각과 행동을 잘 맞추는 감각을 기르는 일인 것일까요.
하지만 돌이켜 보면 저의 페이스는 한 발짝씩 더딘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언제나 친구와 함께 가장 마지막까지 급식실에 남아있을 정도로 천천히 먹는 학생이었던 걸요. 가족과 식탁에 둘러앉아도 결국 마지막에 혼자 남는 젓가락을 깨작거리는 사람은 저입니다. 신발 끈도 아주 느릿느릿 묶어 ‘거북이‘라는 별명이 생겼던 어린이였지요. 그런데 이러한 제 고유의 속도를 잊고 무리해서 오버페이스로 살아야 했던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그래서 저에게 러닝이 더 소중하게 다가왔던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일상을 살며 어쩔 수 없이 감내해야 하는 오버페이스의 순간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의 페이스로만 달릴 수 있는 차분하고 온전한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편안하게 달리는 감각. 정말이지 달리고 있을 때는 그것에만 집중합니다. 몇몇의 러너들이 제 옆을 슝 하고 지나가도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페이스로, 저는 저의 페이스로 달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교차하며 한 발씩 딛는 두 발의 규칙적인 리듬을 메트로놈 삼아 나만의 리듬을 만듭니다.
오히려 힘이 넘쳐 평소보다 빠르게 달려질 때는 의식적으로 마음을 챙기고 속도를 줄여 다시 평정한 걸음을 유지합니다. 그러다 굼떠지는 것 같으면 다시 조금 더 기운을 내고요.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7분 30초 언저리의 페이스로 달리기만 하면 너무 바쁘게 마음을 의식하지 않아도 너무 빨라지거나 힘이 떨어지지 않은 채 자연스레 일정한 속도로 달려집니다. 달리고자 하는 속도가 아닌, 달려지는 속도가 내 속도라는 것이겠지요.
우리는 자주 외부의 것들에 속도를 맞춰야 합니다. 그것이 꼭 속상한 일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우린 모두 의젓하고 섬세한 사회인이니까요. 하지만 고군분투하는 속에서 나에게 가장 편안한 속도를 찾는다, 라는 감각을 점차 잃어왔던 것은 아닐까요?
그렇기에 한편으로 나의 내부의 것들에 속도를 맞추는 시간도 가질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컨디션, 호흡, 근육의 감각, 기분과 감정 같은 것들에요. 지금의 저에게 러닝은 나의 외부의 것들이 아니라 나의 내부의 것들에 속도를 다시 바르게 정돈하는 의식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꼭 러닝 뿐이 아니라 글쓰기 같이 규칙적인 리듬을 갖고 하는 것들은 그런 일의 일종이 되겠지요.
여러분도 무심코 벌어지고 있는 일상 속 오버페이스의 순간들을 ‘아차’하고 알아차려 보면 좋겠습니다. 그럴 땐 ‘오버페이스를 하고 있구나‘ 받아들이고, 또 다른 순간엔 내가 나에게 맞는 가장 편안한 속도로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입니다. 무엇에 임하더라도 일단 먼저 나에게 가장 편안한 속도를 찾는다는 감각을 잊지 않도록 해 봅시다. 달려나가는 건 그 뒤입니다.
자, 함께 러닝 어떠신가요?
추신. 10월에 동료와 함께 10km 마라톤을 나가기로 했는데요. 제가 과연 잘 할 수 있을까요? 걱정 반 설렘 반인 요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