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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외과의사 닥터오 Dec 05. 2021

환자한테는 이게 마지막일 수 있어!!

장루복원술, 사자후(獅子吼), 까칠함

외과의사는 수술할 때 예민해질 수 있습니다.


숫돌에 예리하게 갈아 날카로워진 칼부터 아직 갈지 않아 좀 무뎌져 있는 칼까지. 그 차이는 있겠지만..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검객의 날이 선 '검'처럼 신경이 매우 곤두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수술에 따라서 차이가 있죠.

비교적 간단해서 짧은 시간에 끝나는 것은 고요한 아침처럼 부드럽게 수술이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지만..

만약 아침부터 시작한 수술이 저녁까지 이어지는 길고 힘든 수술이라면 확률상 '사자후(獅子吼)'와 '샤우팅(shouting)'으로 포효하듯 울부짖을 가능성은 높아집니다.


외과의사의 연륜도 한몫을 합니다.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서 메스를 잡고 수술하셨던 선생님들은 그동안 경험이 정말 어마어마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산전수전 공준전까지 겪으셨던 그분들의 내공은 얼마나 클까요??

그러니 힘든 수술이라도 좀 더 여유롭고 차분하게 문제를 해결해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의료계에서 일하는 분들이 "어.. 우리 교수님은 여전히 힘든데. 늘 까칠하신데.." 이런 생각이 드신다면 그건 아마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개인적인 성격이 아닐까 합니다.

마치 1년 사계절 변함없는 '소나무'처럼 말이죠..


누구나 간단하고 편한 일을 더 좋아하기 마련입니다. 왜냐하면 뭔가를 고민할 필요도 없고 누군가와 마찰이 생길 가능성도 적기 때문에 어렵고 힘든 일을 피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수술도 마찬가지입니다. 

몸에 생기는 작은 혹, 지방종(lipoma), 표피낭종(epidermal cyst)을 제거하는 작은 수술 같은 경우는 비교적 편안한 마음으로 인자한 웃음을 하고 메스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때는 수술방에서 수술 준비하고 수술을 도와주는 사람들까지도 발걸음이 아주 가볍습니다.


전신 마취를 하고 드물지만 개복수술까지 할 수 있는 충수염(맹장염, appendicitis), 담낭염(cholecystitis) 같은 수술은 비교적 많이 하는 수술이기 때문에 그래도 괜찮습니다. 우리가 매운 음식을 먹는 식당에서 맵기의 강도를 표시하는 빨간 고추를 상상해보면 눈물이 핑 도는 빨간 고추 4개 만점 중에 2개 정도의 맵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습니다.


그러면 빨간 고추 4개의 최고 매운맛은 어떤 수술일까요??

환자의 생명이 오가고 응급수술을 하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그 결과가 나빠질 수 있는 수술입니다. 예를 들면 배안의 대장이나 소장이 터져있는 경우(천공), 배안에서 심한 출혈이 있는 경우, 암 수술과 같은 경우들입니다. 이런 수술은 문제 있는 부분을 빠르고, 정확하게 제거하고 해결하는 것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순간의 긴장감은 빨간 고추 4개가 아니라 10개도 먹어치울 정도로 기세 등등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근 '장루복원술'을 했습니다.

3개월 전에 에스결장(sigmoid colon)이 터지면서 심한 복통과 복막염으로 수술한 젊은 남자 환자분이셨습니다. 이렇게 대장(결장)이 터지는 경우는 게실염 천공이나 대변에 의한 천공, 암에 의한 천공 때문에 터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응급으로 수술해야 합니다. 게다가 터진 대장에서 나오는 대변 때문에 병변을 제거하고 바로 연결하는 문합술을 하면 또다시 샐 수 있어 오히려 위험합니다.


간혹 병변의 상태와 환자의 컨디션을 고려해서 바로 연결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지만 그런 경우는 빈도가 적고 대부분은 결장루(대장루, Hartmann`s op)를 만드는 수술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연결부위에 대변이 지나가게 되면 상처가 좋지 않고 터질 수 있기 때문에 보통은 바로 연결하지 않고 장루(stomy)라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그럼 이런 장루를 언제 다시 연결할까요??


장루복원술은 장루를 만든 후 보통 2 ~ 3개월 후에 시행하게 되는데요. 수술 후 장의 정막이 안정화되고, 점막 하층의 혈액 공급이 원활히 형성되는데 8주 이상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또한 결장루 조성술과 복원술 간의 시간적 간격이 합병증과 무관하다 라는 연구도 있고, 12주 이내에 복원술을 시행한 경우 합병증의 빈도가 더 많다고 보고하는 연구도 있습니다.

