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고 있던 물성의 풍요로움
“다시 현금을 써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것은 이번 달 초입니다. 원래 월급은 통장을 스쳐갈 뿐이라곤 하지만, 매달 제가 쓴 금액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는 일의 연속입니다. ‘한 달에 70만 원’이라는 상한선을 세워 둔 의미가 없을 정도로 벌써 3개월째 100만 원을 훨씬 웃돌고 있었거든요. 신용카드의 명세서를 보면서 ‘이건 아니지‘라고 고개를 도리도리 젓다가 마침내 특단의 조치를 취해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입니다.
소비 습관을 고치고 싶다면 신용카드를 버리고 현금을 써라. 유튜브나 경제 콘텐츠에서 이런 조언을 하던 것이 떠올랐습니다. 신용카드를 쓰면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직접 보이지 않기 때문에 뇌에서 소비를 한다고 인식하지 못한다나요. 대신 현금을 쓸 땐 돈이 빠져나가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 더욱 지갑을 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거나 말거나, 호기심이 생겨 현금 쓰기 챌린지를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소비를 절제하기 위해 한동안 작고 귀여운 동전지갑에 현금을 들고 다녔던 동료 J님이 떠올라 물었습니다. “일주일에 딱 정해둔 금액만큼 현금을 들고 다니고, 혹시 몰라 신용카드는 늘 가지고 다녔어요. 요즘은 현금이 안 되는 가게들도 있거든요.“ 하지만 그것은 무척 꼼꼼하고 계획적인 J님이기에 가능한 방법이라는 생각에, 저는 저의 소비 생활에 좀 더 알맞은 방법은 무엇일까 고민했습니다. 주말이면 언제나 카페를 찾아가 혼자만의 힐링 시간을 보내는 제가 도전해 보기로 한 것은 ‘이번 달의 커피 값은 중고책을 판 돈으로 해결하기‘입니다. 책장에 꽂혀 있는 책 중에 더이상 읽지 않는 책을 중고서점에 팔아 현금을 얻으면, 그 돈으로 좋아하는 카페에 가는 것입니다. 물건도 비우고 돈도 벌 수 있어 일석이조입니다.
집 안의 책장을 정리해 7권 정도를 팔았더니 수중에 남은 것은 만 팔천 원 정도. 덕분에 오랜만에 지폐와 동전의 감촉을 느꼈습니다. 모든 게 디지털인 요즘, 만지는 것이라곤 플라스틱 재질의 카드뿐이었던 일상에 난데없이 나타난 지폐와 동전은 괜스레 정겹고 아기자기하게 느껴졌습니다. 손바닥 위에 고스란히 담긴 한 줌의 지폐가 무척 소중하게 느껴져 고이 접어 동전지갑에 넣었습니다. 결제 후 돌려받은 카드를 매번 무심하게 쑤셔 넣던 기분과는 달랐습니다. 지퍼를 닫는 순간 마치 무언가를 든든히 잘 보관했다는 뿌듯한 기쁨이 함께 마음을 부드럽게 스쳐 지나갔습니다. 지갑이 볼록해졌는데 마음까지 부풀어 오른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곳간에 쌀을 쌓아둔 것마냥 든든해져, 새삼 ‘물성(物性)’이 주는 풍요로움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들고 다녀야 하는 것은 번거롭다. 이러한 생각으로 우리의 생활을 이루던 많은 것이 데이터화된 지 어느덧 10년 이상 흘렀습니다. 지갑 안에서 여러 장의 지폐와 묵직한 동전들은 사라지고 가볍고 날렵한 카드 한 장이 남았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카드마저 이제는 휴대폰에 ‘페이’라는 형태로 담기게 되었지요. 돈이 오고 가고, 건네고 받는 감각은 오르내리는 잔고 속 숫자로 바뀌었습니다. 종이책은 전자책이 되고 USB는 드라이브가 되고 전화기와 카메라는 버튼 하나가 되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이라고는 네모나고 딱딱한 것, 더 나아가 매끄러운 스크린이 전부인 일상입니다. 말하자면 물성을 대체해 모든 게 데이터로 담은 세계, ’가상‘에서 살아가는 감각에 익숙해진 것이지요.
