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May 18. 2024

너무 심각하면 거부할 수도 있어요

매일의 루틴을 정립하고 있다. 그동안 늘 했던 일들이지만 하나하나 정하고 지워간다. 그중 하나가 하루에 매일 한 공간을 청소하고 정리하는 일이다. 손댈 곳은 많고 시간과 에너지는 한정적이니 아차 하는 순간 집안은 정리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정했다. 하루에 한 곳만 하기로. 가끔 조금 더 할 때도 있지만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다. 그래서 요새 미루었던 혹은 하려고 했으나 밀렸던 공간들을 하나씩 청소하면서 정리하고 있다. 그리고 가능하면 그대로 유지하려고 정말 노력하고 있다. 지난번에 치워둔 주방 공간은 그대로 잘 유지하고 있고 거기서 조금씩 넓혀간다. 아이들 하얀 옷을 다 비벼서 새 옷처럼 하얗게 빨아두는 것도 슬슬 물때가 거스르려고 하는 화장실 청소도 냉장고를 조금씩 파 먹는 것도 모두 하루에 하나씩 하는 청소와 정리의 일이다. 


지난 하루는 작정하고 출장실내세차를 요청했다. 가격은 십만 원 대로 조금 비싸기도 하지만 출장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내가 사는 곳까지 오니까 편리하다. '세차를 해야지, 해야지' 하다가 미루고 있었는데 포인트 소멸 알림 문자가 와서 거의 1년 만에 (이 업체에서) 세차를 하게 되었다는 것도 그제야 알았다. 


아들이 야구를 하고 야구하는 아이들을 태우다 보니 신발에서 모래가 떨어져 차량 바닥은 금세 더러워지기 일쑤다. 처음에는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나중에는 그냥 반포기 하는 마음으로 쓰레기만 대강대강 줍고 더 이상 쌓이지 않는 정도로만 유지했다. 나는 바닥이 더러우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사람이라서 운전할 때마다 힘들었다. 오늘도 야구부 아이들을 태우고 와서 필연적으로 차 바닥에 떨어진 모래를 발견하고는 주워서 빼내었지만 다 뺄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날 저녁은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오시기를 기다렸다. 차 안에 있는 쓰레기도 다 비우고 잔 짐들도 웬만한 것은 다 빼놓고 기다렸다. 있는 것은 무거운 물건을 운반하는 접이식 카트와 방향제 통뿐이었다. 1시간 반정도 걸린다고 하시던 기사님은 10분 정도 더 지나서 다 되었다고 연락을 주셨다. 얼른 내려가서 음료수를 하나 드리는데 표정이 안 좋으시다. 그러더니 굳은 표정으로 말씀하신다.


"청소를 좀 더 자주 하셔야 합니다. 차량 상태가 너무 안 좋으면 시공을 거부할 수도 있어요. 이번에는 너무 심했어요." 


그렇게 날카롭게 말하시고는 휙 가버리셨다. 나는 당황스러웠고 기분이 안 좋았고 부끄러웠다. 그렇게까지 심했을까? 할 수 있는 한 최대로 바닥과 서랍 등 공간에 있는 모든 것을 빼내고 비워서 청소하시기 좋도록 노력했는데....


사실은 원래 예약하던 지점이 예약이 가득 차서 인근의 다른 지점에 부탁을 드렸다. 나도 안다. 아이 넷이 타고 야구부 아이들이 타는 내 차가 그리 깨끗하지는 않다는 것을. 그런데 그렇게 대놓고 면박을 받으니 마음이 심란했다. 가만히 차 안에 들어와 깨끗하게 청소된 공간을 보았다. 차는 깨끗했으나 마음은 복잡하다. 이어서 고객만족도 평가 설문 링크가 날아왔으나 차마 응답하지 못하고 창을 닫아 버렸다. 보통은 만점을 드렸을 텐데 확 쏘아붙이는 말투는 나를 망설이게 했다. 차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부끄러움? 그래서 마음을 상하게 해 드렸다는 죄송함? 여러 가지 사유로 심경이 복잡했다. 


인근의 세 지점 중 유일하게 빈자리가 있는 지점이었는데 오늘 겪고 나니 이유를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같은 내용이어도 "차가 다른 차 보다 좀 심각해서 많이 힘들었고 시간도 더 걸렸습니다. 다음에는 조금 더 자주 출장 요청을 부탁드립니다."라고 부드럽게 말씀해 주셨다면 그저 부끄럽고 죄송한 마음만 들었을 것이다. 분기별로 요청을 드리거나 어쩌면 지난번에 현금으로 따로 사례를 드렸던 것처럼 드릴 수도 있었겠지. 처음 해 주신 분께는 요청하지 않으셨지만 내가 알아서 별도로 감사금을 봉투에 챙겨드리기도 했다. 아마 앞으로는 이 분께 더 이상 부탁을 드리지는 못할 것 같다. 날카로운 말투에 마음이 상한 것이 주 이유는 아니다. (안 상했다고 하지는 않았다. 나도 사람이니까.) 그것보다는 앞으로 그분의 기분을 또 상하게 할까 하는 두려움이 더 크기 때문이다. 다음에도 마음이 상하실지 모르는데 굳이 모험을 하면서 또 같은 분께 요청을 드릴 용기는 없는 것이, 또 소심한 나란 사람이라는 것을 이번에 다시 알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아침형 인간으로 살기 위한 몸부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