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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헨리, 『크리스마스 선물』

by 선희 마리아

이번 주 수요일이 크리스마스였다. 일말의 죄도 없으신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속죄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이렇게 완전한 이타적 사랑이 있을까. 완벽하게 남을 대신하여 죽으려고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이다.


온전한 이타적인 동기와 행동은 가능한 것일까. 어떤 상황과 과정을 지날 때에도 항상 머릿속에서는 ‘그러면 나는 뭐가 되지...’ ‘나에게 남는 것은 뭐야?...’ 등등의 생각이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 깊은 곳에 깔려 있음을 보게 된다. 아무리 그럴듯하게 포장을 하여도 결국은 내 앞에 감을 놓았고 내 앞으로 밥그릇을 끌어당긴 것이 아니었나 하는 부끄러움과 민망함이 있다. 그럴듯한 명분과 번지르르한 이론을 앞세우지만 양파껍질 벗기듯 까고 까면 결국은 나의 이기심과 자기 본위의 발로였던 것을 보게 된다.


그런데, 크리스마스 같은 시간을 지나면 나의 마음 깊은 곳에도 이런 순수하고 맑은 마음이 있음을 언뜻 보게 될 때가 있다. 영리한 이해타산과 빈틈없는 주판알 굴리기가 아닌 한 점의 티도 없는 맑디 맑은 마음이 있지 않을까 찾아볼 때가 있다.


난 이렇게 순수함이 그리워질 때 동화를 읽는다. 어른이 되기 전에, 세상을 배우기 전에 원래 가지고 태어난 선악과 옳고 그름의 원형을 보고 싶은 것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어떠한 고난에 처해도 옳은 것을 지키고 착한 것을 찾아가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모습 속에 혹시 나의 모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착각에 빠져들게 되는 것이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도 동화 같은 이야기찾아 읽었다. 크리스마스와 관계되는 이야기를 찾다 보니 오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을 찾아 읽었다. 분량으로는 10페이지가 채 되지 않는 짧은 단편 소설이지만, 크리스마스 무렵이 되면 항상 생각나고 다시 읽고 싶은 동화 같은 이야기, 뻔히 아는 이야기지만 읽을 때마다 가슴이 찡하고 눈에 눈물이 맺히는 바보 같지만 부러운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크리스마스 선물』은 세계적인 단편소설 작가로 유명한 오 헨리의 작품이다. 원 제목은 『동방박사의 선물, The Gift of the Magi』 로 1905년에 발표되었다.


작가인 오 헨리(O. Henry, 1862-1910)에 대해서는 책 앞표지에 소개된 것을 참조한다.

이번에 읽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어린이를 위해 각색한 동화가 아닌 단편소설로 읽었다. 그런데도 10쪽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 속에서 오 헨리는 삶의 정수를 꿰뚫는 혜안을 보여 준다. 한 편의 짧은 이야기 속에 오 헨리의 세밀한 관찰력과 통찰력, 유려한 문장력과 묘사력, 그리고 기습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대반전 등의 엄청난 기교와 내공을 볼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 선물』의 전체적인 줄거리는 이렇다. 짐과 델러라는 이름으로 소개되는 제임스 딜링검 영과 그가 사랑하는 제임스 딜링검 영 부인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둘은 서로를 무척 사랑하지만 스물두 살의 어린 가장인 짐이 벌어오는 주급 20 달러의 수입은 두 사람의 생활을 극도로 곤궁하게 한다. 그 와중에 크리스마스가 내일로 다가왔다. 남편에게 멋진 선물을 사주고 싶은 델러는 그동안 생활비를 아끼고 아꼈지만 모아진 돈은 겨우 1달러 87센트뿐이다. 이 돈으로는 짐에게 사주고 싶은 선물을 사줄 수가 없는 슬픈 상황에 처한 것이다.

1달러 87센트. 그것뿐이었다. 게다가 그 가운데 60센트는 1센트짜리 동전이었다. 그것도 건어물 상점이나 채소가게나 푸줏간에서 물건을 살 때마다 구두쇠처럼 에누리해서 사다가 무언의 비난을 받고 얼굴을 붉히면서 한 닢 두 닢 모은 동전이었다. 델러는 그것을 세 번이나 다시 세었다. 1달러 87센트. 내일이 벌써 크리스마스이다. 18쪽.

방법을 찾을 수 없는 델러는 소파에 엎드려 우는 것 밖에 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때의 상황을 묘사하는 오 헨리의 기지와 해석이 기가 막히다.

그러나 작고 초라한 소파에 엎드려 엉엉 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델러는 울었다. 그렇게 우는 동안에 인생이란 ‘흐느낌’과 ‘훌쩍임’과 ‘미소’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훌쩍이는 울음’이 가장 많다고 깨닫게 되었다. 흐느끼며 울던 이 집 주부는 차츰 훌쩍이는 울음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방 안을 휙 둘러보았다. 18쪽.

사실 그렇지 않았는가. 얼마나 많은 순간들을 ‘흐느낌’과 ‘훌쩍임’과 ‘미소’의 단계들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가. 지나 놓고 보니 시간이 해결사였고 어떻게든 해결이 되어 여기까지 넘어오지 않았던가. 인생이란 ‘흐느낌’과 ‘훌쩍임’과 ‘미소’의 반복으로 이루어져 있고 , 특히 ‘훌쩍이는 울음’이 가장 많다는 것을 누구나 느끼면서 살아왔지만 이렇게 명쾌하게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가난뿐인 짐과 델러 두 사람에게는 그래도 자랑으로 생각하는 재산이 두 개 있었다.

