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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옙히 Jun 01. 2021

[알바;썰] 양날의 아르바이트, 학원

조교 선생님의 비애

학원 아르바이트는 양날의 검이다.


2018년에 6개월, 2021년에 5개월을 학원에서 일했다. 두 학원은 전혀 다른 학원인데, 하나는 대치동에 있는, 건물을 무려 12개나 이용하는 이름만 대면 아는 아주 큰 학원이었다. 다른 하나는 미래에 해외로 아이를 보내기 위한 어학원이었다. 보습학원과 교육과정 외의 학원이기에 결이 약간 달랐다.


애초에 학원이 아르바이트를 지원자를 받는다는 것은 학생 수가 상당히 된다는 뜻이고, 가르치는 일과는 거리가 먼 일을 맡긴다. 동네 학원에서 말하는 조교 선생님은 채점하고 심지어 아이들에게 질의응답을 해주기도 하지만, 대치동에서 말하는 조교 선생님은 철저히 선생님의 수업을 도울 뿐이다. 다만 내가 했던 일은 회계팀 업무였다. 건물을 12개나 쓰지만 주변 큰 학원들과도 연계해, 사실상 대치동 전체를 이용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스타 강사들의 스케줄에 따라 최대한 많은 학생들을 모아야 했기 때문에 고안된 운영 방식일 터였다. 이렇다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출석부였다. 누가, 어디서, 언제 수업을 들었는지 확인하고 이에 맞춰 수업료를 청구한다. 나는 출석부를 건물마다 돌아다니며 수거해 수업료를 내지 않은 학생들에게 연락을 하는 역할을 했었다. 굉장히 단순해 보이지만, 등록된 학생 수가 13,000명이었다.


회계팀 사무실은 아예 다른 건물을 이용했다. 학원 본관과는 거리가 좀 있었고, 밖에서 보면 이 사무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한 명의 팀장 아래 여러 명의 대학생 아르바이트가 모여 출석부를 보고 체크하고 전화하는 일의 반복이었다. 학원 아르바이트보다는 그냥 평범한 인바운드 아르바이트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반면 어학원은 학생들과 직접 마주했다. 한 건물 전체를 사용하는 학원이었는데, 내부에 있는 사무실에서 학생들이 오고 갔고, 원어민 강사가 교육하고 한국인 선생님이 학생과 학원 업무를 관리하는 시스템이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문자를 발송하거나 아이들의 시험을 감독하는 일을 했고, 주로 학원으로 오는 문의 전화에 대해 답변하는 역할을 했다. 학생의 나이가 초등학생부터 중학생까지 다양했는데, 성인이어도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은 에너지를 얻으며 일을 했다. 


에피소드를 이야기하자면, 하루는 셔틀 도우미 선생님이 코로나 검사로 인해 학원에 나오지 못했다. (초등학생이 타는 셔틀버스에는 법적으로 도우미 선생님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임시로 내가 셔틀버스를 타고 학생들의 등 하원을 도왔는데, 비가 왔었다. 단순히 우산을 펴기 귀찮아서 비를 맞으며 학생들이 잘 내려서 집에 가는지 확인했는데, 학생들이 내가 안타까웠는지 내가 다시 버스에 타기 전까지 우산을 양보했다. 이런 작고 큰 에피소드가 매일 생기는 곳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학원 아르바이트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 좋은 기억으로 남은 어학원.


1. 사무직이라는 장점과 높은 급여.

비교적 높은 급여를 받으면서 사무직의 이점을 누릴 수 있다. 더운 날 시원하게, 추운 날 따뜻하게 일할 수 있으며 손에 물을 묻힐 일이 없다. 내부적으로 궂은일을 하며 조금 땀을 흘릴 때도 있겠지만,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겪으며 얻는 고난들을 모두 피해 갈 수 있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에게 이 점은 굉장히 큰 유혹일 것이다.


2. 학생들에게 얻는 긍정적인 에너지.

개인적으로 아이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내 가치관이 흔들릴 만큼 맑은 친구들이 많다. "선생님"이라고 부르며 학생들이 내게 부탁을 하거나 단순히 장난을 칠 때, 생각보다 굉장히 행복해진다. 대치동에서 일할 때도 알게 모르게 학생들과 유선상으로나 출석부를 체크하며 마주할 기회가 몇 번 있었는데, 짧은 시간에 얻는 에너지가 굉장히 크다. 다른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람에게 치였다면, 학원 아르바이트가 오히려 회복의 장소가 될 것이다. 보통 대형학원에서 일을 하면 관리자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3. 어떤 학원이냐에 따라 마주하는 학부모가 다르다.

대치동에서 대했던 학부모는 아주 극성이었다. 공부도 분명히 재능의 영역일 텐데, 한 달에 무려 800만 원 정도를 학원비로 투자하지만 학생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일부 수업의 경우 학생의 성적에 따라 입반 여부가 제한되는데, 부모의 열정은 가득해 매일 입반 요청을 전화로 욕을 섞어가며 했었다. 아주 고약했지만, 내 입장에서는 전화를 받아줄 수밖에 없어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어학원도 그런 부분은 다르지 않았다. 보습학원이 아니라 정규 교육과정 외의 학원이었기 때문에 조금 유복한 가정인지라 대치동보다 조금 더 유했지만, 일단 소리부터 지르는 학부모도 많았다. 내신관리도 해줬는데, 한 번은 한 아버지가 술에 취해 학생이 학교에서 만점이 아니라 한 문제를 틀렸다며 내게 반말과 욕을 섞어 전화로 소리를 질렀다. 술에 취한 것을 알고 잘 대꾸하고 마무리지어 끊었는데, 한 병 더 드셨나 보다. 그날 그 아버지는 학원에 7번의 전화를 했다. 당연히 다음날 사과는 없었고, 또 당연하게 나는 전혀 교육에 관여를 하지 않는다. 가르친 사람 따로, 문제 푼 사람은 따로 있는데 애꿎은 사람이 애꿎은 사람에게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4. 의외로 주먹구구식 운영.

음식점은 그래도 보고 배우는 게 많다. 요리를 하는 법이라던지 매장을 개선하고자 하면 매출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지켜볼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학원은 배우는 것이 없다. 철저히 정해진 매뉴얼 안에서 대응할 뿐이고, 누구든 할 수 있는 업무이자 때로는 때우기 식의 주먹구구식 운영도 잦다. 그래서일까. 내가 일하는 동안 같이 일한 사람의 30%는 퇴사했었다. 매너리즘은 의외로 견디기 어렵다.


그래도 새내기로 돌아가 아르바이트를 해야 한다면, 학원 아르바이트를 고민할 수밖에 없을 만큼 꽤 유익한 아르바이트였다.


■ 학원 아르바이트

장점 : 사무직 이점, 높은 급여, 학생들에게 얻는 에너지, 간식 및 식사 제공

단점 : 전화 노이로제, 극성 학부모, 해결되지 않는 매너리즘

급여 : 8,500원 ~ 9,000원 (시급에 주휴수당 포함, 2018년, 처음 일할 때 9,000원이었는데 나중엔 8,500원으로 바뀌어서 그만뒀다.), 10,308원 (2021년, 주 14.5시간 일했는데, 주휴수당 받는 기분 느끼게 해 주겠다고 만든 시급이었다. 어학원 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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