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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Dec 06. 2024

메리 올리버, 『긴 호흡』

오늘 소개할 책은 메리 올리버의 『긴 호흡』이다. 도서관 서가를 뒤지다 제목에 마음이 끌려 집어 든 책이었다. 『긴 호흡』, 얼마나 매력적인가. 심호흡도 아니고 한 호흡도 아니고 긴 호흡이라니....


작가인 메리 올리버에 대해서도 무지했다. 『긴 호흡』을 통해서 알게 된 메리 올리버는 대단한 시인이었다. 열네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하여 20권이 넘는 시집을 낸 저명한 시인이었다.  1984년에 『미국의 원시American Primitive』로 퓰리처상을, 1992년에 『새 시선집New and Selected Poems』으로 전미도서상을 받고 “ 미국 최고의 베스트셀러 시인”(뉴욕타임스 )으로 평가받았던 시인이었다. 더욱이  2009년에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렸던  911 테러 사건의 희생자 추모식에서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이 추모시로 낭송하였던 시 「기러기」의 시인이었다. 메리 올리버는 월트 휘트먼을 숭배하였으며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게도 깊은 영향을 받은 자연 생태주의 시인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그만큼 자연에 살면서 자연이 주는 경이와 기쁨을 노래했던 시인이었다. 여기에 소개하는 산문집 『긴 호흡』은 올해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한강 작가가 아버지 한승원 소설가에게 추천했던 책이었다고도 한다.

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과 울창한 나무들,
산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기러기」 전문.

내가 보는 메리 올리버는 인생 자체가 시인이었던 사람이었다. 그의 모든 생각과 관찰과  행위는 시로 연결되었다. 이 산문집도 부제로 '시를 사랑하고 시를 짓기 위하여'라고 붙일 정도로 올리버의 삶은 자연과 연결되어 있었고 자연은 그의 시의 원천이었다.  그녀가 숭배하였던 월트 휘트먼처럼 올리버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소박하고 단순하고 조용한 삶이야말로 인간 본연의 삶이라고 생각하였던 것 같다.


책의 맨 앞부분에 올리버는 이런 글을 붙이고 있다. 나는 이 글이야말로 올리버의 자기 선언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 글을 보면서 나도 나의 모든 글쓰기는 나에 관한 것이고, 리에 관한 것이고, 우리의 삶에 관한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였다.

  

책의 내용은 12개의 산문과 3편의 시로 되어 있다.

분량이 많지 않아 읽어가기에 부담이 없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얼마나 공감하고 웃고 통쾌해했는지.  

-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책도 너무 많이 씻어내게 될까 봐 수건을 내려놓고 책에게 다 끝났다고 말한다. 왕겨나 모래 같은 실제 세계의 쪼가리들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조금은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책에는 편향과 열정이, 그리고 저자의 결함이 담긴다. 이 책은 편향되고 독단적이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하고, 아마 절망도 있을 것이다. 절망 없이 60년을 수월하게 나아가는 삶이 있을까? 하지만 독자들은 낙담의 실개천보다는 기쁨을 더 확실히, 더 빈번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 대한 사랑, 문학에 대한 사랑, 타인과의 사랑이라는 지속적인 열정들의 영향을 받은 지금까지의 내 삶이 그러했으니까. 8쪽.

메리 올리버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루크라는 개와 함께 살았다. 루크는 그의 가족이었다.  보통 글쓰기에서는 수정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수정 단계는 작품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과정인가를 역설하면서  수정은 하면 할수록 글이 좋아진다고 이야기한다. 그런데 올리버는 이런 결벽증적인 수정 찬양의 양태를 단칼에 잘라버린다. 지나친 수정을 거친 결벽함보다는 약간의 실수와 미완성을 허용하겠다는 태도이다. 그러면서 그의 책에서 발견될 수 있는 저자의 결함과 편향성과 독단성을 기꺼이 인정해 주기를 바라는 그녀의  여유와 자유를 엿볼 수 있다.

 메리 올리버는 시인으로 창작에 대한 집중과 고독, 그리고 그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 방해없는 집중을. 그것이 열망하는 확실성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즉각 얻어지는 것이 아닌 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지켜보는 눈 없이 홀로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따로 떨어진 장소- 서성이고, 연필을 질겅질겅 씹고, 휘갈겨 쓰고 지우고 다시 휘갈겨 쓸 장소를. 13쪽.

