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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버터 Nov 04. 2022

살려주세요

8살 어린 친구가 생겼습니다

  "살려주세요."


  이 어린 생명체가 지금 무어라 하는 것인가. 나는 눈을 끔뻑였다. 입술의 삼분의 일쯤을 닫지 못하고 있었다. 숟가락을 들고 막 나온 덮밥을 떠먹던 중이었다. 이봐, 우리 밥 같이 먹은 지 이번이 두 번째인데? 이 아이 도대체 뭐지? 나는 눈앞의 작은 생명체를 보았다. 애니메이션 속 장화신은 고양이처럼 아이의 두 눈은 떨고 있었다.

  우연, 그녀는 정말 키가 작았다. 그녀는 온몸을 분홍색 후드 집업 속에 숨긴 채 걸어 다니는 집요정 같았다. 이 어린 집요정 우연은 '코로나19'시대의 대학생으로서 스무 살이 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사회생활 경험이 전무한 수준이었다. 첫 아르바이트나 다름없는 이곳에서 그녀는 나를 만났다. 8살이나 많은 직원 언니를 눈앞에 두고 그녀는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것인가? 나는 밥을 우물거리며 잠시 생각했다. 그녀의 커다란 눈망울에 실망이 담기게 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또, 섣부르게 묻지 않기 위해서. 언니의 체통이란 게 있다면 지금은 그것을 지켜야 할 때라고 판단했다.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웠다. 아직까지 우리는 초면이나 다름없었다. 우연은 나와 근무시간이 많이 겹치지 않았다. 그럴 수밖에 없던 게 우연은 주말에만 출근을 했고 나는 주 5일의 스케줄 근무를 하는 카페 도비였다. (영화'해리포터'에서 도비는 집에 속한 집요정이자 심부름을 하는 노예이다.) 이곳에 2주 정도 먼저 입사했다는 그녀는 나의 어설픈 선배이자 동기였다. 보통의 회사에서 사수들이나 동기들이 처음 온 사람을 데리고 다니며 일을 가르쳐주거나 밥을 함께 먹는데 우연과도 그런 시간이 왔다. 그뿐이었다. 밥시간이 왔고,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이 됐고, 이제 두 번째 함께 밥을 먹었다.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우연과 처음 밥을 먹으면서도 느꼈었다. 그녀는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 확실히 그랬다. 말과 말 사이에 한 번씩 보이는 우물쭈물함과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하는 눈치. 어쩌면 우연이하고 싶은 말이 내가 조금씩 품고 있는 의문과 가까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도 아직 아는 게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일단 말을 아끼고 이곳을 지켜보는 거 아닐까요?"

   나는 그런 말을 꺼내며 과거에 겪은 아르바이트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아르바이트 자체가 생소했던 우연은 동경을 품은 듯이 감사하다고 했다. 심지어 계산원에게 카드를 먼저 내밀어버렸다. 나는 순간 당황했다. 애초에 밥을 얻어먹으면 몸 둘 바를 몰라했고, 무려 8살이나 어린 아기에게 밥을 얻어먹는 것이 감개무량했다. 우연의 만행(?)은 멈추지 않았다. 점심값으로 몇만 원을 쓰는 걸로 모자라 근처 카페에 가서 살 게 있다며 나를 끌고 가더니 내 몫의 디저트까지 카드로 긁어버렸다. 아니, 이 애기가 감히 밥을 사줘? 그때 나는 결심했다.

  '첫 월급날 너의 위장은 큰일 났다. 두고 보자, 이 발칙한 애기야. 마구 먹여주마.'


  우연은 그 뒤로도 내 곁을 맴돌았다. 나는 그녀에게 밥을 사주었다. 맛있는 밥을 사주면 또 어느샌가 우연이 밥을 샀다. 나는 벌써부터 그렇게 밥 사주고 다니는 버릇 들면 안 된다고 혼을 내며 다시 밥을 사주었다. 그러면 우연은 아무에게나 사주지는 않는다라며 내 손에 간식을 쥐어주었다. 서로의 뱃속에 먹을 것을 밀어 넣으며 우리는 서로의 속에 있던 이야기들을 하나씩 꺼내보였다. 우리가 느끼는 공통적인 부분들과 이곳의 문제들이 흐릿하게나마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오로지 남이기에 보이는 것들, 그리고 더 이상 남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직감하는 이들의 대화였다.

  "예원님 같은 사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저는 그저 아르바이트생인데 기존 직원분들 근처에는 가지도 못하게 계속 불러요. 그래서 그분들은 저를 피하시고요. "

  나는 그 자그마한 아이, 그저 먹는 걸 좋아하는, 장난기 있는 아이가 고통받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었다. 우연은 말을 덧붙였다.

  "저는 모두와 잘 지내고 싶어요."

  맞다. 사람을 싫어한다고 외치는 사람들도 가능한 많은 사람들과 어울리고 싶어 한다. 내가 이 회사에 들어온 지 한 달은커녕 열흘을 두어 번 넘겼던가. 이렇게 꼬리가 긴 사람들은 처음이다. 이곳의 문제가 누구인지, 누가 진짜 별로인지 진실에 가까워져 가는 기분이 들었다. 왜? 스물두 살의 아이 입에서 나올 이야기가 아니니까. 유치하고 부끄러웠다. 적어도 유치한 쪽에 서지는 말자, 적어도 내가 이 판단이 끝날 때까지 이 아이의 언니가 되어주어야겠다. 그렇게 아기 같은 우연의 손을 잡았다. 그때부터 우연은 더 많은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그녀의 고통은 정말 시작이었다. 아마 이 책의 가장 많은 지분을 그녀가 차지하겠다 싶을 만큼 어이가 없을 에피소드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우연과 내가 서로를 주목하며 마음을 나누는 동안, 우리를 주목하는 이가 따로 있었다. 우리의 친목을 부러워 견딜 수 없는 이. 우연과도 나와도 잘 지내고 싶지만 우연과 나의 친목은 용서할 수 없는 이가 있었으니. 시샘의 꼬리가 길게 드리워지고 있었다.  

  

_

  

  돌이켜보니 우연은 우연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그것은 지극히도 계획적인 만남이었다. 신의 계획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나는 그녀에게 간택당했다. 하지만 우연은 인연이었다. 내가 이곳에 입사해서 얻은 가장 귀한 인연 중에서도 유난히 귀한 사람이었다.

  이제와 밝히자면 우연은 간을 보았다고 했다. 이 언니는 어떤 사람일까. 적어도 어느 쪽에도 휩쓸리지 않았고 입사 며칠 만에 들어오는 이간질에도 편들지 않고 끄떡없는 사람. 저 사람 옆에 있으면 안전하겠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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