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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넼 Feb 24. 2021

사이코패스 아들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자크 라캉, 《에크리》를 통해 다시 본 영화 '케빈에 대하여(2011)'

  근대화 이후 인간 이해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개인과 인간 내면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수많은 논쟁과 연구 가운데 가장 대중적으로 많이 알려진 것이 바로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이겠죠. 이 글을 보시는 분들도 구강기, 항문기, 성기기, 잠복기, 성욕기로 설명되는 발달 단계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을 거라 생각됩니다.


  이러한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계승하고 발전시킨 사람이 바로 ‘자크 라캉’인데요. 라캉은 그의 저서 《에크리》에서 인간은 금지된 것만을 욕망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젖을 빠는데서 쾌감을 느끼는 구강기의 아기가 자라서 젖을 떼는 단계에 이르면 아기는 젖꼭지가 금지되었다 느끼게 되고 이 것은 금지되었기에 바라는 것 즉, 욕망의 대상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그문트 프로이트(왼쪽)'와 '자크 라캉(오른쪽)'


자 그렇다면 이렇듯 라캉이 ‘에크리’에서 주장한 내용을 토대로 영화 ‘케빈에 대하여’를 보면 어떨까요?


'린 램지'감독, '틸다 스윈튼'과 '에즈라 밀러' 주연 '케빈에 대하여(2011)'


  자유롭게 여행하며 일을 하던 ‘에바’는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고 ‘케빈’을 낳아 가정을 꾸리게 됩니다. 그러나 에바는 케빈을 사랑할 수 없었고 케빈도 그것을 아는지 그녀의 사랑을 비뚤어진 방식으로 갈구하게 되죠. 그렇게 16년이 흐른 어느 날 케빈은 엄청난 일을 저지르게 됩니다. 바로 아버지와 여동생,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학교의 학생들을 활로 쏴 죽인 것이죠.

 

  작품에는 이러한 비극을 관통하는 상충되는 두 욕망이 존재합니다. 먼저 자유롭게 여행하며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에바의 주체로써의 정체성이 있죠. 그러나 계획에 없던 케빈이 태어나면서 이것은 금지되고, 에바의 욕망이 됩니다. 두 번째로 케빈의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싶다는 욕망입니다. 그러나 어머니인 에바에게 케빈은 욕망의 대상이 아닌 욕망을 금지시킨 대상이기에 그럴 수 없죠.


  영화에서는 이 공존할 수 없는 두 욕망을 대비되는 색으로 표현해 줍니다. 에바의 빨간색과 케빈의 파란색으로 말이죠. 영화 내내 에바의 빨간색과 케빈의 파란색이 존재하며 서로 갈등합니다. 그리고 에바는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두 번의 시도를 합니다.


'에바'의 빨강과 '케빈'의 파랑


  먼저는 익숙해지는 것이죠. 자신의 욕망을 누르고 다른 것으로 덮는 행위를 영화는 노란색으로 표현해 줍니다. 여행에 대한 추억을 담은 방의 색과 계획적으로 낳은 실리아의 머리색이 금발이죠. 빨간 소시지와 파란 빵의 핫도그가 노란 머스터드 통과 하이파이브하는 케빈의 티셔츠나 후반부 케빈이 프라이드와 포커스라고 쓰인 빨간 학교 체육관의 문을 노란 자물쇠로 채우는 것 또한 이런 상징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에바의 방과 실리아의 머리색


  그러나 케빈은 커가면서 이런 노란색을 깨려 합니다. 어렸을 때는 어느 정도 케빈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 안전하게  주었던 노란색은 케빈이 성장함에 따라 깨야하는 대상이  것이죠. 그런 부분을 에바가 케빈에게 읽어주었던, 잠시나마 안정감을 주었던 책의 표지색에서 공격적이지만 안전한 장난감 활과 화살의 촉의 색으로 그리고 맞춰야  대상인 과녁의 중앙부의 색으로 표현해 줍니다. 결국  시도는 실패하고 엄청난 비극을 낳게 됩니다. 에바 자신의 욕망은 억누를  있을지 모르지만 케빈의 욕망은 충족되지 못하거든요.


에바의 욕망을 덮는 것 만으로는 케빈의 욕망이 충족되지 못한다.


  결국 비극은 일어나게 되고 가족을 잃은 에바는  번째 시도를 하게 됩니다. 바로 자신의 욕망을 지워내는 것이죠. 그래서 영화 내내 에바는 집과 차에 던져진 빨간 페인트를 지워냅니다. 마치 자신의 욕망을 지우듯이 말이죠. 그리고 파란색으로 케빈의 방을 칠하며 케빈을 이해하려는 시도를 합니다. 그렇게 자신의 욕망을 지워내고 케빈의 욕망을 마주한 에바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처음으로 케빈과 포옹하게 됩니다.


처음으로 케빈을 안아주는 에바


  여러분은  영화를 어떻게 보시나요? 개인적으로 라캉의 이론에 모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의 이론을 통해 영화를 보았을  에바와 케빈, 둘의 관계를   이해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선이 여러분의 감상에도 도움이 되었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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