제임스 딜링검 영 부부가 무척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둘이 있었다. 하나는, 전에는 할아버지 것이기도 하고 아버지의 것이기도 했던 짐의 금시계였다. 또 하나는 델러의 긴 머리카락이었다. 20쪽.

짐은 집안의 가보인 금시계를 물려 받았지만 그에 걸맞는 시곗줄을 끼지 못한 탓에 몰래 시계를 들여다 보는 것을 델러는 알고 있었다. 델러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짐에게 멋진 플라티나 시곗줄을 사주고 싶었다. 그런데 턱도 없이 부족한 돈 때문에 도저히 원하는 시곗줄을 살 수가 없어서 흐느껴 울다가 훌쩍이는 울음의 단계로 넘어가면서 방법을 찾아내게 된다. 두 사람의 또 다른 자랑의 하나인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자기의 윤기 나는 갈색의 긴 머리카락을 잘라 팔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한편, 남편인 짐은 아내인 델러의 자랑인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돋보이게 할 머리빗을 사 주고 싶었다. 델러가 오래전부터 브로드웨이의 진열장에서 보았던 가장자리에 보석을 박은 옆머리빗과 뒷머리빗 한 벌을 가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짐은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값이 비싸기 때문에 그 빗을 가질 수 있으리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동경만 하고 있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짐은 자기의 자랑이자 가보인 시계를 팔아 델러의 아름다운 머리에 어울리는 머리빗을 사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기를 맞이하는 델러의 짧은 머리를 본다. 이때의 짐의 복잡 미묘한 심정을 오헨리는 이렇게 묘사한다.

짐은 문 안쪽에 멈춰서더니 메추라기 냄새를 맡은 사냥개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는 델러를 주시한 채 서 있었다. 그의 눈에는 델러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그것이 그녀를 무섭게 했다. 그것은 분노도, 놀라움도, 비난도 공포도 아닐 뿐 아니라 델러가 각오하고 있던 어떤 감정도 아니었다. 그는 그 기묘한 표정을 짓고 그대로 델러를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22쪽.

짐이 시계를 팔아 머리빗을 샀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델러는 자기 머리가 자라면 머리빗을 꽂을 수 있다고 위로하면서 준비한 선물을 내놓는다.

짐은 아직도 그녀가 자기에게 줄 아름다운 선물을 보지 못했다. 델러는 그것을 그의 눈앞에 가져가더니 손을 펴고 보여 주었다. 희미한 빛을 띤 귀금속은 델러의 뜨거운 열정을 반영이라도 하듯이 눈부시게 반짝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때요, 멋지죠, 짐. 거리를 온통 다 뒤져서 찾아 냈어요. 이제부터는 하루에 시간을 백 번도 더 보고 싶을 거예요. 당신 시계 줘 보세요. 얼마나 잘 어울리는지 보고 싶어요.” 25쪽.
그러나 짐은 침대 위에 벌렁 드러누워 팔베개를 하면서 웃었다. “델러” 그는 말했다. “우리가 주고받은 크리스마스 선물은 당분간 잘 간수해 둡시다. 지금 당장 쓰기에는 너무 고급이야. 당신 빗을 사느라 돈이 필요해서 시계를 팔아버렸어. 자, 고기요리를 불에 올려놓아야지.” 25쪽.

두 사람이 서로에 대한 지극한 사랑으로 준비한 크리스마스 선물은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가난한 부부의 애달픈 선물이 결국은 쓸모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두 사람은 바보스럽고 실용적이지 못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한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짐과 델러의 선물을 보면서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안타깝고 애틋한 마음으로 눈물을 훔치게 되는 것은 왜일까.


사랑은 지극히 비현실적이고 어리석기 짝이 없을 때 오히려 빛나는 보석이 되는 것을 본다. 사랑에서조차 한 치의 손해도 보지 않으려고 머리를 굴리며 주판알을 튕길 때, 아무런 조건이나 명분 없이 뛰어드는 바보나 얼간이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그럴 때 동화 속의 한없이 맑은 사람의 이야기를 읽는다. 나는 세속에 찌들고 물들어 차마 그러하지 못하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는 그런 사랑을 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고 싶기 때문이다. 오염되지 않은 깊은 산속의 옹달 샘물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있는 순수하고 깨끗한 심성을 찾고 싶기 때문이다.


오 헨리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고받는 유래가 동방에서 아기 예수를 찾아온 현자들의 아이디어였다고 말하면서 아기 예수에게 선물을 하려고 생각한 동방의 현자들은 참으로 현명하였다고 말한다.

다 아는 것처럼 동방의 현자들은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구유 속의 아기에게 선물을 가져왔다. 참으로 현명한 사람들이었다. 그 현자들이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한다는 생각을 해냈던 것이다. 현명한 사람들이었기에 그 선물도 물론 현명한 것이었다. 아마 중복될 경우에는 다른 것과 바꿀 수 있는 특전이 있었을 것이다. 25쪽.

그렇지만 오 헨리는 이야기를 이렇게 마무리한다.

그런데 여기서 나는 자신들의 제일 소중한 보물을 가장 현명하지 못한 방법으로 서로를 위해 희생시킨 아파트에 사는 유치하고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두 사람의 일을 부족하지만 이야기했다. 하지만 끝으로 현대에 사는 현명한 사람들에게 한 마디 말해 두고 싶다. 선물을 하는 어떤 사람들보다도 이 두 사람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사람들이었다고. 선물을 주거나 받는 사람들 중에서 이 두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이야말로 가장 현명한 것이다. 어디에 있든 그들이 바로 ‘현자’이다. 그들이야말로 동방의 현자인 것이다. 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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