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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Nov 22. 2024

박노해, 『걷는 독서』

신문에서  소개하는 글 중에 박노해의  『걷는 독서』에서 가져온 문장이 있었다. 본문을 확인도 할 겸  내킨 김에  『걷는 독서』를 읽기 시작하였다. 읽게 된 동기 중에는 박노해에 대한 궁금증, 경외심도 있었다.

우리가 대학 다닐 때는 정치, 사회, 경제의 격변기였다. 활화산처럼 타오르던 민주화, 자유화, 선진화의 요구가 봇물처럼 쏟아지던 때였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대학은 날이면 날마다 데모와 최루탄 연기에  휩싸였고, 대학생들은 개인의 영달보다 정치와 사회의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여 행동하였다. 그중의 하나가 근대화, 경제화에 발맞추어 등장했던 노동 계급에 대한 권리와 존중에 대한 것이었다.

그때의 노동운동은 노동 계급의 자발적인 것보다는 의식 있는 학생들이 노동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형태가 주류였다. 전태일의 분신 사건과 동일방직 여성 노동자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의 소식을 통해 노동 현장의 열악하고 비인간적 조건에 눈을  뜬 대학생들이 노동자들의 권익 보호와 처우 개선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대학생들은 노동자는 아니었다. 그들이  노동자들을 위하여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가상했지만 현장을 지키는 노동자들의 실제적 삶과는 괴리가 있었다. 대학생들이 쓰는 대자보, 시, 소설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실상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진짜 노동자들의 심정과 상황을 고스란히 전달할 수는 없었다. 대변자들이 갖는 한계였다.

서슬 푸른 정치적 탄압 속에 숨죽이던 어느 날, 진짜 노동자의 진짜 노동시집이 발간되었다. 1984년에 출간된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아직도 기억한다. 『노동의 새벽』의 강렬한 책표지와 그 안에 실렸던 구구절절한 노동의 목소리를. 그리고, 박노해를.


서슬 푸른 군사정권의 금서 조치에도 『노동의 새벽』은 100만 부 이상이 팔려나가면서 우리 사회를 강타했고 노동자들을 위하여 앞장서서 여러 모양으로 노동자들을 대변하던 사회를 숨죽이게 만들었다. 노동의 현장에서 피와 땀으로 쓰여진 시는 노동자연하는 사람들과 노동시인 듯 한 시 들을 한 순간에 발가벗겼다. 마치 빛인 듯 행세하던 것들이 진짜 빛 앞에서 빛을 잃은 것처럼.

박노해는 본명이 아니다. '박해받는 노동자 해방'이라는 뜻으로 독재 정권의 눈과  그의 뒤를 쫓는 검문을 피하기 위해서 쓴 필명이었다. 박노해는 『노동의 새벽』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금서가 되는 소란 속에서도 얼굴을 드러내지 못했다. 이름하여 '얼굴 없는 시인'이 된 것이다. 얼굴 없는 시인에 대한 추측도  난무하여 대학생이  노동자로 위장하여 쓴 시라거나 심지어  북한 공작원의 글이라는 말까지 나돌았다.

박노해는 도피생활 중에 <남한사회주의노동자연맹(사노맹)>을 결성하여  다시 한번 세상을 뒤흔들었고 전 국민의 숨죽인 주시 아래 수배와 추적과 도피의 숨바꼭질을 하였다. 이런 과정을 7년여 동안 계속하다  박노해는 결국은 체포되어 사형을 구형받았다. 온 국민이 박노해의 실물을 매스컴을 통해 접하던 날, 국민들은 또다시 놀랐다. 거친 노동 환경과 사노맹이라는 어마무시한 조직의 결성과 기나긴 도피생활의 압박과 피로 속에서 사형을 언도받은 죄수가 해맑고 환하게 웃는 모습은 오히려 억압과 탄압으로 한없이 위축되고 쪼그라든 우리들을 부끄럽게 하기에 충분했다.

박노해는 무기징역형을 받아 수감되었다가 7년 6개월 만에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복권되어 석방되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 유공자들에게 지급된 국가보상금을 거부하였다. 출옥 후의 그의 행보를 주시하던 사람들의 관심을 뒤로하고 '과거를 팔아 오늘을 살지 않겠다'며 전 세계의 전쟁과 분쟁지역을 찾으면서 평화를 주장하고 전파하는 평화운동가가 되었다. 전쟁의  참상과 피해, 그리고 가난과 분쟁의 현장마다 찾아다니며 희생자들과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평화 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걷는 독서』는 사진이 곁들인 잠언집, 묵상집이다. 분량은 900쪽에 달하지만 짧은 경귀나 잠언 같은 내용으로 읽어내기에 부담은 없다. 다만 한편 한편을 쉽게 읽어내려갈 수는 없다. 한편 한편마다 마음을 울리고 머리를 탁 치는 대목에서 멈추어 명상하고 묵상하고 오래 생각해야 한다.  책장을 펴놓고, 책장을 덮고 한참을 생각하게 하기에 읽기에 오래 걸리는 책이다.


 『걷는 독서』 앞표지에 실린 박노해 소개 글을 인용한다.


