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셔츠를 다림질하는 것
담백하다는 것은 뭘까.
어떤 사람들을 보며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헤아려 보면 제가 본받고 싶은 분들입니다. 글을 쓰는 작가로서 저에게 큰 영향을 준 마쓰우라 야타로, 학창 시절부터 정말 좋아했던 브랜드인 디앤디파트먼트를 설립한 나가오카 겐메이,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 등등... 일본의 각 분야에서 자신만의 철학과 활동으로 성실히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사람들을 볼 때면 언제나 어떤 담백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브랜드의 대표나 디렉터, 작가분들에게서도 뭐랄까 깨끗한 든든함과 또렷한 아우라 같은 것들을 종종 느낍니다. 저 역시 그런 담백한 힘 즉, 코어가 느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하면서 그런 담백함이란 어디서 오는 걸까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들이 입는 옷이나 쓰는 물건에서 드러나는가 하면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았거든요. 다만 어렴풋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들에겐 한 가지, 올곧은 삶의 테마가 있는 것 같다는 느낌뿐이었습니다.
그러다 어젯밤의 일입니다. 다음 날 정중한 자리에 갈 일을 준비하며 입으려고 처음으로 다리미를 꺼내 흰 셔츠를 다리고 있었습니다. 뜨거운 증기를 뿜는 다리미를 손에 쥐고 마치 화선지 위에 신중히 획을 긋듯 셔츠 위의 주름을 하나씩 하나씩 폈습니다. 다리미를 쥔 손을 부드럽게 움직이며 옷감을 여러 번 어루만졌습니다. 팔이 조금 아려 올만큼 한참을 그러고 있으니 어느샌가 오롯이 옷걸이에 걸린 흰 셔츠와 저만이 대면하는 경건하고 맑은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아, 흰 셔츠 같은 것이구나. 그때 문득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만의 흰 셔츠를 앞에 두고 성실하게 다리고 있는 것이구나. 소재나 빛깔, 주름 등은 조금씩 다르지만, 각자가 마음에 드는 것으로 고른 깨끗하고 부드러운 흰 셔츠. 그들의 삶에서 느껴졌던 인상은 비유하자면 그런 것이었습니다. 정중할 정도로 가지런한 가짐새,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느껴지는 온화한 분위기. 그 틈 속으로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자신을 향한 유머와 인간다움. 이 모든 것을 만드는 것은, 그들 고유의 다림질이라는 것을요.
모두에게는 삶이라는 흰 셔츠를 다리는 다리미 같은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곱게 다려가기 위해 쥔 견고한 도구, 말하자면 올곧은 삶의 테마 즉, 철학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철학만 가지고는 삶을 다릴 수 없습니다. 주름을 펴내기 위해선 언제나 따뜻한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 철학이 필요합니다. 나만의 이익이나 물질만을 위한 이기적이고 냉정한 철학이 아닌, 나와 타인 더 나아가 우리가 사는 이곳의 풍경을 향한 연민과 사랑을 품은 따뜻한 철학 말입니다.
'담백하다'는 말을 떠올렸을 때 맑고 깨끗한 이미지임에도 어딘가 온화함이 느껴졌던 것은, 한없이 냉철한 자기 절제와 규율로 다려낸 삶이 아니라 그러한 따뜻한 철학으로 다려낸 삶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입니다. 담백하다고 느껴졌던 분들이 쓴 책, 만든 브랜드, 영화 등을 보면 맑고 단정한 철학으로부터 나온 자신의 생활과 타인, 풍경을 사랑스럽게 여기는 마음이 늘 느껴집니다.
담백(淡白). 맑을 담에 흰 백을 씁니다. '맑을 담'이란 한자에는 물(氵)도 있고 불(火)도 있습니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뭉근히 불사를 수 있는 두 가지 따뜻한 마음이라고 하면, 사람과 풍경을 향한 사랑과 어떤 분야에 대한 열정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로부터 배어 나온 온기가 나의 삶을 단정하게 다리고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온화한 기분이 들게끔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과 열정을 바른 방향으로 쏟을 줄 아는 분명한 마음갖춤. 그러한 성실한 다림질에서 느껴지는 인상, 그것을 담백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흰 셔츠는 삶.
다리미는 철학.
온기는 생활을 향한 사랑.
담백함이라는 것은 셔츠라는 나의 삶을 앞에 걸어두고, 정중하고 온화한 철학을 갖는 것입니다. 주름지기 십상인 나의 일상을 매일 정갈하고 온화하게 다려줄 수 있는 철학은 과연 무엇일까요? 삶이라는 셔츠를 다리기 위해 갖추고 싶은, 하나면 충분한 나의 '철학'을 고민합니다. 철학이 여러 개 있어도 피곤할 따름입니다. 다리미는 대개 한 개면 충분합니다.
그러한 철학이란 것을, 방금 전 열거했던 존경하는 분들을 통해 바라다봅니다. 예를 들면 마쓰우라 야타로에겐 '기본', 나가오카 겐메이에겐 '롱 라이프'인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내게 필요한, 언제든 생활을 향한 따뜻한 사랑과 열정을 발열할 수 있는 견고한 철학은 무엇일까요?
저의 후보로는 다음의 것들로 삼아 보고 싶습니다.
기분 좋은 풍경.
그리고 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