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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n 20. 2024

점심 놀이권이 사라진 이유

8월인가 싶을 정도로 더운 6월. 지난주에 아이들과 체육을 하기 위해 운동장에 나갔다가 당분간은 운동장 체육을 하지 말기로 결정했다. 운동장 사용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4교시인 11시 반은 정말로 지글지글거렸고 뛰지 않는 나 조차도 정수리가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로 큰일 나겠다 싶어 20분 만에 아이들을 스탠드에 앉히고 쉬게 했다. 얼굴이 발갛게 달아오르며 허덕이는 아이들이 너무 많았다. 3분의 2는 앉아 있는데 다른 3분의 1은 그러거나 말거나 운동장에서 정말 신나게 뛰어다녔다. 빅발리볼로 배구형 게임을 연습하는 날이었는데 얼마나 기운차게 뛰어다니는지 경이로울 지경이었다. 일단 이 더위가 사그라질 때까지 - 대략 9월 중반 - 교실체육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교실에서도 다양한 체육 활동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활동력이 왕성한 남학생들이 점심 놀이권을 사고 싶다고 했다.

점심 놀이권은 점심시간에 바깥에서 놀 수 있는 일종의 티켓이다. 이 티켓이 존재하는 이유는 함께 움직이기로 한 우리 반의 약속 때문이다. 작년 식당에서 5학년 아이들을 볼 때마다 좀 의아한 생각이 들었었다. 식당에서 가끔씩 거침없이 활보를 하기도 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종종 목격되었다. 몇몇은 내가 얼굴까지 외울 정도였다. 학교 식당에서의 예절이 중요한 것은 3개 학년 거의 서른 개의 과밀 학급 아이들이 시간차는 있을지언정 함께 밥을 먹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배식을 받고 이동하는 사이사이에서도 우리는 아이들끼리 부딪힐까 조심스럽다. 저 활발한 5학년 아이들을 보면서 혹시라도 내가 6학년을 한 번 더 하게 되면 이 부분은 같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같이 조용히 내려가 밥을 먹고 같이 교실로 같이 올라오기로 했다. 운동장은 다른 반 수업이기도 하고 교사 없이 아이들만 내려보낼 수 없으니 점심시간에는 갈 수 없는 곳이다. 거기에 1학기 동안 엘리베이터 설치 공사를 하기 때문에 후관과 본관 사이에서 놀게 할 수가 없어서 더더욱 그랬다.


그러다 어린이날 선물로 점심놀이권을 랜덤으로 주었다. 밥을 먹고 올라오는 길, 놀이마당의 한편에서 놀 수 있는 권리였다. 한 번 자유의 즐거움을 맛본 아이들은 점심에 놀고 싶었다. 점심에 놀기 위해서는 미리 해야 할 것도 많다. 세줄 쓰기도 해 두어야 하고 1인 1역도 다 해 놓아야 가능하다. 그리고 운동장 체육을 처음으로 할 수 없었던 그 주의 화요일, 우리 반 에너자이저 3인방은 내게서 점심 놀이권을 보무도 당당하게 지불하고 놀이마당으로 조금 일찍 나갔다. 보통 급식을 25분이면 다 먹는데 조금 더 빨리 먹고 20분에 나간 것이다. 나는 마음이 불안했다. 저 기운 찬 아이들을 내 시야 밖에 두어도 되는 것일까. 그래서 나머지 아이들을 데리고 산책 겸 놀이마당 근처를 천천히 걸으며 뛰어노는 삼인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렇게 위험하게 노는 것 같지는 않아서 안심하고 교실로 들어서자마자 무릎에 커다란 밴드를 붙이고 ㅈㅎ이가 들어왔다.


"아닛, ㅈㅎ아!!! 왜 이렇게 된 거야???!!!!!"

"뛰다가요오, 넘어졌어요!"

"그러니까 어떻게!!"

"휘익! 하고 뛰다가 쓰윽! 하고 넘어졌어요!"


하필 반바지라서 무릎이 진짜로 엄청나게 쓸렸다. 보기만 해도 아플 지경이었다. 밴드에 피가 벌겋게 묻어 나오고 있었다.

"6교시 끝나고 보건실에 한 번 더 가서 밴드 새 걸로 붙이고 가. 알겠지?"

"그렇잖아도 보건샘이 집에 가기 전에 한 번 더 들리라고 하셨어요!"

그러거나 말거나 ㅈㅎ이는 해맑았다. 이 정도 상처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처럼. 나 혼자만 애가 타지 그냥. 그리고 그 후로는 아무도 점심 놀이권을 사러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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