서문에서 박노해는 말한다.

⁠ - 돌아보니 그랬다. 나는 늘 길 찾는 사람이었다. 길을 걷는 사람이었고 '걷는 독서'를 하는 이였다.

- '걷는 독서'는 나의 일과이자 나의 기도이고 내 창조의 원천이었다. 나는 그렇게  길 위의 '걷는 독서'로 단련되어 왔다.  내 인생의 풍경을 단 한 장에 새긴다면 '걷는 독서'를 하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한다.

- 돌아보니 그랬다. 가난과 노동과 고난으로 점철된 내 인생길에서 그래도 나를 키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밀어 올린 것은 '걷는 독서'였다.  어쩌면 모든 것을 빼앗긴 내 인생에서 그 누구도 빼앗지 못한 나만의 자유였고  나만의 향연이었다.

-어느덧 내 생의 날들에 가을이 오고  흰 여백의 인생 노트도 점점 얇아지고 있다. 만년필에 담아 쓰는 잉크는  갈수록 피처럼 진해지기만 해서,  아껴 써야만 하는 남은 생의 백지를 묵연히 바라본다.

박노해는 걸으면서 보는  모든 것이 독서였다고 말한다. 아니, 살아가는 것 자체가 독서라고 말한다. 인생은 한 권의 책이요. 삶이라는 것은  그 인생의 책을 써가는 과정이라고 말한다.  『걷는 독서』의 마지막 즈음에서 박노해는 이렇게 쓰고 있다.

나는 단 한 권의 책을 써 나가고 있다. 삶이라는 단 한 권의 책을. 생을 다 바쳐 쓴 내 소멸의 책을.   
   I am engaged  in writing just one book, a single volume entitled Life, my expiring book written with all my life.

그러면서 그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한다.

어디서든 어디서라도 나만의 길을 걸으며 '걷는 독서'를 멈추지 말자. 간절한 마음으로 읽을 때, 사랑, 사랑의 불로 읽어버릴 때, 『걷는 독서』는 나를 키우고 나를 지키고 나를 밀어 올리는 신비한 그 힘을 그대 자신으로부터 길어내 줄테니. '걷는 독서'를 하는 순간, 그대는 이미 저 영원의 빛으로 이어진 두 세상 사이를 걸어가고 있으니.     - - 서문-

『걷는 독서』에 실린 모든 시편이 다 주옥같으나 그중에 몇 편을 소개한다.

서문보다 앞에 실려 있는 글이다.


삶에 대해 망설이거나 길을 잃어버렸다고 생각될 때 읽어야 할 글이라고 생각되는 문장들이 있다.

- 제일 좋아하는 열 개의 단어를 적어보라. 제일 경멸하는 열 개의 단어를 적어보라. 그러면 내가 누구인지 드러날 것이다.
Write down your favorite ten words. Write down the ten words you most despise. Then you'll see clearly who you are.

- 옳은 일을 하다가 한계에 부딪혀 여기서 그만 돌아서고 싶을 때, 고개 들어 살아갈 날들을 생각하라. 지금 스스로 그어버린 그 선이 평생 나의 한계선이 되리니.
When you come up against a limit after doing what is right, long to give up and turn back, think of days when you will live with head held high. The line I draw for myself now will become a boundary line forv the restv of my life.

- 나 어떻게 살 것인가 막막할 때는 어떻게 살지 말 것인가를 생각하라.
    When at a loss how I should live, think about how not to live.

- 사랑은 기꺼이 닳아가는 것. 조금은 지쳐 있고 얼룩진 모습 그대로가 내 눈물겨운 사랑의 흔적이니.
Love is glad to start wearing out. Simply looking slightly weary and stained is the sign of my tearful love.     


무명이지만 현재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나의  글에 대한 바람과 같은 글도 있다. 진실로 나의 글이 사치나 허영이 아닌 진솔하고 낮은 삶의 고해이기를 기도하는 마음이다.

- 내 작은 글씨가 꽃씨였으면 좋겠다. 네 가슴에 심겨지는.
I wish my letters were flower seeds sown  in your heart.  

- 쓰는 것이 삶이 되게 하지 마라. 절실한 삶이 써 나가게 하라
  Don’t let writing become your life. Let you fervent life issue in writing.

- 나의 글이 배부른 자의 간식이 아닌 가난한 자의 양식이기를.
I would like my writing to become food for the poor, not a snack for the well-fed.


또, 나의 삶의 기준으로 삼아 왔던 것들이 박노해의 문장으로 드러난 것도 있다.

-적은 소유로 기품 있게
  Gracefully with few possessions.

- 단순하게, 단단하게, 단아하게
   Simply, Firmly, Gracefully.   

-삶을 허겁지겁 살지 않기. 생의 정수만을 음미하며 살기.
  Not rushing through life. Living savoring the essence of life.


내가 보는 박노해는 구도자다. 험난한 세상에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박노해의 걸음은 그대로 길이 되고 삶의 방향타가 된다. 그의 선의의, 평화의, 나눔의 삶이 온전하게 성공하였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그 자체로 우리에게 희망이 될 것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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