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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17. 2024

나 승진 포기했어

"여울아 나 승진 포기했어."

    

아침에 출근하는데 친구에게서 문자가 왔다. 승진을 포기했다고.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알기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어 마음이 내려앉았다.     


우리는 대학교 시절 같은 과 동기였고 몇 달 후 서로 같은 동네에 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인사는 하고 다녔지만 서로 친한 친구들이 달랐다. 달라도 친할 수는 있지만 어쩐지 둘이서는 서로 얼굴은 아는 지인 정도의 무게로 지냈다. 오히려 그녀가 속한 그룹의 친구 H와 같은 동아리를 할 정도로 친했다. 서로 사이에 mutual friend라고 하는 친구가 있어도 우리의 사이는 약간은 어색한 느낌이었고 졸업 후에는 당연히 자연스럽게 연락이 끊어졌다.      


그러다 서로 다시 만나게 된 것은 8년 전, 오랜 육아휴직을 마치고 복직했던 해 출근길이었다. 그때 근무하던 학교는 직선거리는 매우 가까웠지만 대중교통으로는 가끔 50분씩 걸릴 정도로 교통편이 안 좋았다. 차로 15분 정도 걸렸지만 차를 매일 사용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고민 끝에 나는 사이사이 골목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다니면 20분 안팎으로 걸렸다. 


그렇게 씩씩하게 빠르게 걸어가던 어느 날 아침, 맞은편에서 한 여자분이 “혹시 여울이 아니니?”하고 말을 걸어왔다. 헐, 내 과 동기 그녀였다!!!! 12년 정도 만에 보았는데 어쩌면 어색했을 수 있었을 그 기운은 순식간에 사라졌고 우리는 그날 출근 시간 라인에 간당간당할 정도로 수다를 떨었다. 그전에도 나를 보긴 했는데 너무 빠르게 길 저편에서 걷고 있어서 긴가민가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아침에 가끔씩 보게 되면서 우리는 반갑게 인사하고 소식을 나누고 고민을 나누는 사이가 되어갔다. 세상 일은 그리고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것이다. 대학교 시절 그렇게 친했던 몇몇 친구들과는 어찌어찌하다가 연락도 잘 안 하는 사이가 되었는데 강산이 한 번 반 바뀌고 나서 만난 동기와는 이렇게 가깝게 될 수 있다니.      


대학생 때 멋진 가방을 선물 받을 정도로 가까운 연인이 있던 친구라 진즉 결혼을 했을 줄 알았는데 결혼은 좀 늦게 했고 그 사이 좋아하던 분야의 박사 과정까지 다 마쳐서 대학교 강의까지 나간다고 했다. 온갖 부장을 도맡아 하는 능력자로 차근차근 관리자로 갈 길도 다져가고도 있었다. 생활부장 일을 할 때 먼저 오랫동안 했던 이 친구의 도움을 좀 받기도 했다. 장학사 시험도 2번이나 통과했을 정도로 똑똑하고 출산 후에도 곧바로 다시 부장 일을 할 정도로 열심이었던 친구.    

 

학교를 옮길 때가 되었다며 한참을 고민했었다. 그러다 올해 새로운 학교의 연구부장으로 초빙을 받아 갔는데 너무 힘들다는 것이다. 그 학교의 교장님은 친구에게 대학교 강의도 나가지 말라고 하시고 어떤 일을 하던지 일을 못한다고 계속 핀잔을 주시니 바보가 되어 가는 기분이라고 했다. 교직 생활을 20년 정도 하다 보면 그 사이에 육아휴직 기간이 끼어 있어도 대충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사이가 된다. 내 친구는 지금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선생님들과도 많이 연결이 되어 있는데 모두가 그 능력과 성품을 인정해 주는 열정 교사였다. 즉, 내 친구라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것은 아니란 뜻이다. 몇 년을 봐 오면서 관리자가 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학교를 옮긴 지 불과 2달 남짓 만에 그 마음을 접을 수 있게 하다니. 내가 다 속상했다.      


하지만 친구는 담담했고 오히려 홀가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되니 오히려 좋다는 것이다. 아이를 잘 키우고 가족에게 충실하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겠다고 했다. 모르긴 몰라도 십 년이 훨씬 넘는 기간을 몰두했던 일에서 마음을 접을 수 있다니 그녀가 다르게 보였다. 다르게 보이는 정도를 넘어서 정말로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존경스러운 마음도 들었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해서 과감하게 접을 수 있는 그 결단성은 아무나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우리 나이 이제 마흔 중반. 낭중지추라고 했던가. 어디에 있든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이 안 보일 수가 없다. 그렇기에 굳이 스스로가 나서지 않더라도 이 기간이 지나면 그녀의 탁월한 능력을 높이 사서 그녀를 필요로 하는 학교가 있을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다시 주어질 때 차근차근 걸어갈 그 모습도 함께 말이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상황을 격려하고 응원하고 방학 때 얼굴을 보기로 하고 그렇게 마무리했다. 가끔 생각한다. 오래된 인연, 새로운 인연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인연들 모두 참 감사하다. 멋지게 살아가는 좋은 인연들이 곁에 있는 나는 참 복을 많이 받은 사람이다. 더 중요한 것을 위해 아닌 것을 접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진 그녀를 보면서 또 나는 지금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떤 지혜로 분별을 해야할 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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