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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희 마리아 Dec 13. 2024

한 강, 『소년이 온다』

화요일(12월 10일) 자정 무렵, 잠에서 깨어나 TV 앞에 앉았다. TV를 보지 않는 나로서는 예외적인 일이었다. 스웨덴에서 열리는 노벨상 수상식을 실시간으로 보기 위해서였다. 물론 내가 보고자 한 것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이었다.

한글날인 10월 9일 다음날인 10월 10일, 스웨덴 한림원은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우리나라의 한강 작가를 지명하였다.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 소식은 정치, 경제적으로 혼란스럽고 암담했던 우리들에게 큰 기쁨과 자부심, 자긍심을 회복하게 해 주었다.


그로부터 촉발되어 일어난 한강 작가와 그의 소설에 대한 관심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한강 작가의 소설들은 모두 절판되었고 출판사들은 새 판을 찍어내느라 밤을 새운다는 즐거운 소식들이 들려왔다.


그동안 한강 작가의 책을 별로 읽지 않았던 나도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세 권의 책을 구입하였다. 한강 작가의 3부작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채식주의자』,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를 받아놓고도  선뜻 손을 대지 못하였다.


그런데,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식을 보기 위해 TV 앞에 앉으면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는 듯이 『소년이 온다』를 가지고 앉았다. 책 표지를 열었다. 아무도 보지 않았지만 나로서는 비장한 순간이었다.


첫 장을 열면서부터 전율하였다. 『소년이 온다』는 허구가 아니라 살아 있는 역사의 기록이었다. 노벨위원회에서는 『소년이 온다』를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주기 위해, 이 책은 잔혹한 현실화로 사건을 마주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증언 문학 장르에 접근한다” 선정 이유를 밝혔다.  


나는 『소년이 온다』를 사실에 충실한 기록 문학이라고 생각한다.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 한 번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5월 광주를 내용으로 하는 임철우의 『봄날』, 최윤의 『저기 소리 없이 한 점 꽃잎이 지고』 등의 소설과  <화려한 휴가>, <꽃잎> 등의 영화를 한사코 보지 않았던  사람으로서 『소년이 온다』를 보고 내뱉은 첫마디가 “그대로네” 였기 때문이다.

여러분, 적십자 병원에 안치되었던, 사랑하는 우리 시민들이 지금 이곳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여자의 선창으로 애국가가 시작된다. 수천사람의 목소리가 수천미터의 탑처럼 겹겹이 쌓아올려져 여자의 목소리를 덮어버린다. 무겁디무겁게 올라가다가 절정에서 결연히 쓸려내려오는 그 곡조를, 너도 낮은 목소리로 따라 부른다. 8쪽
칼라가 넓은 수피아여고 하복을 입은 누나가 평상복 차림의 또래 누나와 함께 피 묻은 얼굴들을 물수건으로 닦아내고 굽은 팔들을 억지로 펴서 옆구리에 붙여놓으려 애쓰는 모습을 너는 멍하게 지켜 보았다. 13쪽.

수피아 여고를 다니느라 등하교 때마다 지나다닌 3층짜리 하얀 페인트 칠의 적십자 병원, 도청 분수대 앞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고 노래하던 나. 줄지어 안치되어 있던 수백의 관과 그 관을 감싼 태극기, 급히 만든 흔적이 역력한 영정 사진, 음료수 병에 꽂혀 있던 시든 들꽃과 촛농이 흘러내려 몽뚱해진 몽당 촛불들, 그 사이를 누비며 행방불명된 가족들을 찾는 넋 잃은 모습들, 모두 다 내가 실제로 목격한 것들 아닌가.


칼라가 넓은 수피아여학교 교복을 6년 동안 입었다. 그리고 모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날, 갑자기 수업이 중단되고 빨리 집에 가라는 채근에 전대 정문 앞에 있는 집으로 가기 위해 지나가던 택시를 잡아 탔다. 근처에 사는 같은 반 학생을 두 명 더 태우고 조용한 거리를 숨죽이며 택시는 달렸다. 이미 곳곳에 군인들이 서서 검문을 했다. 광주천 다리를 무사히 넘었다고 생각할 때, 다리 끝에서 보초를 서던 공수부대원이 택시를 세웠다. 창문을 내리게 하고 안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누구냐고, 어디로 가냐고. 나는 선생님인데 학생들과 같이 집으로 가는 길이라고 대답하였다. 공수부대원은 빨리 가라고 하면서 택시를 통과시켜 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총을 든 군인을 만났고 검문을 받았다. 그리고 열흘 동안 또 처음으로 총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나는 총소리였지만 이것이 총소리구나. 이 소리가 사람을 죽이는 소리구나 하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채었다.  

