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카페의 추억
커피는 쉽지 않다.
동네에 하나쯤은 종종 가는 카페가 있기 마련이다. 그곳이 특별히 마음에 들거나, 혹은 그냥 무난해서이거나 각자의 생각과 삶대로 동네 카페에 간다. 내가 한 달 동안 일했던 카페는 동네에서 꽤나 유명했고, 복층이었으며 역 앞에 있고 70평으로 꽤 큰 카페였다.
2017년 12월쯤에 일을 시작했는데, 한 달쯤 일했을 때 여러 가지 사건으로 인해 더 좋은 조건의 아르바이트를 구해 옮겨갔다. 한 달 가지고 후기를 쓸 수 있겠냐만은, 꼭 쓰고 싶은 이유는 이 카페가 다른 동네 카페와 다른 점이 명확했기 때문이다.
먼저, 면접부터 재밌었다. 나는 사실 카페인에 약해 콜라만 마셔도 잠을 잘 자지 못한다. 그런데도 카페 아르바이트를 지원한 이유는 주말은 떡볶이 가게에서 일하고 주중에는 카페에서 일하며 학생으로서 돈을 좀 벌고 싶었기 때문이다. 가계부를 쓰면서 돈 버는 맛을 알아버린 것도 있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음에도 아버지께서 계속 용돈을 주셔서 굉장히 유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장님께서 당시에 첫 질문으로 '커피를 좋아하냐'라고 물어보셨는데, 솔직하게 옛날에는 아메리카노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몰랐지만, 학교에 들어와 몇 번의 시험기간을 거치니 그렇게 맛있는 음료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 부분 때문에 나를 채용했다고 하셨다. 다른 카페 경력이 있으면 사장님이 가르쳤을 때 '거기서는 안 그랬는데요.'라는 말을 듣는 게 너무 싫다고 하셨다. 커피를 좋아하지만 지식은 없는, 때 묻지 않은 손을 채용하고 싶다고 하셨다.
사장님은 커피에 대해 굉장히 프라이드가 있으셨고, 덕분에 커피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마감 아르바이트를 했기 때문에 주 5일, 하루 5시간씩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이 시간 동안 남자 둘이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하며 사실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사장님께서 커피에 대한 정보를 어느 정도 배울 때까지 아메리카노도 뽑지 못하게 하셔서 일이 너무 쉬웠다. 그렇게 카페에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모든 아르바이트 통틀어 카페에 진상이 가장 많다.
스타벅스 같은 대형 카페면 별로 신경 쓰이지 않겠지만 동네 카페는 회전율이 좋아야 한다. 그래서 울며 겨자 먹기로 테이크아웃 할인 같은 행사를 하며 최대한 판매를 많이 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동네에서 특히 중년 층의 아주머니들은 꼭 한 잔을 시키고 여러 명이 앉아서 하루 종일 수다를 떤다. 강아지를 데려오는 경우도 많았고 외부음식을 주섬주섬 가방에서 꺼내 나눠먹었다. 모든 아르바이트를 통틀어 치우기 힘든 음식은 케이크이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생일이 되면 사람들이 꼭 카페를 와서 미치는 줄 알았다.
아르바이트를 포함해 카페 직원을 얕잡아 보는 경우가 많다. 그 동네에서만 평생 살아서 사실 대단한 회사도 없는 것을 아는데도 어디 회사인지 모를 목걸이를 차고서 나를 포함해 많은 동료들을 희롱하거나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는 것을 본 적도 많다. 쉽게 갈 수 있는 곳이라 사람도 쉬워 보였나 보다.
2. 최고의 스케줄은 미들.
대부분의 아르바이트는 오픈, 미들, 마감으로 스케줄이 구성된다. 카페의 경우 오픈은 출근길의 손님들이 많이 방문하기 때문에 손이 빠르고 부지런한 사람을 쓰는 경우가 많다. 사실 요즘 세상에야 손가락질받을 일인데 예전에는 암묵적으로 오픈 아르바이트는 여성들만 채용했다. 지금도 알바몬에서 서비스직은 여성을 채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성으로서 조금 아쉬운 부분도 있다. 미들은 오픈에서 채워놓은 컵이나 원두 등을 자연스럽게 사용해, 가장 힘이 덜 드는 시간대다. 점심시간을 넘어서면 단골손님이 아닌 이상 카페에 방문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에 특별히 오픈이나 마감처럼 특징이 있는 일은 하지 않는다. 마감 아르바이트는 사실상 청소하는 업무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다음날 오픈을 준비한다. 청소만 한 시간 반 정도 했었고, 이 스케줄은 사장님들이 남성을 채용하는 것을 선호한다.
3. 카페에서 일하면 커피는 무한리필.
다른 카페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장님과 같이 일했기 때문에 비싼 음료를 먹기는 조금 눈치가 보였다. 하지만 에스프레소, 아메리카노, 콜드 브루는 정말 마음껏 먹게 해 주셨다. 어느 정도냐면 기말고사 기간이라고 하자, 밀크씨슬과 함께 콜드 브루를 한 통에 담아서 선물로 주셨다. 당시 카페에서 25,000원에 팔던 상품이었다. 내가 너무 잘 먹자, 사장님께서 신이 나셨는지 콜드 브루의 원리와 역사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지금 와서 하는 말이지만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그 후로 이상하게 카페만 가면 콜드 브루를 마시게 되는데, 이 카페보다 맛있는 콜드 브루를 먹은 적이 없다.
이 카페는 건물주의 갑질이 너무 심해서 내가 일을 그만두고 사장님께서 1년 정도 운영하신 후 다른 곳에서 카페를 새롭게 창업하셨다. 사장님이나 다른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몸을 쓰는 아르바이트가 점차 힘겨워져서 사무실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 졌고 낮은 시급에 일을 하는 게 아쉬움이 들어 친구가 추천해준 학원으로 일자리를 옮겼다. 후에 사장님과 종종 만나 이야기를 할 정도로 짧았지만 많이 친해졌고, 내가 갈 때마다 10% 할인해주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아르바이트는 사실,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배우러 가는 것 같다. 커피가 이만큼이나 어려운 거다.
■ 카페 마감 아르바이트
장점 : 커피 무한리필, 쉬운 업무, 후에 다시 카페 아르바이트를 구할 때 경력 대우
단점 : 진상 손님 절대다수, 낮은 시급, 은근히 많은 업무
시급 : 6,470원 (2017년 최저시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