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하지 않아도 돼.
참회하며 드넓은 사막을
무릎으로 건너지 않아도 돼.
그저 너의 몸이라는 여린 동물이
사랑하는 걸 사랑하게 하면 돼.
너의 절망을 말해봐, 그럼 나의 절망도 말해주지.
그러는 사이에도 세상은 돌아가지.
그러는 사이에도 태양과 투명한 조약돌 같은 비가
풍경을 가로질러 지나가지,
초원과 울창한 나무들,
산과 강들 위로
그러는 동안에도 기러기들은 맑고 푸른 하늘을 높이 날아
다시 집으로 향하지.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세상은 너의 상상에 맡겨져 있지,
저 기러기들처럼 거칠고 흥겨운 소리로 너에게 소리치지
세상 만물이 이룬 가족 안에 네가 있음을
거듭거듭 알려주지.
「기러기」 전문.
- 이 책을 쓰는 건 개를 목욕시키는 일과도 같았다. 다듬을 때마다 조금씩 깔끔해졌다. 하지만 개를 목욕시키다 보면 개가 너무 깨끗해져서 개다움을 완전히 잃을 위험에 처할 때가 있다. 나는 이와 같이 책도 너무 많이 씻어내게 될까 봐 수건을 내려놓고 책에게 다 끝났다고 말한다. 왕겨나 모래 같은 실제 세계의 쪼가리들이 이 책의 페이지들에 조금은 달라붙어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책에는 편향과 열정이, 그리고 저자의 결함이 담긴다. 이 책은 편향되고 독단적이기도 하지만, 즐겁기도 하고, 아마 절망도 있을 것이다. 절망 없이 60년을 수월하게 나아가는 삶이 있을까? 하지만 독자들은 낙담의 실개천보다는 기쁨을 더 확실히, 더 빈번히 발견하게 될 것이다. 야생의 세계에 대한 사랑, 문학에 대한 사랑, 타인과의 사랑이라는 지속적인 열정들의 영향을 받은 지금까지의 내 삶이 그러했으니까. 8쪽.
-창작은 고독을 요한다. 방해없는 집중을. 그것이 열망하는 확실성에 이를 때까지, 반드시 즉각 얻어지는 것이 아닌 그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지켜보는 눈 없이 홀로 날아다닐 수 있는 하늘을, 그리고 프라이버시와 따로 떨어진 장소- 서성이고, 연필을 질겅질겅 씹고, 휘갈겨 쓰고 지우고 다시 휘갈겨 쓸 장소를. 13쪽.
-방해자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인 경우도, 더 많진 않더라도 그 못지않게 많다. 자기 안의 다른 자아가 휘파람을 불고, 문을 쾅쾅 두드리고, 사색의 연못으로 풍덩 뛰어든다. 그 다른 자아가 하는 말이란? 치과 의사에게 전화해야지. 겨자가 떨어졌어. 스탠리 삼촌 생일이 이 주 남았어. 물론 당신은 반응을 보인다. 그런 다음 작업을 시작하지만, 아이디어의 요정은 이미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린 뒤다. 13쪽
-예술가는 비범한 에너지와 집중력 없이는 작업을 시작할 수 없으며 시작하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예술은 비범함에 관한 것이다. 17쪽.
-예술적 가치를 지닌 작업은 다른 방식으로는 이루어 질 수 없다. 그리고 예술에 몸바친 이에게 가끔의 성공은 그 모든 노력을 가치 있는 것으로 만들어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애석한 사람들은 창작에 사명을 느끼고 창조력이 안달하며 솟구치는 걸 감지하면서 거기에 힘도 시간도 들이지 않는 이들이다. 20쪽.
-나는 30년이 넘게 거의 늘 뒷주머니에 공책을 넣고 다닌다. 항상 가로 3인치(약 7.5센티미터), 세로 5인치(약 12.5 센티미터)의 작은 크기에 손으로 꿰매어 만든 같은 종류의 공책이다. 이 공책에 시를 쓰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결국 시에 등장하게 될 문구들이 담겨 있다. 그러니까 이 공책들은 내 시의 시작인 셈이다. 거기엔 내게 영구적으로나 일시적으로 중요한 여러 사실들도 기록되어 있다. 봄에 어떤 새들을 보았을 때, 주소, 읽고 있는 책에서 인용한 문구, 사람들이 한 말, 쇼핑 목록, 레시피, 생각들. 21쪽.
- 속기나 문구는 모두 기록한 순간과 장소로 돌아가기 위한 것이다. 이건 매우 엄밀한 의미에서 하는 말이다. 기록은 그게 무엇이든 내가 그걸 쓴 이유가 아닌 느낌의 체험으로 나를 데려간다. 이건 중요하다. 그러면 나는 그 아이디어, 곧 그 사건의 의미에 대해 돌이켜 생각하기보다는 아이디어가 나오기 이전부터 생각할 수 있게 된다. 내가 공책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건 논평이나 생각이 아니라 그 순간이다. 그리고 완성된 시 자체에서 포착하고자 하는 것도 물론 이와 같은 경우가 아주 많다. 22쪽.
-우리 삶의 주요 등장인물들이 죽으면, 무언가로 대체가 될까? 아니면 대체제 말고 다른 게 있을까? 24쪽.
-나는 가족 품에서 백수白壽를 누리지 않기를 바란다. 24쪽.
-허영의 작고 치명적인 목소리. 24쪽.
-마음은 찢어지는 게 찢어지지 않는 것보다 낫다. 25쪽.
-하지만 나는 그보다도 더 불편한 말을 하고 싶다. 26쪽.
-문화: 권력, 돈, 그리고 안전(그러므로)
예술: 희망, 비전, 영혼의 말하고 싶은 욕구. 27쪽.
-꿈은 시간, 공간의 제약이 없다. 물론 아담은 이 세상의 사물들에 이름을 붙임으로써 그의 지평을 좁혔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꿈꾸기는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명상인지도 모른다. 동물들은 분명 꿈을 꾼다. 27쪽.
- 지식에 심취한 사람들의 위험. 소로Henry David Thoreau는 완벽한 표본을 얻기 위해 나방에 가스를 주입한다. 오듀본John James Audubon은 알락해오라기의 심장에 바늘을 꽂는다. 29쪽.
-통하지 않는 시들에 대하여-거의 날 수 있는 새를 누가 보고 싶어 하겠는가? 30쪽.
-당신은 어떤 달콤한 목소리로 비치플럼( 북미 동부가 원산지인 장미과 벚나무 속 식물)을 설득하여 서두르게 할 수 있는가? 31쪽.
난 결심했어
난 산속에 집을 마련하기로 결심했어,
추위와 정적 속에서 평온하게 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저 높은 곳에.
그런 장소에서는 계시를 발견할 수
도 있다고 하지. 정신이 추구하는 걸,
정확히 이해하진 못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느끼게 될 수도 있는 곳. 물론
천천히. 난 휴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게 아냐.
물론 그와 동시에 지금 내가 있는
곳에 머물 작정이야.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겠어?
-<난 결심했어> 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