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책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제일 많이 떠올린 단어는 <수렴(convergence)>이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오롯이 자신이 쓰고자 하는 글을 중심으로 펼쳐질 수 있을까. 꺾일 법한 위기들 속에서도 이야기꾼의 길을 포기하지 않는 그를 보면서 나는 소설가 베르베르이기 이전에 인생 선배인 인간 베르베르에게 애정과 더불어 존경하는 마음을 품게 되었다. 475쪽.
이번 책의 원제는 <개미의 회고록>이다. 『개미』의 작가로 대중에게 인식되는 작가가 개미처럼 써온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뒤늦게 기록한 일기처럼 읽힌다. <일기>라는 표현을 쓴 것은 그만큼 작가의 숨김없는 자기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책은 성공한 작가 베르베르가 초보 작가들에게 건네는 글쓰기 안내서이기도 하다. 작가는 책에서 『개미』를 쓸 때 누군가 옆에서 조언해 주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시간을 많이 절약할 수 있었으리라고 아쉬움을 토로한다. 글쓰기에 열정을 느끼는 독자라면 이 책에서 멘토 베르베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475쪽.
긴 몇 초가 흘렀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마치 내가 육체를 빠져나가 밖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듯한 느낌이 든 것이다. 손전등의 비스듬한 불빛만이 그 장면을 비추고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앉은 나, 그리고 내 목에, 아니, 아래에 보이는 <나>라는 소년의 목에 권총을 겨누고 있는 피투성이 얼굴의 사내를 내려다봤다. 순간 생각했다. 삶이 여기서 멈추는구나. 12쪽.
자초지종을 들려주고 돌아가는 생명의 은인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죽음은 이렇게 불시에 찾아오는구나.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나서 눈을 감았다. 삶의 매 순간을 값어치 있게 쓰기로 결심했다. 19쪽.
어렸을 때 나는 여러 종류의 반려 동물을 길렀다. 물고기부터 시작해 거북, 햄스터, 기니피그로 점차 종류를 넓혀 갔다. 그들의 눈높이에서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지,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롭게 관찰한 것은 개미들의 도시였다. 개미들은 어떤 일상을 보낼까? 그들의 삶의 동력은 무엇일까? 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지각하고 어떤 경험을 하며 무엇을 배우는 걸까? 36쪽.
이유는 단순했다. 개미가 유일하게 도시를 세우고 길을 닦는 동물인 데다 다가가도 달아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면 빌라 뒤쪽 웅덩이에 살던 도마뱀과 두꺼비는 마을을 세우지 않을뿐더러 극도로 소심하고 폐쇄적인 동물이었다. 36쪽.
개미들이 펼치는 흥미진진한 세계는 우리 인간들이 처한 조건을 생각하게 했다. 혹시 우리도 생사여탈권을 쥔 어떤 거대한 존재에게 관찰되고 있는 건 아닐까? 만약 그 거대한 존재가 외계에서 온 어린아이거나 초보 신이라면 우리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유리병에 갇힌 주인공 개미들이 탈출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상상하고 그림으로도 그렸다. 여덟 살 하고도 6개월에 쓴 여덟 장짜리 이야기가 바로 『개미』의 첫 버전이었던 셈이다. 37쪽.
전시회 동안 그간 마음속에만 품고 있던 약간은 엉뚱한 생각을 친구에게 털어놓았다. 인간이 아니라, 도시를 형성해 사는 개미를 주인공으로 만화를 만들어 보면 어떻겠냐고. 너무 작아서 인간의 관심을 끌지 못하고 열등하게 취급되는 개미 사회를, 인간 문명의 <선배 격>인 개미 문명을 다뤄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온전한 하나의 문명은 지구상에 존재한 지 벌써 1억 2천만 년이 된 반면 인간의 역사는 불과 3백만 년에 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내 얘기에 지대한 관심을 보인 친구 파브리스의 응원에 힘입어 「개미 제국」이라고 간단히 제목을 붙인 열 장 짜리 이야기를 완성했다. 75쪽.
법대에 진학한 나는 오후에만 수업이 있어 오전 시간이 비는 점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프레데리크 타르와 똑같은 규칙을 만들어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글을 쓰기로 정했다. 작품의 구도를 짜든 실제로 이야기를 쓰든 무조건 하루에 열 장씩 써보자. 규칙을 실행에 옮기자 <향기와 음악이 있는 만화>의 시나리오로 썼던 단편「개미 제국」이 콩나물 크듯 자라 몇 달 만에 1백 장가량의 중편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5백 장, 1천 장 짜리 대작이 되었다. 102쪽.
<잊지 않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기록이다.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기록하는 게 방법이다.> 지금까지 살아오는 동안 내게 자극제가 되고 촉매제가 된 사람을 여럿 만났다. 그들은 내가 더 빨리, 더 멀리 나아가게 도와줬다. 나는 그저 왕성한 호기심을 갖고 그런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가르침을 익혔을 뿐이다. 물론 거기서 그치지 않고 그들의 가르침을 기록해 뒀다. 43쪽.
