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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리 Jan 25. 2022

지하철 민폐 승객

설 맞이

민족 대명절, 설이 다가왔다. 모름지기 직장인이라면 주말을 고대하지만 이번 주만큼은 출근하는 것이 나쁘지 않다. 며칠만 지나면 5일을 내리 쉴 수 있기 때문이다. 솔직히 지금 행복하다ㅎㅎ


어제 아침에 출근하기 바로 직전 우체국 택배의 도착 알림이 왔다. 주문한 물건이 없어 의아하던 찰나 문 앞을 보니 보낸 이에 회사명이 인쇄되어 있었다. 설 선물이 도착한 것이다. 이번 명절, 회사가 임직원에게 주는 선물은 배, 한라봉, 사과 등등이 포함된 과일세트이다. 무거워서 상자 크기와 딱 맞는 택배 상자에서 과일을 꺼내는 것도 힘겨웠다. 그래도 보내 준 회사에 감사를 외치며 냉장고에 테트리스 하듯 집어넣어 두고 바로 출근했다.


오후 근무를 하고 있던 중에 회사에서 또 선물을 주었다. 이번엔 어묵세트다. 호기심도 잠시.. 집 배송이 아닌 회사로 왔기 때문에 퇴근길 지옥철을 뚫고 무사히 집으로 가져가야 했다. 무거운 건 둘째 치고, 사람 많은 버스와 지하철을 내리 타야 하는데 빽빽한 틈에서 이 상자가 차지할 공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상자가 가로로 길쭉해서 손잡이를 잡으면 세로 형태가 되어 공격적인 느낌이다.


그래도 퇴근길은 즐겁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집은 가야 한다. 약간의 민망함을 느끼며 버스를 타러 가는데 내 앞에 영광굴비 상자를 들고 가는 다른 직장인이 보였다. 같은 마음일 것 같아 혼자 슬쩍 웃었다. 내 손에 짐이 들려있어서 그런가 퇴근길 사람들 모습이 다른 날보다 유독 잘 보였다. 지하철을 타러 내려가는데 내 앞에서 저만치 걷고 있는 저 직장인은 스팸세트를 들고 간다. 그 모습들이 나를 보는 것 같아 재밌다.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 틈에서 요리조리 놓아보지만 내 다리 사이로 놓으면 뒤로 튀어나오고 앞에 놓자니 앞에 앉은 승객의 통로를 막아버린다. 짐칸에 올려놓자니 상자가 무거워 괜히 내릴 때 물건 빼다가 다른 승객 머리를 칠까 걱정이 되었다. 결국 그냥 내 앞에 내려놓고 앞에 승객이 어디서 내릴지 주시하며 가기로 한다. 양 옆에 서있는 승객들이 상자를 바라봤다. 그렇게 나와 상자는 지하철 민폐 승객이 되어갔다. 20분 정도 지난 후에 앞자리 승객이 내려서 자리에 앉았다.

 



나의 애물단지 상자를 비스듬히 두었다. 저게 최선이다. 옆자리 승객과 앞에 서있는 승객에게 미안하다. 이 무겁고 큼지막한걸 집으로 안 보내주고 들고 가게 만든 회사를 살짝 원망해본다.. 우리 집 냉장고에는 이미 과일로 꽉 차있어서 어묵이 들어갈 자리가 없을 것 같아 고민되었다. 그렇게 오늘 저녁 메뉴는 어묵탕으로 결정했다.


지하철 구경 완료한 어묵을 위해 지하철 출구 계단에서 기념사진 한 장 찍어주었다



집 가는 길 편의점에 들려 어묵탕과 함께 마실 맥주를 샀다. 코젤을 집어 든 나를 보고 편의점 사장님이 맥주 마실 줄 안다며 웃으셨다. 유쾌하신 사장님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좋았다. 내 패딩 주머니에 맥주를 안착시키고 집으로 향했다. 도착해서 상자를 열어보니 구성은 다음과 같다.

 


광고 아님 주의



다시 한번 회사에 감사를 외친다. 그래도 명절 땐 역시 액수는 크지만 가벼운 현금이나 상품권으로 받으면 더 감사할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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