가상의 일들은 나도 모르게 스윽 처리되고 맙니다. 고요하고 은밀하고 매끄럽게 말입니다. 결제도 그중 하나입니다. 송금 버튼 하나만 누르면, ‘버튼 밀어 결제하기’ 버튼만 누르면, 카드 한 장만 리더기에 부드럽게 쓱 긁으면 돈이 오고 가 있습니다. 그 덕에 많은 일이 무척 편리해졌지만 생각해 보면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고 은밀하게 척척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조금은 무서운 일이기도 합니다. 조금만 방심하고 있으면 손 쓸 수 없는 지경까지 훅 흘러가 있곤 하니까요.
현금을 받은 순간, 제가 느꼈던 것은 기쁨입니다. 단순히 돈이 생겨서 기쁜 것이 아니었습니다. 돈이라는 것을 직접 보고 만지고 넣고 건네는, 일상에서 잊고 있던 감촉이 되살아났기 때문입니다. 돈을 찾고, 돈을 매만지고, 돈을 세고, 돈을 접고, 돈을 펴고, 지갑에 가지런히 넣어 두고, 동전을 헤아리고, 찰랑이는 소리를 듣고... 사람의 손에서 손으로 돈을 건네고 받는 모든 과정이 새삼 신나고 그리웠던 것입니다.
돈을 건네는 행위로써 내가 얻고 싶었던 소중한 가치를 교환한다. 소비라는 것은 그러한 의미입니다. 하지만 카드로 쓱, 쉽게 처리하는 시대가 되면서 동시에 그 풍요로운 뜻 또한 ’결제‘라는 짧고 딱딱한 단어 하나로 함축되어 버린 것만 같습니다. 소비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성실한 사치와 보람마저 카드를 쓱 긁고 마는 시간만큼 단축되어 금세 휘발되고 있었습니다.
책을 팔았던 날로부터 얼마 뒤, 밤늦게까지 놀다가 귀가했던 어느 금요일 밤이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택시를 탈 수도 있었던 그때, 20분을 걸어 버스정류장까지 왔던 것은 며칠 전 지갑에 직접 켜켜이 채워뒀던 만 팔천 원의 감각이 선명히 남아있었기 때문입니다. 택시를 타면 딱 만 팔천 원. 손바닥 안에 풍성히 담겼던 그 감각을 몽땅 써버리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처럼 현금의 존재감을 잊고 살았다면, 만 팔천 원 정도야 카드로 금세 긁어버리고 말았을 테지요.
추석 연휴를 맞아 본가에 내려온 지금, 오늘도 본가의 제 방에 있던 책을 한 보따리 들고 나와 시내의 중고서점에 팔았습니다. 현금을 담기 위해 엄마로부터 안 쓰는 지갑도 선물로 받았습니다. 손에 쥔 지폐는 만 이천 원. 운전기사 역할을 톡톡히 해 준 아빠에게 시원한 바나나라떼 한 잔을 사 주고, 저도 카페에 와서는 라떼 한 잔을 마시며 글을 쓰고 있습니다. ‘앗, 거스름돈이 없는데... 오 딱 6천원이네요.’ 하시던 사장님께 딱 맞춰 6천 원을 건넸던 순간의 산뜻한 기쁨이란!
지금 지갑에는 지폐 3천 원과 동전 8백 원, 카페 쿠폰만이 정갈하게 담겨 있습니다. 물성이 가득한 세상은 조금은 번거롭고 귀찮습니다. 하지만 쉬워지니까 가벼워집니다. 소홀히 대하게 됩니다. 그 감각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현금을 쓰는 연습을 이어가 볼까 합니다. 눈으로 보이니까 고작 100원짜리도 소중히 어루만지게 됩니다. 어렸을 때 문구점 앞에서 100원이라도 떨어뜨리면 얼마나 마음 속상해하며 애타게 뽑기통 아래와 불량식품 매대 주변을 샅샅이 뒤졌는지요. 그때의 간절함이란 ‘어린아이에게 100원은 큰돈이었으니까’라는 이유뿐이었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땡그르르... 떨어진, 내 손바닥에 고이 만져졌던 동그랗고 미지근한 물건의 존재가 그만큼의 무게만큼은 나의 마음속에 얹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