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무 편하니? 친한 오빠 같아?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 제발. 토 달지 말고”
“제가 너무 편하세요? 친한 동생 같으세요? 업무를 주실 때는 그 일이 왜 필요한지 먼저 납득시켜주세요. 무작정 명령하지 마시고.”
어제 상사와 나눈 대화이다. 사원이 사원 같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에는 ‘답정너’, 답은 정해져 있으니 너는 대답만 하라는 의미가 내포되어있다.
사원이기 때문에 네 생각은 어떻든 중요하지 않고,
사원이기 때문에 너에게 논리와 설득 따윈 필요치 않고,
사원이기 때문에 너에겐 예의 차릴 필요도 없다.
하지만 나는 사원임에도 상사와 업무를 함께 진행하는 직장동료이고,
사원임에도 하고 싶은 말, 해야 될 말을 못 할 이유가 없고,
사원임에도 팀장 직책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나 역시 상사와 같은 사람이다.
상사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는다고 한다. 다른 여직원들은 고분고분 별 말없이 ‘네’라고 대답하며 본인 말을 따르는데 왜 나는 유독 다르게 행동하냐고 했다. 여직원과 사원은 순종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의 수준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진행하는 업무에 있어서 그 이유를 납득시켜 달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가? 부하직원 하나 설득시키지 못하는 상사가 정녕 상사라고 불릴 수 있는 것인지, 그 자질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인지 의문스럽다.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있는 인간은 다른 의견을 가진 인간과 소통하며 타협하는 것이 가능하다. 무작정 상대보다 힘이 더 세다고 누르기만 한다면 대체 동물과 다를 것이 무어란 말인가? 회사는 원래 그렇다고, 자기 때는 상사에게 찍소리도 못했다는 그에게 지금은 시대가 변했으니 변한 시대에 맞춰 볼 생각은 없냐고 물었다.
"상사를 대하는 태도에 예의가 없는 것 같아. 네가 하는 행동들은 사원의 태도가 아니야"
"팀장님도 저한테 예의 없으세요. 제 행동만 눈여겨보실게 아니라 팀장님 행동도 돌아보세요 제발"
부하직원에게 '야', '너'와 더불어 이름을 막 부르는 상사가 예의를 따진다니 우스웠다.
그에게 예의란 복종이다. 그렇다면, 나는 스스로 이 회사를 나갈 때까지 그에게 예의를 차려줄 생각이 없다.
'복종해라, 내가 왕이다'라고 외치는 리더라면 인간이 동물보다 낫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그놈의 예의(복종), 말 잘 듣는 직원, 시키는 것만 잘하라는 전형적인 부하직원 프레임.
거기에 부하직원에게만 해당되는 진짜 예의와 사회적 규범들.
시간이 얼마나 지나야 깨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