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외과의사 닥터오 Jan 18. 2022

걱정 말아요 그대. 노래 가사처럼..

항문출혈, 치질, 눈물

누구나 스스로 충분히 이해되지 않으면 불안해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객관적으로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습니다." "문제가 없어요." "이런 이런 검사에서 정상으로 나왔네요." 이렇게 보여주더라도 '정상이라는 검사 결과'보다는 '당신은 괜찮아요라는 따뜻한 말 한마디'가 마음속 불안감을 녹여줄 수 있는 것 같습니다.


며칠 전 항문 출혈로 내과에서 대장내시경을 하고 내시경 검사상 치질(치핵) 이외에는 이상이 없어 수술 상담 때문에 찾아온 환자가 있었습니다.


외래 진료실 문을 열고 들어올 때부터 환자의 얼굴은 이미 긴장감이 역력했고 불안감이 얼마나 컸던지 앞에 앉아있는 저에게도 느껴지는 듯했습니다.


내과에서 작성했던 진료기록지를 보니 항문출혈이 며칠째 지속돼서 대장내시경을 했고 다행스럽게도 대장 안에 용종도 없이 깨끗한 상태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내시경에서 보이는 내치질과 외치질말고는 이상이 없었기 때문에 치질이 항문출혈의 원인일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습니다.


"환자분..

항문에서 피가 나서 걱정 많으셨겠어요.

대장 내시경을 내과에서 하셨네요.

다행히 종양이나 용종 등 이상 있을만한 것도 없어요.

아주 깨끗하네요."


괜찮다는 검사 결과를 알려드려도 환자는 저의 말을 듣고 있는 것인지. 딴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정도로 얼굴은 굳어있었고 마치 정신적인 충격을 받은 것처럼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이었습니다.


치질(치핵)이나 항문 질환이 있으면 직장수지검사(DRE, digital rectal examination)이라고 하여 항문을 손가락으로 만져보면서 항문과 그 주변으로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는 검사를 해봐야 합니다.


직장수지검사에서도 내치핵과 외치핵 이외에는 다른 병변이 확인되지 않았기에

"검사에서도 치질 말고는 이상이 없어 보여요.

항문출혈의 원인은 치질 가능성이 높아요.

수술하면 좋아질 거 같네요."


수술 날짜를 정하고 며칠 뒤 수술하기 위해 진료실을 찾은 환자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습니다.

수술 과정에 대해서 설명을 하고 수술 후 경과가 어떨지, 언제부터 일하는데 무리가 없을지 궁금해하는 것들을 알려드렸습니다.


불안해하는 것이 담당 의사인 저마저도 느껴지는 상황이었기에..

"걱정 많이 되세요??

항문출혈이 있을 때 가장 흔한 원인인 항문질환이에요.

그중에서도 치질이 빈도상 많고요.

하지만 항상 대장암, 직장암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항문출혈이 보일 때는 대장내시경을 꼭 해봐야 해요."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OOO환자의 대장내시경은 아주 깨끗해요.

너무 걱정 마세요.

대장암이나 직장암 같은 '암'이 아닌 게 어디에요.

치질 수술은 흔히들 하는 것이니깐 편하게 생각하세요."


이렇게 말씀드렸더니..

제 얼굴을 보시며 눈시울이 붉어지고는 눈물을 훔치시는 것이 보였습니다.


"수술 날짜 정하고 며칠째 잠을 못 잤어요.

대장내시경 하려고 물약 먹고 대변을 보니 피가 더 나더라고요.

어찌나 불안하던지.

수술하고 나서 일은 어떻게 해야 하고, 얼마나 쉬어야 하는지도 걱정이었어요.

저랑 남편이랑 같이 일하는데, 제가 쉬면 남편이 너무 힘들어서 그것도 미안하고."


외과의사인 저한테는 항문출혈이 어떤 원인 때문에 생기고, 어떻게 진단하고 치료하는지 익숙한 병이기 때문에 맘 편하게 상담하고 이야기해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환자들한테는 아니겠죠..


항문에서 피가 나는 것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고 태평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걱정스럽고 불안하여 잠 못 자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검사에서 아무리 이상이 없다고 해도 환자들은 다시 한번 물어보고 재차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마치 그렇게 2번, 3번, 아니.. 여러 번 확인해야 마음에 안정이 생기는 것처럼요.

이미 검사에서 정상이라는 객관적인 데이터가 있다고 해도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마음이 아플 때 "괜찮냐"는 진심 어린 말 한마디가 고마운 것처럼..


"혹시 더 궁금한 것 없으세요??

불안하거나 걱정되는 것 있으면 물어보세요.

수술은 잘 될 거니깐 너무 걱정 마시고요."


의사의 이런 한마디에 환자는 울컥 눈물을 보이기도 합니다..


사진출처 : 네이버, unplash


작가의 이전글 환자가 내 맘 같지 않아 속상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