-방해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인 경우도, 더 많진 않더라도 그 못지않게 많다. 자기 안의 다른 자아가 휘파람을 불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사색의 연못으로 풍덩 뛰어든다. 그 다른 자아가 하는 말이란? 치과 의사에게 전화해야지. 겨자가 떨어졌어. 스탠리 삼촌 생일이 이 주 남았어. 물론 당신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 다음 작업을 시작하지만, 아이디어의 요정은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 뒤다. 13쪽

창작을 위한 집중과 고독을 방해하는 제일 큰 요인은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말에 절대 공감한다. 외부적인 방해 요인은 자신의 의지로 끊어낼 수 있지만 내부에서 일어나는 방해 요인이 실제로는 제일 큰 강적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익히 알고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우리의 약점이기도 한데 이러한 것들을 유쾌하게 드러내 버리 올리버의 글들이 숨기고 싶어 했던 속내를 통쾌하게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실소하였다.  

-예술가는 비범한 에너지와 집중력 없이는 작업을 시작할 수 없으며 시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비범함에 관한 것이다. 17쪽.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리고 예술에 몸바친 이에게 가끔의 성공은 그 모든 노력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애석한 사람들은 창작에 사명을 느끼고 창조력이 안달하며 솟구치는 걸 감지하면서 거기에 힘도 시간도 들이지 않는 이들이다. 20쪽.

글쓰기를 하는 사람으로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대목이었다. 예술적 창작이 평범하지 않은 비범한 것이기는 하지만 노력 없이는 성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올리버는 더군다나  "세상에서 가장 애석한 사람들은 창작에 사명을 느끼고 창조력이 안달하며 솟구치는 걸 감지하면서 거기에 힘도 시간도 들이지 않는 이들이다" 리고 일갈한다.  마치 나 같은 사람에게 하는 말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었다.


시인으로서 메리 올리버는 사전 메모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나는 30년이 넘게 거의 늘 뒷주머니에 공책을 넣고 다닌다. 항상 가로 3인치(약 7.5센티미터), 세로 5인치(약 12.5 센티미터)의 작은 크기에 손으로 꿰매어 만든 같은 종류의 공책이다. 이 공책에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결국 시에 등장하게 될 문구들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공책들은 내 시의 시작인 셈이다. 거기엔 내게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 중요한 여러 사실들도 기록되어 있다. 봄에 어떤 새들을 보았을 때, 주소, 읽고 있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 사람들이 한 말, 쇼핑 목록, 레시피, 생각들. 21쪽.

- 속기나 문구는 모두 기록한 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건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건 중요하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디어, 곧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공책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건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다. 그리고 완성된 시 자체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것도 물론 이와 같은 경우가 아주 많다. 22쪽.

메리 올리버의 글에는 이런 촌철살인적인 문장들이 많았다. 그중에 몇 개를 소개한다.

-우리 삶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죽으면, 무언가로 대체가 될까? 아니면 대체제 말고 다른 게 있을까? 24쪽.
-나는 가족 품에서 백수白壽를 누리지 않기를 바란다. 24쪽.
-허영의 작고 치명적인 목소리. 24쪽.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25쪽.
-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더 불편한 말을 하고 싶다. 26쪽.
-문화: 권력, 돈, 그리고 안전(그러므로)
예술: 희망, 비전, 영혼의 말하고 싶은 욕구. 27쪽.
-꿈은 시간, 공간의 제약이 없다. 물론 아담은 이 세상의 사물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의 지평을 좁혔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꿈꾸기는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명상인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분명 꿈을 꾼다. 27쪽.

가장 내 마음을 울렸던 문장들과 그녀의 시 한 편을 소개하면서 메리 올리버에 대한 소개를 마무리한다. 동시대에 같은 지역에서 살았더라면 친구가 되고 동지가 되었을 것 같은 메리 올리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한다.

- 지식에 심취한 사람들의 위험.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완벽한 표본을 얻기 위해 나방에 가스를 주입한다. 오듀본John James Audubon은 알락해오라기의 심장에 바늘을 꽂는다. 29쪽.
-통하지 않는 시들에 대하여-거의 날 수 있는 새를 누가 보고 싶어 하겠는가? 30쪽.
-당신은 어떤 달콤한 목소리로 비치플럼( 북미 동부가 원산지인 장미과 벚나무 속 식물)을 설득하여 서두르게 할 수 있는가? 31쪽.   
난 결심했어

난 산속에 집을 마련하기로 결심했어,
추위와 정적 속에서 평온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저 높은 곳에.
그런 장소에서는 계시를 발견할 수
도 있다고 하지. 정신이 추구하는 걸,
정확히 이해하진 못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느끼게 될 수도 있는 곳. 물론
천천히. 난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냐.

물론 그와 동시에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머물 작정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난 결심했어>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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