Reference : 대장항문학


이런 연구들이 있기 때문에 저는 환자의 컨디션과 전신 몸상태가 충분히 회복되는 시점에서 복원술을 시행하는데 보통 결장루를 만드는 첫 번째 수술 후 3개월이 지나면 복원술을 하자고 말씀드립니다.


결장루를 만든 수술이 응급수술이었고 복막염도 심했던 상태였기 때문에 배 안의 유착은 복부 전체에 퍼져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게다가 같은 환자를 2번 수술해야 하니 수술 전 해야 할 검사와 생각하고 고민할 것이 많아지다보니 집도의인 저도 자연스레 예민질 수밖에 없습니다.


장루 환자들에게 장루 복원술을 한다는 것은 아주 큰 의미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유럽과 같은 외국에서는 장루환자들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있고, 장루가 없는 일반 사람들과의 생활함에 있어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장루환자들은 아주 당당하고 자연스럽게 자기의 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장루를 가지고 헬쓰 대회나 각종 운동대회를 참여하기도 하고 비키니를 입고 거부감 없이 수영을 즐기고 가족과 함께 해변에서 행복한 시간을 즐기는 모습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떨까요??

우선 장루를 가지고 있는 제 환자분들도 충분히 회복이 되어 퇴원할 때쯤 되면 대부분 걱정이 한가득입니다. 특히 연세 있으신 분들은 "대변 주머니, 똥주머니"하면서 장루를 더욱더 감추려고 하십니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필요한 장루지만 남보기에 남사스럽다면서 장루에서 소리 날까 봐, 냄새날까 봐 외출도 안 하신다는 환자들도 있으니깐 얼마나 스트레스가 심한지 상담하다 보면 그 기분과 감정을 저도 충분히 느끼게 됩니다.


장루때문에 인생이 바뀌고 삶이 바뀌었다고 하는 환자들이 있으니 장루 복원술이 얼마나 장루환자들에게 중요한지 충분히 이해 가는 상황입니다.


아무리 작은 수술이라 하더라도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수술은 없습니다. 국소마취를 하고 30분이면 끝날수 있는 단순 절제술도 환자 자신의 몸에 칼을 대는 것이고 외과의사에게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수술을 허락하는 것이기에 이 또한 큰 결정일 수 있습니다.


하물며 전신마취를 하고 예전에 수술했던 그 복부 흉터로 메스를 대고 다시 그 과거의 고통을 느껴야 한다면 두 번째 수술을 한다고 결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장루복원술을 받았던 제 환자 중 한 명은

"과장님.

이렇게 아플거였으면 복원술 안 했을 거 같아요."


"아이고.

그런 말 마세요.

아직 수술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런 거예요.

매일매일 통증은 좋아질 거예요.

오늘보다는 내일이.

내일보다는 그다음 날이.

점점 좋아질 겁니다."


"어떤 환자는 장루복원술을 받고 싶어도 못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남아있는 직장(Rectum)이 아주 짧거나 기능을 못하는 경우도 그렇고.

항문암 때문에 항문을 제거한 경우에도 어쩔 수 없이 평생 영구장루를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분들의 소원은 예전처럼 평범하게 항문으로 대변을 보거예요."


이렇게 항문으로 대변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지극히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일상적인 것을 선택할 기회조차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인생이 바뀔 수도 있고, 삶이 바뀔 수도 있는 장루복원수술을 하는 외과의사는 그 수술을 하는 동안 얼마나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까요??


복막염이라는 위험한 순간에 응급수술로 만들어진 이 장루를 3개월이 지나 다시 연결하는 장루복원술을 할 때면..

이미 한 번의 수술 때문에 서로 엉겨 붙어 있을 배안의 유착을 어떻게 떼어낼지??

남은 대장과 직장의 길이는 과연 어떨지??

두 번째 수술이라 생길 수 있는 예상치 못한 상황들이 많기 때문에 외과의사는 스치기만 해도 베어질 것 같은 예리한 '검'처럼 수술하는 내내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수술에 집중 못하는 상황이 생기거나 수술  어떤 작은 실수라도 생겼다면..

그 극도의 긴장감과 예민함은 폭발하게 됩니다.

"야야야!!(사자후, 샤우팅)

뭐 하는 거야!!

똑바로 안 잡아!!

이환자한테는 이번 수술이 마지막일수 있어!!

다시 배 열고 칼대는 일은 없다고.

만약 장루 연결한 부위가 터진다면??

평생 장루 달고 살아야 할 수도 있어!!

이번이 장루 연결하는 마지막일 수 있으니깐 집중해!!"


저는 수술에 굉장히, 아주, 많이 진심인 편입니다.

외과환자의 건강과 병이 좋아지는 것은 수술장에서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술할 때는 아주 아주 날카롭고, 예민하고 까칠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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