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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29. 2024

아가씨가 옷이 이게 뭐야!

   

50대 여 선생님 한 분이 나를 나무라듯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곧이어 다른 여 선생님을 가리키며 “아이고, 정말 발랄하고 예쁘게도 입었네.”라고 칭찬하셨다. ‘내 옷이 그렇게 심한가?’ 나는 그냥 평범하게 입고 있었을 뿐이다. 다만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지 못했고 젊은 여교사의 상큼함이 넘치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건 나도 알고 있었다. 그 후로도 그 선생님은 나를 보면 옷이 이게 뭐냐고 몇 번 타박을 하셨다. 솔직히 기분이 매우 나빴다. 본인은 얼마나 잘 입고 다니시는가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당시 학교 근처에는 맞춤옷을 만드는 양장점이 하나 있었는데 항상 그 집에서 만드는 옷 스타일이 똑같았다. 그 집에서 만들었을 것이 분명한 청록색과 꽃분홍색의 바지 정장을 종종 입으셨다. 20여 년 전 그때 그 기억은 아직도 약간은 쓰린 기억으로 남아있다.      


굳이 오래 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은 지인 한 분이 자신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40대 조선족으로 2년 넘게 머리를 하나로 땋아 다니시다가 어느 순간부터 하나로 묶기 시작하셨다. 외모에는 신경을 안 쓰시나 보다 정도로 생각을 했는데 머리스타일을 다양하게 하시더니 어제는 머리는 연한 갈색으로 염색하시고 길게 풀어내리셨다. 항상 부스스했던 머리가 곧게 찰랑이는 것을 보니 매직펌을 하셨나 싶기도 하다. 한 아이가 묻는다. “오늘은 왜 안경을 벗으셨어요?” 그래서 보니 정말 안경을 안 쓰셨다. 그냥 말없이 배시시 웃으시는 모습이 수줍은 소녀처럼 보였다.      


한국에서 스타일은 중요하다. 꾸안꾸. 꾸몄는데 안 꾸민 듯한 이 스타일을 찾는 것이 정말 어렵다. 사실 나는 옷을 예쁘게 입거나 느낌 있게 입는 방법은 잘 모른다. 우리 엄마는 항상 ‘단정’을 강조하셨다. 머리는 단발이 제일 예쁘다고 생각을 했고 염색도 아닌 코팅을 하고 집에 들어간 날은 초상이 난 줄 알았다. 어찌 부모의 허락도 없이 머리 색을 바꿨느냐고 난리가 났다. 귀걸이는 창녀들이 하는 것이라고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했다. 교회에서 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수많은 언니들은 그럼 다 창녀들이냐고 반문을 해도 내 딸들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화장은 꿈도 못 꾸었다. 안 해도 예쁜 얼굴에 왜 화장을 하느냐는 것이다. 다만 교회에 가는 날은 치마를 입어야 했다. 써 놓고 나니 무슨 조선 시대인가 싶다.   

   

반면에 동생 친구는 방학 때 집에 갈 때마다 엄마가 뭐라고 잔소리를 한다고 피곤하다고 했다. “여대생이 옷차림이 이렇게 입고 다니면 안 되지!”라고 하시면서 데리고 옷쇼핑과 화장품 쇼핑을 해 주신다는 말에 사실 좀 부러웠다. 좀 꾸미고 다니라는 것이다. 가끔 집에 놀러 오던 동생 친구는 원래도 화사한 얼굴인데 예쁘게 꾸미고 다니니 더 화려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무슨 소리까지 들었느냐 하면 “엄마 옷 입고 다니지 말랬지!” 교생 실습기간이어서 어쩔 수 없이 이모가 주신 정장을 입고 다녔던 때였는데 내가 봐도 대학생이 입기엔 좀 과했다.      


자연스러운 과하지 않은 화장법을 찾아가는 것과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하느냐가 내게는 평생 과제였다. 뭔가를 하기만 해도 질색을 하는 엄마 때문에 이리저리 친구들을 곁눈질하면서 알아가는 수밖에 없었다. 체형을 보면 일단 키가 크고 그리 날씬하진 않았다. 그러니 자칫하면 거대해 보였다. 허리는 그나마 가는 편이지만 종아리는 정말 튼실한 가을무 같아서 이 또한 애매했다. 이리저리 다양한 가격대의 옷들을 사서 입어보고 조합해 보면서 내게 어울리는 스타일과 내가 편안하게 느끼는 스타일을 찾았다. 여기까지 오는데 20년이 걸린 것 같다. 지금은 옆반 선생님처럼 패셔니스타는 아니지만 그래도 그냥 무난하게는 입는 것 같다. 최소한 “옷이 이게 뭐야!” 소리는 안 들으니까. (사실 누가 이제 40대 중반인 나에게 그런 말을 하겠느냐마는.) 


그래서 가끔 나는 내 딸들이 부럽다. 나이에 화장법을 알려주고 피부에 맞는 관리법을 알려주고, 데리고 다니면서 옷도 사 주는 엄마가 있어서. 나는 이 모든 과정을 혼자서 해야 했기 때문에 그만큼 시행착오가 많았다. 그래도 괜찮다. 

“엄마 어때?” 

“구려요.” 

바로 반품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딸들이 있으니까. 이 아이들의 안목은 최소한 나보다는 낫다. 가족의 좋은 점은 솔직하게 장단점을 말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들은 아니다. 고개를 갸웃하거나 난감하다는 표정으로 “누나한테 물어봐요.”라는 말을 하거나 대충 “괜찮아요.”라고 성의 없는 대답이나 안 하면 다행이다.)     


앞의 그분은 아마 그동안 크게 본인의 스타일에 대해서 신경을 안 쓰셨을 것이다. 그러다 누가 “머리 풀어 보시면 더 자연스러울 것 같아요.”라고 한 마디 건넨 말이 되었을 수도 있고 뭔가 다른 것을 느끼고 스스로 시도해 보셨을 수도 있겠다. 나에게 어울리는 것을 찾는 것은 쉽지 않아서 누군가의 도움이 있으면 참 좋긴 하다. 하지만 섣부른 조언이나 첨언은 오히려 상처만 될 수도 있기에 나는 그 분을 조용히 뒤에서 응원하려고 한다. 다만 한 마디는 드릴 수 있겠다. “머리 염색하신 거 잘 어울려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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