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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은 Jan 30. 2022

“이제 캐나다사람 다 됐네!?”

캐나다 목사생활 (1) 캐나다에 와서는 아시아사람이 되었다


“이제 캐나다사람 다 됐네!”


가끔씩 파트너와 내가 주고받는 우스갯소리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 이주한 지 햇수로 5년이 되어 간다. 아침식사로 팬케이크에 버터를 슥슥 바르고 메이플 시럽을 듬뿍 뿌려 먹으면서 (느끼하다고 느끼는 대신) 부드럽고 향긋하고 맛있다고 느끼며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을 때, 식당에서 나오면서 팁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15 퍼센트를 줘야 하는지, 아니면 20 퍼센트를 줘야 하는지, 아니면 안 줘도 되는지, 더 이상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지 않고 적당히 팁을 낼 때, 겨울에 ‘영하 38도, 체감온도 영하 50도’ 라는 일기예보를 확인해도 더 이상 핸드폰의 날씨앱이 고장이 난 건 아닌가 의아해하지 않을 때, 그런 날씨가 한 일주일쯤 계속되어도 그런가보다 하고는 더 이상 경악하지 않을 때, 우리는 서로를 ‘캐나다사람’ 같다며 놀린다.


캐나다사람이 ‘다’ 되었다는 농담은 어떤 일상적 실천이 캐나다사람이라는 정체성과 연결된다는 상상과 아무리 캐나다적인 방식에 익숙해져도 아시아계 이민자가 진짜 ‘캐나다사람’에는 궁극적으로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예상을 담고 있다.


근대 민족/국가가 “상상된 공동체”(베네딕트 앤더슨)라면 캐나다는 어떻게 상상되는가? 캐나다사람은 어떤 사람으로 재현되는가? '다문화사회'를 내세우는 캐나다에서 과연 어떤 사람이 가장 캐나다스러운 캐나다사람으로 표상될까? 온타리오 주에 사는 백인 영어구사자일까, 아니면 퀘벡 주에 사는 백인 불어구사자일까? 수천 년 전부터 캐나다땅에서 살아온 캐나다선주민일까, 아니면 근래 가장 많이 캐나다로 이민을 오고 있는 인도계 캐나다인일까?


캐나다국적항공사의 텔레비전 광고에 한국계 캐나다인으로 주로 미국 연예계에서 배우로 왕성하게 활약하는 샌드라 오가 출연한 적이 있다. 샌드라 오는 공항에서 캐리어를 끌고 비행기를 타러 걸어가는 길이다. 그이는 다른 행인과 살짝 스칠 뻔 했을 뿐인데 연신 미안하다는 사과를 거듭한다거나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타인들을 위해 배려하는 행동을 한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한다. “캐나다사람이라는 사실 때문에 칭찬받는 게 너무 의아해요.”


https://vimeo.com/378843742


샌드라 오는 아시아계 이민자이지만 백인 캐나다인들이 스스로를 상상하는 방식, 즉 ‘사과’를 자주 하고 몸에 배인 친절을 베푸는 캐나다사람다움을 체현하며 캐나다 외부를 지시하는 공항이라는 공간에서 캐나다의 ‘다문화주의’를 매개한다. 캐나다국가의 제목처럼 “오, 캐나다!”인 것이다. 유색인 이민자라는 배경을 지닌 샌드라 오는 인종갈등이 (캐나다보다) 심각한 미국에서 활동하기에 은연 중에 미국보다 나은 캐나다, 오, 감탄이 절로 나오는 통합된 캐나다를 효과적으로 재현한다.


누가 캐나다사람으로 상상되는가? 이는 매우 유동적이고 가변적이다. ‘임시 거주자’라는 법적 신분이 ‘영주권자’로, ‘시민권자'로 바뀌게 되면, 캐나다사람이 다 되었다고 느끼게 될까? 캐나다에서 태어난 이민자의 자녀는 “충분히” 캐나다사람인가? 최근 코로나 시기에 북미에서는 아시아인을 대상으로 하는 혐오범죄가 급증했다. “니네 나라로 돌아가!” 캐나다로 귀화한 홍콩사람들이 많이 살아서 ‘홍쿠버’라고도 불리는 밴쿠버 시내에서 길 가던 중국계 할머니가 백인 남성의 난데 없는 주먹과 발길질에 쓰러지는 장면은 캐나다에서 아시아인으로 산다는 것의 위태로움을 보여준다. 아시아인은 진짜 캐나다사람이 아닌 존재로 캐나다라는 상상적 이미지에서 배제될 수 있다. 이곳에서 아시아인들은 ‘영원한 이방인’(perpetual foreigner)이라 불린다.  


역사적으로 보면, 캐나다정부는 1885년에 “중국인이민배척법”(The Chinese Immigrant Act)을 통해 터무니없이 높은 인두세(a head tax)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중국계 이민자의 유입을 막았다. 또한 제2차세계대전 중 1942년에는 “전시조치법”(The War Measures Act)이라는 법안으로  당시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에 살던 일본계 캐나다인 중 90 퍼센트에 해당하는 약 21,000명의 일본계 캐나다인의 재산을 압류하고 일본인강제수용소에 가두었다. (캐나다정부는 20세기가 끝나기 전에 이에 대해 그나마 상징적으로라도 사과를 하긴 했다.)


이와같이 인종주의는 단지 소수인종을 향한 폭력적인 말과 행위만이 아니다. 그것은 소수인종의 자유와 권리를 제한하는 법제화를 통해 구조화된다. 또한 일상생활에서 한 등급 아래로 깔아보는 미묘한 차별적 뉘앙스(micro aggression), 미디어가 반복해서 재현하는 아시아인에 대한 고정관념 등을 통해 인종주의는 부드럽게, 문화적인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정당화되고 재생산된다.     


아시아인. 캐나다에 와서 너무 낯설고 어색했던 것 중 하나가 내가 ‘아시아사람’으로 불린다는 점이었다. 중국인과 일본인, 대만인 정도의 동아시아 문화권은 어느 정도 이해가 가지만, 인도인,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필리핀인, 베트남인, 태국인, 인도네시아인, 말레이시아인, 이란인, 아프가니스탄인 등 내겐 전혀 다르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모두 하나의 인종 카테고리에 욱여넣어진다.


하지만 ‘아시아인과 아시아계 캐나다인’이라는 이름은 지극히 ‘정치적인’ 명명으로 인권 운동이 한창이던 1968년에 고안된 것이다. 이는 북미 대륙에서 인종주의에 맞서는 아시아계 이민자들의 연대라는 특수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그 이전까지 북미에서 인종표기는 “코카시안(백인) 혹은 기타"였지만 이제는 아시아인, 이라는 범주에 인종적 정체성을 주장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시아인을 향한 혐오범죄가 일어나도 별 대단한 일도 아니라는 듯이 체계적으로, 일상적으로 작동하는 백인우월주의 사회에서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 즉 중국인이나 일본인, 인도인, 필리인이 아니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진다. 백인우월주의의 지배와 억압에 맞서야 하는 북미의 상황 속에서 나는 그 무엇보다 아시아인이다. 유색인이다.


나는 한국사람으로 캐나다에 왔으며 캐나다사람이 아니라 아시아사람이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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