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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Apr 05. 2021

직장인 2년차, 처음 겪은 권고사직


전 직장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리해고를 진행하려 한 적이 있다. 회사가 어려워져서 그렇다고 하는데 다른 팀의 밉보인 직원을 내보내기 위한 거라는 소문도 돌았다.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으나 돌아가면서 회사 본부장님과의 면담이 시작되었다. 면담을 끝낸 직원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2개월치 급여에 해당되는 돈을 줄 테니 나갈지 말지 선택하라고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2개월치 급여라..’ 퇴사 후의 불확실한 미래를 위한 돈 치고는 적다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다니고 싶은 회사는 아니긴 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가고 싶지도 않았다.


 며칠 뒤, 내 차례가 다가왔고 작은 회의실로 걸어들어갔다. 의자에 앉자마자 본부장님께서 무겁지 않은 목소리로 회사가 어려워져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고 했다. “2개월치 급여에 해당되는 돈이 지급될 예정이야, 나갈지 말지 고민을 해봤으면 좋겠어. 그리고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너에 대한 회사의 평가를 얘기해 줄게“ 회사가 어려워져서 내가 나갈지 말지 선택하는 것과 나에 대한 평가가 무슨 연관성이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는 “다른 사람의 평가를 들어보니 책임감이 좀 없다고 하네? 퇴근시간만 되면 바로 퇴근한다고 말이야, 이것 때문에 너희 팀 팀장님이 남아서 일을 한 적이 있대.” 순간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났다. 


회사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했는데 우리 팀 팀장님께서 총괄을 맡으셨다. 나는 다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던 상태로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실 때만 도와드렸으며 주로 대리님께서 서포트 하셨다. 팀장님은 본인의 업무로 인하여 가끔 혼자 야근하는 것을 엄청 싫어하셨는데 그렇다고 서포트를 요청하며 명확한 업무지시를 내리는 것도 아니었다. 회사에선 각자 맡은 바가 있는 거고 본인이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는 건데 팀장님은 자꾸 대리님과 내게 무언가를 바라는 듯이 굴었다. 대리님과 나는 부하직원으로서 도와드릴 수 있는 일은 최대한 서포트 하되 그럴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선 명확히 선을 긋고 행동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각자 맡은 바 일을 하고 퇴근을 했다.


다음 날 다른 직원이 이야기해주기를 어제 팀장님이 야근을 하셨다고 했다. 사무실에서 팀장님이 친구와 하는 전화 통화를 들었는데 자기보다 직급 낮은 애들은 다 가고 왜 혼자 남아서 야근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며 하소연하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전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참 이상한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그 팀장님은 평소 남들 다 일할 때 매번 30분이나 일찍 퇴근했다.


작은 회의실 안에서 내가 들었던 책임감 없이 행동했다던 일이란 이 사건을 말한다. 황당했다. 매일 정시 퇴근을 하는 나에게도 나름의 철칙이 있다. 정시 퇴근을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으려면 내가 맡은 일들은 완벽하게 해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시 퇴근이 보편화되지 않은 사회 분위기상 누군가 나의 퇴근에 딴죽을 걸 때 당당해질 수 있는 명분이라는 것이 생긴다. 나는 정시 퇴근을 위해 업무시간에 최선을 다한다. 내가 상사에게 상사로서의 역할을 기대하듯 나부터 부하직원으로서의 역할을 잘 해내려 노력한다. 최소한 나로 인해 업무에 차질이 생기지 않도록 말이다. 그런데 책임감이 없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인정할 수 없다. 


“저 때문에 어떤 업무적 문제가 생긴 건지 명확히 말씀해 주세요. 책임감이 없다는 게 공식적인 사측의 평가라면 그 기준이 담긴 객관적인 평가 지표도 제가 납득할 수 있도록 지금 당장 보여주세요”라고 말했더니 역으로 당황하며 대화가 끝난 후 우리 팀 팀장에게 말해보겠다고 했다. 황당해진 나는 “이 말인즉슨 그런 자료는 없다는 거네요? 왜 제 공식적인 평가 지표를 팀장님한테 요청하신다는 거죠? 이미 끝난 평가라면 인사팀에서 관리하겠죠, 제가 지금 가서 확인해볼까요?”라고 따져 물었더니 말씀이 없으셨다. “객관적인 기준도 없이 주관적으로 평가한 상사 한 명의 말만으로 제가 평가당해져야 하는 것에 저는 전혀 동의 못하고요, 회사 안 나갑니다. 꼭 내보내야겠다 생각하시거든 실업급여와 6개월치 급여 준비하신 다음에 면담 재요청해주세요. 아, 오해는 하지마세요.  그 돈 받고 나가겠다는 건 아니고 그 정도는 준비해주셔야 나갈지 말지를 고민해보겠다는 겁니다.” 라고 말하며 문을 박차고 나왔다.


그날 오후, 평소 예뻐해 주시는 다른 팀 팀장님께서 회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며 잘했다고 하셨다. 같이 대화했던 본부장님조차 내가 했던 말에서 틀린 말이 하나도 없다며 아이러니하게도 칭찬을 하셨다고 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나는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대든’ (용어가 마음에 들지 않으나 그들의 말을 인용함) 버릇없고 당돌한 사원이 되어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팀장 이상을 제외한 직원들의 면담이 종료되었고 근태를 빌미 삼아 동료 3명이 반강제적으로 퇴사했다. 유연근무제가 되려 직원들을 향한 칼날이 된 것이다. 그러나 칼 끝이 날 향하지는 못했다. 자유로운 업무 환경일수록 엄격하게 근무시간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고 상사에게 트집 잡히기 싫어서 내가 정한 근무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그렇게 나는 이 회사에서 목표한 근속연수를 채웠으며 퇴직금과 다른 직원들은 받지 못한 연차수당까지 모두 챙겨서 퇴사했다.


 퇴사 후 친했던 동료에게 전해들은 이야기가 있다. 나의 연차수당으로 지급한 돈을 대표가 참 아까워했다고 전해 들었다. 코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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