그 과정에서 네가 이해할 수 없었던 한가지 일은, 입관을 마친 뒤 약식으로 치르는 짧은 추도식에서 유족들이 애국가를 부른다는 것이었다. 관 위에 태극기를 반듯이 펴고 친친 끈으로 묶어놓는 것도 이상했다. 군인들이 죽인 사람들에게 왜 애국가를 불러주는 걸까. 왜 태극기로 관을 감싸는 걸까. 마치 나라가 그들을 죽인 게 아니라는 듯이.
조심스럽게 네가 물었을 때, 은숙 누나는 동그란 눈을 더 크게 뜨며 대답했다.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거잖아. 권력을 잡으려고. 너도 봤을 거 아냐. 한낮에 사람들을 때리고 찌르고. 그래도 안되니까 총을 쐈잖아. 그렇게 하라고 그들이 명령한 거야. 그 사람들을 어떻게 나라라고 부를 수 있어.
전혀 다른 질문에 대한 다른 대답을 들은 것처럼 너는 혼란스러웠다. 17쪽.
엄마는 네 교련복 소매를 움켜잡았다.
사람들이 여그서 널 봤다고 그래서 얼마나 놀랬는지 아냐. 시상에, 시체가 저렇게 많은데 무섭지도 않냐. 겁도 많은 자석이.
반쯤 웃으며 너는 말했다.
군인들이 무섭지, 죽은 사람들이 뭐가 무섭다고요. 29쪽.

정말 그랬다. 내가 보았던 상무관에 놓여 있던 관마다 모두 태극기로 덮여 있었다. 도청 분수대 앞에 모여 있던 사람들이나 시위대열을 이루어 행진하던 사람들 중에도 태극기를 두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때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정치적인 판단이나 계산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니었다. 만약 계산적이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의 행동은 자신의 영달이나 개인적인 소욕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나라를 지키자는 의협심이 가장 큰 동인이었다. 그래서 그들의 죽음마다, 그들의 행동마다 나라를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해석하지 않으면 이해될 수 없는 행동이었고 설명될 수 없는 죽음이었다.


2장은 동호의 친구 정대의 이야기이다. 동호와 같이 도망치다 총에 맞아 죽은 정대의 혼이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며 이해되지 않는 답을 찾아다닌다.

그들이 다가왔어. 얼룩덜룩한 군복에 철모를 쓰고, 팔엔 적십자 완장을 차고서 빠르게. 그들은 2인 1조로 우리들의 몸을 들어올려 군용 트럭에 던져넣기 시작했어. 곡물 자루들을 운반하는 것같이 기계적인 동작으로. 난 내 몸을 놓치지 않으려고 뺨에, 목덜미에 어른어른 매달려 트럭에 올라탔어. 이상하게도 나는 혼자였어. 그러니까 혼들은 만날 수 없는 거였어. 지척에 혼들이 아무리 많아도, 우린 서로를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어. 저세상에서 만나자는 말 따윈 의미없는 거였어.
내 몸은 다른 몸들과 함께 묵묵히 흔들리며 트럭에 실려갔어. 피를 너무 쏟아내 심장이 멈췄고, 심장이 멈춘 뒤로도 계속 피를 쏟아낸 내 얼굴은 습자지같이 얇고 투명했어. 눈을 감은 내 얼굴을 본 건 처음이라 더 낯설게 보였어. 46쪽.

한강 작가가 자료를 충실히 수집하고 현장을 답사한 기록으로만 썼더라면 소설이 아닌 다큐멘터리가 되었을 것이다. 2장에서부터 한강은 실제적 사실을 토대로 자신의 상상력을 발동하여 문학으로 승화시킨다.

더이상 나는 학년에서 제일 작은 정대가 아니었어. 세상에서 누나를 제일 좋아하고 무서워하는 박정대가 아니었어. 이상하고 격렬한 힘이 생겨나 있었는데, 그건 죽음 때문이 아니라 오직 멈추지 않는 생각들 때문에 생겨난 거였어. 누가 나를 죽였을까. 누가 누나를 죽였을까. 왜 죽였을까. 생각할수록 그 낯선 힘은 단단해졌어. 눈도 뺨도 없는 곳에서 끊임없이 흐르는 피를 진하고 끈적끈적하게 만들었어. 51쪽.
군인들이 압도적으로 강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상한 건, 그들의 힘만큼이나 강렬한 무엇인가가 나를 압도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양심.
그래요,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군인들이 쏘아 죽인 사람들의 시신을 리어카에 실어 앞세우고 수십만의 사람들과 함께 총구 앞에 섰던 날, 느닷없이 발견한 내 안의 깨끗한 무엇에 나는 놀랐습니다. 더 이상 두렵지 않다는 느낌, 지금 죽어도 좋다는 느낌, 수십만 사람들의 피가 모여 거대한 혈관을 이룬 것 같았던 생생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그 혈관에 흐르며 고동치는, 세상에서 가장 거대하고 숭고한 심장의 맥박을 나는 느꼈습니다. 감히 내가 그것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꼈습니다. 114쪽.

