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소매 붉은 끝동' 5화 중
'옷소매 붉은 끝동' 덕분에 '연모'가 끝나고 마음이 헛헛할 겨를도 없이 드라마 시청 연착륙을 할 수 있었다. 꾸준히 연기활동을 해 온 2PM의 멤버 준호가 맞춤 옷을 입은 듯 찰떡같이 세손저하를 연기해 주어 즐거운 마음으로 보고 있다. 특히 5화 엔딩에서 덕임의 진심어린 말에 눈물을 또르르 흘리는 장면을 보며 '아.. 준호 연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뜨겠구만..' 싶었더니 역시나...[vogue '이준호, 우리 궁으로 가자']
5회 중 할아버지(영조, 이덕화 분)의 명으로 좋아하는 책도 볼 수 없는 채로 동궁에 갇혀있게 된 세손을 위해 덕임이 시를 읽어주는 장면이 있다. 바로 세손이 선물해 준《시경(詩經)》중 한 편이다. 패관소설을 좋아하는 덕임이에게 이런 경전을 선물로 주었다는건 '엔딩 후 서브남을 주웠다', '남주의 첫날밤을 가져버렸다' 같은 웹소설을 좋아한다고 하니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을 읽으라며 주는 것과 다를게 없다. 덕임이가 선물인가 벌인가 헷갈릴 만도 하지.
《시경》은 중국의 오래 된 시를 모아놓은 것으로 사람의 감정을 잘 표현하고 바른 마음을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여 오랜 시간 경전으로 사랑 받아왔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삼천 년 전에 불려지던 노래가 전해져 온 것이기 때문에 의미를 알기 어려운 단어들도 있고 다르게 쓰이는 단어들도 많아서 해석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이천 년 정도 된 해설서도 있고, 그 이후 학자들도 해석을 많이 해 왔기 때문에《시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뿐 아니라 해설서까지 추가로 공부가 꼭 필요한 경전이기도 하다.
이것이 덕임이가 시경을 읽어준다고 하자 세손이 뜻은 알고 읽는 것이냐며 구박아닌 구박을 하는 이유다. 세손이 그저 무시하고 잘난척 하느라 하는 말이 아니라는...
하지만 총명한 덕임이는 역시 공부를 잘 해왔는지 시를 잘 읽어낸다. 읽고 있는 시의 제목은〈북풍(北風)〉이다. 북쪽에서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은 포악한 정치를 비유한 것으로 이 때문에 나라가 장차 위험해 질 것이니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서둘러 떠나자는 내용이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돌아가리
惠而好我 攜手同歸
혜이호아 휴수동귀
은혜 혜(惠)에는 은혜라는 뜻 뿐 아니라 사랑, 인자함, 순함 등의 여러 뜻이 있다. 옛 해설서에 여기의 혜(惠)는 '사랑 애(愛)'의 뜻으로 보아야 한다고 해설이 달려 있다. 아마도 위험한 상황에서도 손을 꼭 붙잡고 가야 할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본 모양이다.
사도세자의 아들이기에 계속해서 세손의 자리를 위협받고, 실제로 즉위한 이후에도 암살 위협에 시달려야 했던 고단한 삶이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 힘이 되어주고자 손을 내미는 덕임의 마음을 전하기에 좋은 내용이다. 작가님께서 어찌 이런 시를 다 아시고 적재적소에 배치를 하셨는지 대단하시다!
남은 방영 회차 동안 또 옛 글을 만나볼 수 있기를 기대하며 세손과 덕임이 함께 읽어 내려간 시의 전문을 옮겨본다.
〈북풍(北風)〉
北風其涼 雨雪其雱 북풍기량 우설기방
惠而好我 攜手同行 혜이호아 휴수동행
其虛其邪 既亟只且 기허기사 기극지차
북풍은 차갑게 불고 눈은 펄펄 쏟아지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떠나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北風其喈 雨雪其霏 북풍기개 우설기비
惠而好我 攜手同歸 혜이호아 휴수동귀
其虛其邪 既亟只且 기허기사 기극지차
북풍은 차갑게 휘몰아치고 눈비는 훨훨 휘날리네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함께 돌아가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
莫赤匪狐 莫黑匪烏 막적비호 막흑비오
惠而好我 攜手同車 혜이호아 휴수동거
其虛其邪 既亟只且 기허기사 기극지차
붉지 않다고 여우가 아니며 검지 않다고 까마귀 아니런가
사랑하여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손 붙잡고 수레에 오르리
어찌 우물쭈물 망설이는가 이미 다급하고 다급하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