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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1. 2024

손 떨리는 주부로서의 하루

오늘은 근로자의 날. 보통 학교는 쉬기도 하고 안 쉬기도 한다. 작년에는 안 쉬었는데 올해는 쉰다고 한다. 근로자의 날에 근무를 하면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1.5배의 정도의 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고 들었다. 나와 셋째는 오늘 쉬고 첫째, 둘째, 넷째는 학교에 갔다. 그래서 쉬는 날이어도 일어나는 시간은 똑같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모처럼 길게 운동을 했다. 운동을 하고 씻고 나서 바로 시작한 것은 집 치우기. 보통 집을 치울 때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 내가 제일 먼저 시작하는 곳은 주방이다. 어제 분명히 막둥이가 설거지를 좀 해 두었지만 아침이 되면 어느 사이 꽉 차 있다. 설거지를 하고 셋째 점심을 만들어준다. 그러는 사이 첫째와 둘째가 차례로 집에 와서 다시 점심을 만들어 주었다. 시험 기간과 봉사 활동을 마치고 와서 급식도 없고 평소보다 일찍 왔다. 점심을 만들어 주면서 냉동실 정리를 시작했다. 많이 한 것도 아니고 문에 있는 두 칸만 정리했을 뿐이다. 그러면서 세탁조 청소를 드디어! 하고 주방용품 사이 널브러진 쇼핑백들과 자잘한 것들도 다 치웠다. 그 사이 다시 설거지감이 잔뜩 쌓이는 마법을 목격하고 다시 설거지를 했다.


아이들 간식용으로 딸기 요구르트 스무디 재료를 통에 담아 놓고 이번엔 저녁에 먹을 식사를 준비해 둔다. 오늘도 셋째 야구부 체험반 지원을 가야 하기 때문에 저녁은 아이들끼리 먼저 먹어야 한다. 아까 냉동실에서 나온 삶은 옥수수 반자루에서 알갱이를 분리하고 반년간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완두콩을 불렸다. 아이들이 반기지 않을 검정콩까지 넣었더니 노랑초록검정의 알록달록한 잡곡밥이 완성될 예정이다. 친구 아들이 제발 잡곡밥 아닌 흰밥을 먹고 싶다고 하소연을 했다는데 우리 집 사정도 별로 다르진 않다. 하지만 오늘은 잡곡밥이다!! 냉동실에 잠들어 있던 안심을 꺼내고 양파를 꺼내러 베란다로 가는데 뭔가 시큼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맞다. 얼마 전 고구마가 썩어가는 것을 발견하고 치워야지 했는데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다.... 오늘 아니면 또 언제가 될지 모른다. 장갑 끼고 숨을 크게 들이쉬고 고구마와 그 옆에 싹이 나다 못해 작은 알갱이를 형성하는 감자도 몇 개 치웠다. 빈 박스를 촥 모아 담고 카레를 만든 다음 식탁 밑까지 싹싹 다 닦았다.


"뭐야. 여기 왜 이렇게 비어 있지." 한잠 잘 자고 일어난 둘째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왜, 또 채우고 싶지. 절대 그러기만 해 봐라." 모처럼 찾은 반짝반짝 깨끗한 나의 주방.. 오늘 밤까지 유지가 되기는 할는지 정말 모르겠다. 이렇게 주방을 다 치운 것도 아니고 십 분의 일 정도만 치우고 정리했을 뿐인데 벌써 두 시 반.... 손이 너무 떨려서 이젠 더 이상 못 치우겠다. 이 글을 쓰는 동안 오타가 작렬하는 것을 겨우겨우 수정했다. 아직도 손이 너무 떨려서 일단은 휴식이다.


내가 늘 꿈꾸는 것 중 하나는 나 혼자 일주일간 집에 있는 것이다. 아무도, 아이들도 신랑도 집에 없는 일주일. 나 혼자 집은 완벽 정리할 텐데. 예전에 신랑과 아이들을 1박 2일간 여행 보내고 밤새워 치우다 몸살 났던 기억이 나서 혼자 쿡쿡거려 본다. 식구들이 돌아오기 전 필사적으로 치우고 정리하겠다고 난리를 치다가 쓰러져 있는데 식구들이 그때 돌아와서 기가 막히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렇게 치운 집은 얼마 못 갔지 물론. 그러니 1박 2일이 아니라 일주일이 필요한 것이다. 정말 세상 모든 주부님들 존경합니다. 레몬 사탕 하나 입에 넣고 당충전하는 이 시간이 너무 소중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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