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긴 어게인' 속 소음과 음악
우리는 산업화와 도시화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며 생긴 다양한 공해 속에 살아갑니다. 전염병을 비롯해 매년 우리를 괴롭히는 미세먼지같이 심각함이 인식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소음처럼 생활 속에서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삶을 좀먹는 공해도 있지요. 실제로 오랜 시간 큰 소리에 노출될 경우 청각이 지속적으로 감퇴하며, 70 데시벨 이상의 급작스러운 소음은 심장질환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런 부분을 차치하고서라도 일상의 소음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주기에 대부분의 국가에서 소음 규제에 대한 법률이 따로 마련되어있기도 하죠.
그렇다면, 이러한 소음을 통해 대한민국이 사랑하는 감독, ‘존 카니’의 ‘비긴 어게인’을 본다면 어떨까요?
영화는 뉴욕의 한 라이브 클럽에서 시작됩니다. 다른 지역에서 온 그레타는 친구인 스티브의 성화에 못 이겨 공연을 합니다. 하지만 클럽 안의 누구도 그녀의 노래에 귀 기울이지 않습니다. 떠드는 소리와 식기가 부딪히는 소음은 그녀의 노래가 사람들에 전달되지 않는다는 것을 관객에게 알려줍니다.
노래가 끝나고 유일하게 집중해서 듣고 있던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댄입니다. 그리고 이야기는 댄과 그레타 두 인물의 과거로 플래시 백 되면서 진행되죠.
먼저 음반 제작자인 댄은 뉴요커입니다. 뉴욕이라는 대 도시의 소음에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며, 차 안에서 듣는 데모 앨범들은 그에겐 소음일 뿐 음악이 되지 못합니다. 룸 미러의 이어폰 분배기는 그가 같은 소리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성공적으로 사업을 이끌었던 친구 사울과 방향성이 달라지며, 자신이 일군 회사에서 쫓겨나는 댄. 여기서도 자신의 그림을 가져가려는 그를 경보기의 소음이 괴롭힙니다. 별거 중인 아내와도, 심지어 사랑하는 딸과의 관계조차 정상적으로 이어가지 못하는 그는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 열차를 기다리며 들린 클럽에서 운명적으로 자신이 원하던 소리를 들려주는 그레타를 만나 마법 같은 음악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같이 작업하자며 손을 내밀게 되죠. 다시 이야기는 그녀의 과거로 플래시백 됩니다.
영화 음악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남자 친구 데이브를 따라 무작정 뉴욕으로 온 그레타는 철저히 외부인입니다. 연고지는 물론 데이브의 작업 과정에서도 관계자들은 그녀를 외부인으로만 치부하죠. 심지어 믿었던 데이브 마저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게 되며 그녀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오프닝 시퀀스의 공연 장면은 그런 그녀가 뉴욕이라는 도시에 전혀 녹아들지 못하는 것을 잘 표현해 줍니다. 그녀의 노래를 방해하는 소음으로 말이죠. 그럼에도 그곳에서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길 원하는 사람과 자신에게 음악을 들려주길 원하는 사람이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비슷한 문제를 공유한 두 사람은 서로의 소리를 함께 들려주고, 듣습니다. 그리고 그들만의 메시지와 진정성을 담아 도시의 소음을 녹여 음악을 만들게 되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주고 새로운 의미를 부여해줍니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먼저 음악으로써 의미와 진정성을 담고 있는 소리입니다. 음악은 의미와 메시지를 담고 있기에 듣기만 해도 그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죠. 또한 소음으로서 아무 의미도 없고, 진정성도 없이 두 주인공을 괴롭히는 소리도 존재합니다. 다시 찾아온 데이브가 꺼내 든 둘만의 추억과 음악이 이미 많은 소음에 가려져 그때의 그 음악이 아닌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영화 내내 도시에는 소음과 음악이 넘쳐납니다. 그들이 힘들 때에는 소음이, 다시 힘을 내서 인생을 살아갈 때는 음악이 흐르는 것이죠.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를 괴롭게 하는 너무 많은 소음 속에서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로 인해 좌절하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면서요. 이 글을 보시는 모두가 그 소음들을 뚫고 자신만의 멋진 음악을 연주하는 삶을 살 수 있길 소망합니다. 마치 의미를 찾아 헤매던 두 별들이 만나 소음뿐이던 도시에서 멋진 음악을 만들어내 듯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