지금도 생생하다. 그 새벽, 어느 집에서도 불을 켜지 못하고 숨 죽이던 캄캄함 새벽, 온 도시가 터질 것 같은 긴장감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아무도 잠들지 못하던 새벽. 그 어둠을 뚫고 들려오던 애절한 목소리. 그 애원을 들으면서 우리는 밖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결혼한 지 육 개월 밖에 되지 않은 남편이 뛰쳐나갈까 봐 바지끈을 꽉 붙들고 누워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멀리서 들려오는 가냘픈 목소리에 그녀는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가폰을 쥔 여자의 목소리가 차츰 가까워졌다. 선주 언니는 아니었다.
시민 여러분, 도청으로 나와 주십시오. 지금 계엄군이 시내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거대한 풍선 같은 침묵이 병실의 모서리 들을 향해 부풀어오르는 것을 그녀는 느꼈다. 트럭이 병원 앞길을 지나가며 목소리가 크고 선명해졌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함께 나와서 싸워주십시오. 그 목소리가 멀어진 지 십분이 채 되지 않아 군인들의 소리가 들렸다. 그런 소리를 그녀는 처음 들었다. 수천사람의 단호한, 박자를 맞춘 군홧발 소리, 보도가 갈라지고 벽이 무너질 것 같은 장갑차 소리, 그녀는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91쪽.

날이 밝았다. 세상이 바뀌었다. 군인들이 도시를 접수하였다. 그 이후로 광주를 겪은 사람들은 말을 잃었다. 모여도 광주를 이야기하지 않았고 그때를 떠올리지 않았다. 세상이 어떻게 광주를 말해도 변명하지 않았다.


마지막 날 밤, 온 도시가 두려움에 휩싸여 있을 때 텅빈 도로를 돌며 꼭꼭 닫은 캄캄한 창문을 향해 애절하게 호소하던 목소리를 외면하고 살아남은 부끄러움에 말을 잃었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목소리를 들었던 모두가 그 신새벽에 그토록 나와달라고 호소하던 사람의 손을 잡지 못한 부끄러움으로 시달렸다.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습니다. 99쪽.
나는 싸우고 있습니다. 날마다 혼자서 싸웁니다. 살아남았다는, 아직도 살아 있다는 치욕과 싸웁니다. 내가 인간이라는 사실과 싸웁니다. 오직 죽음만이 그 사실로부터 앞당겨 벗어날 유일한 길이란 생각과 싸웁니다. 선생은, 나와 같은 인간인 선생은 어떤 대답을 나에게 해줄 수 있습니까? 135쪽.
다만 이따금 당신은 생각한다.
한낮, 유난히 고요한 휴일 오후 해가 드는 창을 보다가 문득 동호의 옆얼굴이 흐릿하게 떠오를 때, 눈앞에 어른거리는 그게 혼은 아닐까. 기억할 수 없는 꿈 때문에 뺨이 젖어 있는 새벽 그 얼굴의 윤곽이 별안간 선명해질 때, 혼이 머뭇거리며 거기 있는 것 아닐까. 만일 혼들의 장소가 있다면 그곳은 어두울까. 어렴풋이 밝을까. 동호는, 진수는, 당신의 손으로 수습했던 상무관의 사람들은 거기 모여 있을까. 제각기 흩어져 있을까. 174쪽.

한강은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에서 『소년이 온다』를 시작하는 초기에는 “현재가 과거를 도울 수 있는가? 산 자가 죽은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의 답을 찾고자 했다고 했다. 그런데 집필해 가는 도중에 “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으로 바뀌면서 비로소 답을 찾아낼 수 있었다고 했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을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213쪽.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선정 발표가 있고 수상식이 있기까지의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계엄령 선포와 해제라는 희대의 정치적 회오리에 시달리고 있다. 『소년이 온다』라는 작품의 배경이 된 40년 전의 상황과 흡사한 정치적 상황을 겪는 기이한 역사적 순간을 지나고 있다. 오죽하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러 간 작가에게 작금의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한 질문을 했을까. 그렇지만 한강 작가가 보여준 의연함과 다소곳함은 우리나라를 버티게 하는 또 다른 저력이라고 생각한다. 한없이 부드럽고 연약함 속에 흐르는 단호함과 사랑을 향해 전진하는 인내는 또 하나의 동력이 되어 우리나라를 더 밝고 빛이 비치는 쪽으로 이끌어 갈 것이라는 믿음을 준다.  


한강 작가는 10월 7일에 있었던 노벨문학상 수상기념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말 나는 2014년 봄, 『소년이 온다』 를 출간하고 난 뒤에야 처음으로 사랑에 대해- 우리를 연결하는 고통에 대해- 질문했던 것일까? 첫 소설부터 최근의 소설까지, 어쩌면 내 모든 질문들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 그것이 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

사랑은 ‘나의 심장’이라는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1979년 4월의 아이는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주는 금실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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