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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넼 Sep 02. 2021

리틀 포레스트 속 먹방의 의미

'먹는다.'라는 표현을 통해 본 영화 '리틀 포레스트'

  여러분에게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뻔한 질문이지만 살기 위해 먹나요? 아니면, 먹기 위해 사시나요? 개인적으로 저에겐 먹는 즐거움이 크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도 먹는다는 행위가 삶의 큰 영역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특히, 한국인에게 있어서 ‘먹는다’라는 말속에는 굉장히 많은 의미가 녹아있기도 하지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친구를 먹기도 하며, 보이지 않는 마음 또한 먹죠.


오늘은 이러한 ‘먹는다’는 표현을 통해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작품의 주인공 혜원은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고시생입니다. 그러나 같이 시험을 준비하던 남자 친구는 합격하고, 본인은 불합격하게 되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며 아무 말 없이 고향으로 내려옵니다. 갑작스레 고향으로 내려온 혜원을 보고 "무슨 일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혜원은 "배가 고파서" 내려왔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보면, 음식을 만드는 것과 먹는 연출에 굉장히 공을 들였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영화에서 먹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먼저 물리적인 음식을 먹는 행위를 살펴보면, 작품 안에서 대조되는 두 분류의 음식이 나옵니다. '도시의 음식'과 '고향의 음식'이죠. 도시의 음식은 공장에서 찍어내는 인스턴트식품입니다. 비슷한 맛과 비슷한 모양으로 이루어진 편의점 도시락을 미처 다 먹지 못하고 뱉는 혜원의 모습에서 자신의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을 살기 위해 억지로 먹는 듯한 인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반면 고향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는 모습은 즐겁기만 하며, 정말 맛있어 보이는 그녀만의 요리가 완성됩니다. 물론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재하의 대사를 통해 두 요리에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죠. 이러한 모습을 통해 도시의 규격화된 삶과 성공의 기준이 혜원에게 맞지 않는다는 것을 유추해볼 수 있습니다. "인스턴트 음식은 나의 허기를 채우기에 부족했다."는 혜원의 대사 또한 임용고시 합격이 정말 자신이 원하는 삶인가를 고민하는 것으로도 보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음식은 사회가 요구하는 모습과 자신이 진정 즐길 수 있는 일. 이 두 가지를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일은 밥을 벌어먹는 것이기도 하니깐요.


혜원이 고향에 내려온 건 단순히 시험에 떨어져서였을까?


  두 번째로 친구들과 함께 나누는 음식입니다.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일 이상으로 함께 먹는 사람들과 분위기와 추억, 문화 등 정서적인 것들을 공유하는 행위기도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식사를 나눈다고도 표현하는지 모릅니다. 그렇게  혜원은 재하와 은숙 두 친구와 식사를 나누며, 추억과 감정을 나누고, 서로 다투기도 하며 위로와 응원, 우정을 나눕니다. 


재하, 은숙, 혜원이 나누는 것은 음식만이 아니다.


  마지막으로 "요리는 마음을 비추는 거울"이라는 혜원의 기억 속 어머니의 대사처럼 음식과 함께 마음을 먹습니다. 자존심 강한 자신을 돌아보고 정말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딘지 깨달아갑니다. 자신의 요리에 감사할 줄 모르던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정리할 마음을 먹고, 말없이 집을 나간 어머니를 이해하고 용서할 마음을 먹었으며, 정말 자신이 원하는 것과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정할 마음을 먹습니다.


  이처럼 우리에게 먹는다는 것은 너무나 많은 감정을 담고 있습니다. 간편하게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세상에 살고 있지만, 한편으론 우리의 많은 감정 또한 그렇게 간편하게 사라져 버리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씁쓸한 마음도 드는 시대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보시는 분들 가운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분들이 계시다면 번거로운 과정을 지나 만들어지는 혜원의 먹음직스러운 요리나, "겨울이 와야 정말 맛있는 곶감을 먹을 수 있는 거야."라는 영화 속 대사처럼 기다림과 인내로 잘 견뎌내어 맛있게 차려진 미래를 마주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인내와 기다림만이 줄 수 있는 맛이 분명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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