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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Dec 14. 2021

즐거운 신년운세

이직 상담하러 가기

이직 문제 겸 신년 운세겸 사주를 보고 왔다. 실로 오랜만이다.

20대 초반에는 해마다 재미로 친구들과 보러 갔었고, 20대 중반에는 취업문제 등으로 고민이 있을 때 가끔 한 번씩 재미 삼아 보러 갔다. 20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풀이될 수 있는 사주는 있어도 정해진 운명이라는 것은 없을 것이다’라는 나의 주관적인 가벼운 신념에 따라 발걸음을 자제했다. 그러나 스스로 규정한 ‘나’에 비해 현실의 나는 나약한 인간에 속했나 보다. 이직을 하고 싶다는 나름의 심각한 고민 앞에 내 가벼운 신념은 정말이지 깃털보다도 가벼웠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친구가 추천해준 사주 집으로 향하는 나를 발견한 후였다.


퇴근하고 가는 버스 안에서 의자에 앉아 잠시 생각에 잠겼다. 며칠 동안 볼까 말까 망설이던 내 모습이 눈앞에 스치며 모순적인 생각들이 마구잡이로 들었다. 정해진 운명 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 내가 무엇 때문에 사주를 보러 가는 것인가. 타인의 입을 통해 듣는 운명은 실로 진실한 것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내가 원하는 것은 이직이었다. 스스로 언제까지 하겠다고 정한 기한이 있었고 계획도 있었다. 그러므로 나는 내가 짜 놓은 계획대로 실행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대체 나는 어떤 것 때문에 이 길을 가는 것이냔 말이다. 딱히 신년운세가 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보통의 사람들은 불확실한 미래 앞에 나타난 선택을 주저하기 마련이다. 사실 그 선택과 선택으로 만들어지는 미래는 모두 무형의 것이어서 도무지 혼자 예측할 수도, 쉽사리 결정할 수도 없다. 차라리 솔직한 말로  남의 인생이면 내 생각을 거침없이 말하며 선택을 반’ 강요’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뭐 내알 빠인가.


확신이 있는 자에겐 본인의 선택의 결과로 나타나는 미래가 설레고 기대에 찰 가능성이 크지만, 확신이 없는 자들에겐 그 무엇보다 불안한 것이 선택이다. 그렇다. 나에겐 내 선택에 대한 ‘확신’이 없었다. 명상이나 자기 계발 분야의 서적들을 보면 무언가를 선택할 때 내면의 목소리를 따르라고 한다. 고요하게 앉아서 마음에 주의를 기울이면 내면에서 진정한 목소리가 들리고 그 목소리를 따라가다 보면 내가 진정 원하고 가야 하는 길을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종종 무언가를 선택하거나 고민이 될 때 이 방법을 활용해온 것도 사실이다. 다른 무엇보다 이러한 방식의 선택을 나는 믿는다. 하지만 사실 실제로 그렇게 선택한 길에 대해서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지고 방향을 잡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번만큼은 조금 쉽게 가고 싶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에게 필요한 확신을 사주라는 어쩌면 통계를 기반으로 한 일종의 학문의 힘을 빌어 사주 선생님의 입을 통해 얻고 싶었던 것일지도.


사주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흡사 소설 속 주인공의 활기찬 모습처럼 “정해진 운명 따윈 없어! 내 미래는 내가 만들어가는 거야!”라고 한 손에 주먹을 불끈 쥐며 외치다가도, 막상 풀이되는 사주를 보면 현재의 내 모습과 오버랩이 되어 자동으로 고개가 끄덕여지고 사주 선생님 앞에 나는 돌연 숙연해진다.


누군가 사주를 100%신뢰하냐고 물으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 미래는 물론 스스로에 대한 것조차 아직 아무것도 확신할 수 없는 내가 이 문제를 어찌 확신한단 말인가. 근데 생각해보면 인생은 원래가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 확신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기에 스스로에 대한 확신이 필요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아주 잠시 해본다.


어쨌거나 결론을 말하자면, 나는 내가 원하던 확신을 얻었다! 확신의 대가로 오만 원을 지불해야 했지만 말이다. 가치 있는 오만 원이었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나를 떠나간 오만 원을 잠시 아련하게 생각한 후 3초의 망설임 후에 가치 있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원래 그렇지 않은가? 사주, 타로라는 게 많은 말 사이에 내가 듣고 싶은 것, 좋은 것만 골라 듣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에게 필요한 확신과 용기, 삶에 대한 희망을 얻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물론 사주를 권장하는 것은 아니다. 가장 좋은 것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 내 선택이 옳을 권리를 스스로 가지는 게 가장 중요하겠지. 뭐 여하튼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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