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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05. 2024

정말 아무것도 안 한 집 밖에서의 하루

오늘은 조금 늦게까지 자고 싶었다. 어제 일찍 자려고 했는데 밤늦게 마신 커피 탓인지 잠자리가 바뀐 탓인지 옆에 아들이 자면서 움직이는 소리가 그대로 들리는 탓인지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아서 한참을 뒤척이다 3시경에 겨우 잠든 것 같다. 오늘 경기는 3시. 집합 예정 시각은 1시 반이라 아주 넉넉하다. 아침에 일어나 움직이고 싶진 않았지만 운동을 좀 했다. 매트가 없어도 좁은 호텔방에서도 가능한 발레핏이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12시 반에는 밥을 먹어야 적당히 소화를 시키고 알맞게 가지 싶었다.  

   

밥을 먹고 슬슬 야구경기장으로 가려는데 전화가 왔다.

“어머니~ 저희 오늘 경기 취소되었어요!”

“네에???”

30분 전까지만 해도 경기는 그대로 진행이 된다고 했는데 방금 취소되었다고 연락이 왔다고 한다. 내가 생각해도 비가 너무 많이 오긴 했다. 작년 이맘때 아들이 퍼붓는 빗속에서 한 이닝을 힘겹게 끝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도 그렇게 진행이 되나 싶었는데 일단 안심이다.

“오늘 못한 경기는 내일 진행될 예정이고 이따가 대진표 나오는 대로 알려주신다고 해요.”

그러나 오늘의 경기 취소는 내일 더블헤더로 집에 그만큼 늦게 간다는 뜻이다. 원래 내일은 경기 끝나고 올라가는 길에 어버이날 겸사겸사해서 친정 식구들과 같이 식사를 할 예정이었다. 추가로 바뀐 경기는 4시 반이니 저녁 식사는 못하게 되었다. 나와 셋째는 빼고 다른 식구들만 하는 수밖에.      


경기가 취소되었다는 말에 아들은 갑자기 화색이 만면에 가득해졌다. 솔직히 누가 비 오는 날 경기를 하고 싶겠는가. 지켜보는 부모님들 마음도 정말 불편하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져서 나는 아이와 영화라도 한 편 모처럼 볼까 싶었는데 집돌이 아들은 단숨에 노! 를 외쳤다. 호텔 방에서 넓은 티비 화면으로 유튜브를 모처럼 마음껏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너의 그 시꺼먼 마음 다 보인다 보여!    

 

나라도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솔직히 없잖아 있었으나 일단 몸이 너무 무거웠다. 아침부터 생리통이 심해서 휴일날 여는 약국을 찾아서 약을 먹고 들어와 눕자마자 몸이 그냥 녹아버렸다. 이렇게 3시간 정도 졸다가 자다가 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평소에는 절대 보지 않는 드라마 요약 몰아보기를 두 시간이나 보고 드디어 저녁을 먹으러 나갈까 싶었으나.... 아들은 그냥 치킨을 시켜 달라고 했다. 오늘의 나는 치킨이 싫은데...... 뿌** 치킨이 먹고 싶다고 해서 시켰고 먹자마자 느글거려서 결국 세 조각이나 먹었나 싶다. 먹고 나니 또 졸렸다. 먹고 반 누워있고 다시 먹고 졸리고 그러다 자고..... 내 앞에는 온갖 야구 관련 영상이 쉴새 없이 돌아가는 티비가 계속 켜져 있고...이게 진정한 폐인의 삶 같다. 몇 시간을 방에만 이렇게 있었더니 머리까지 아프기 시작했다. 몸에서는 카페인을 부르짖고 있지만 이 늦은 시각에 커피를 마시면 또 밤에 잠을 못 잘까 두려워 참아 보기로 했다.      


원래 시간이 이렇게 있으면 책도 읽고 그림도 그리려고 바리바리 싸들고 왔었다. 혹시라도 연습실을 알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 피아노 악보들까지 들고 왔는데 날씨도 몸도 물먹은 솜처럼 축 늘어지니 뭔가에 불태울 만큼 에너지가 발생되지 않는다는 사실도 새삼 한 번 더 느끼게 된다. 내일은 밖에서 길게 머물러야 하는 하루가 될 테니 그냥 오늘 하루 그동안 너무 바쁘게 몰아갔던 나에게 하루 정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을 줘 보기로. 그래서 기껏 꺼낸 커피는 다시 슬그머니 한쪽으로 밀어 넣었다. 그렇게 잤는데도 졸리니 다시 일찍 자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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