<소설가가 되는 비결은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글을 쓰는 것이다.> 열일곱 살에 읽은 인터뷰 기사에서 (고둥학교 과학계열 진학에 실패한 내게 큰 위로가 되어 준 소설들을 쓴) 작가 프레데리크 다르는 이렇게 말했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는 철저한 시간 관리가 필수인데, 그 자신은 매일 아침 네 시간씩 글을 쓴다는 것이었다. 102쪽.
법대에 진학한 나는 오후에만 수업이 있어 오전 시간이 비는 점을 활용해 보기로 했다. 프레데리크 타르와 똑같은 규칙을 만들어 매일 아침 8시부터 12시 30분까지 글을 쓰기로 정했다. 작품의 구도를 짜든 실제로 이야기를 쓰든 무조건 하루에 열 장씩 써보자. 규칙을 실행에 옮기자 <향기와 음악이 있는 만화>의 시나리오로 썼던 단편「개미 제국」이 콩나물 크듯 자라 몇 달만에 1백 장가량의 중편으로 변했다. 그러고는 순식간에 5백 장, 1천 장 짜리 대작이 되었다. 102쪽.
소설을 여러 번 고쳐 쓰는 습관은 그때 시작되어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다. 나는 그런 작업을 상대가 가진 구슬의 색깔과 배치를 정확히 맞추기 위해 여러 조합을 시도해야 하는 <마스터마인드> 보드게임처럼 생각하며 한다. 한 가지 플롯을 시도해 봤는데 뭔가 맞지 않고 삐걱거리는 게 발견되면 전혀 다른 플롯을 테스트해 보는 식이다. 그렇게 테스트를 거듭하며 여러 버전을 시험하다 보면 결국 마음에 드는 이야기가 나오게 마련이다. 111쪽.
독서량도 이전보다 엄청나게 늘렸다. 그때부터는 단순히 읽기 위한 독서가 아니라 쓰기 위한 독서, 다시 말해 기술적인 독서를 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장면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특정한 감정을 유발하는지 분석하면서 책을 읽었다. 111쪽.
책 한 권 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딱 30초, 완벽한 아이디어를 찾는 데 드는 시간이라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아이디어라는 씨앗이 아름드리나무로 자라나게 되는 것이라고. 449쪽.
부침을 거듭하면서 작가라는 직업이 단거리 경주가 아닌 마라톤임을 깨닫게 되었다. < 한 방> 터트리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규칙적인 리듬을 유지하면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내게는 끊임없는 자기 쇄신을 통해 독자들에게 새로움을 선사할 의무가 있다. 그때부터 매년 10월 첫 번 째 수요일에 새 책을 선보이기로 나 자신과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엄격한 글쓰기 규칙을 정했다. 299쪽.
『개미』 출간 이후 강직 척추염은 다시 재발하지 않았다. 작가가 되었다는 사실이 신체에도 긍정적 영향을 끼친 게 분명했다. 독자들에게도 강력히 권하고 싶다. 지금 몸과 마음의 문제를 겪고 있다면 당장 글을 써보라고. 글을 쓰는 순간 당신을 짓누르던 중압감이 사라지는 게 느껴질 것이다. 223쪽.
하루 한 시간씩 자전거를 타며 심폐 지구력 강화 운동을 했더니 신기하게도 면역력이 같이 향상되어 겨울에도 예전만큼 자주 감기에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삶을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하루하루가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 같은 시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하루 더 살아 있음을 감사히 여겼다. 396쪽.
내 직업은 나이 제한이 없어서 좋다. 내 은퇴 나이는 오로지 독자만 정할 수 있다. 글을 쓸 힘이 있는 한, 내 책을 읽어 줄 독자가 존재하는 한, 그리고 (어머니가 겪었던 이 병은 집안내력이긴 하지만) 알츠하이머병에 걸리지 않는 한 계속 쓸 생각이다. 내 삶의 소설이 결말에 이르러 이 책의 첫 문장처럼 < 다 끝났어. 너는 죽은 목숨이야>하고 끝을 알려 줄 때까지. 470쪽.
나는 초보 작가들에게 <에크리뱅 ecrivain(writer)>이 아닌 <오퇴르 auteur(author)>가 될 것을 주문했다. 어원을 살펴보면 <에크리뱅>은 뭔가를 쓰고 기입하는 사람이다. 넓게 보면 공증인이나 회계사도 그 범주에 포함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오퇴르>는 라틴어 동사 <augere>에서 파생된 <auctor>에서 온 말이다. <augere>는 <늘리다, 증가시키다, 드높이다>라는 의미다. 내가 쓴 글이 독자의 의식을 드높일 수 있다면, 고양할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대단하고 가슴 벅찬 일 아니겠나. 45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