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제 책이 한국에서 뜨거운 성원을 받았다는 사실이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이 책은 '나이 듦의 기술', 즉 나이와 생물학의 강요에 굴하지 않는 법을 이야기합니다.
그 기술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저는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욕망을 포기하지 마라. 포기를 포기하라! “
차례
프롤로그 - 나이가 들었다고 꼭 그 나이인 건 아니다
포기 - 포기를 포기하라
자리 - 아직은 퇴장할 때가 아니다
루틴 - 시시한 일상이 우리를 구한다
시간 - 당장 죽을 듯이, 영원히 죽지 않을 듯이
욕망 - 아직도 이러고 삽니다
사랑 - 죽는 날까지 사랑할 수 있다면
기회 - 죄송해요, 늦으셨습니다
한계 -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다
죽음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원 - 불멸의 필멸자들
에필로그 - 사랑하고, 찬양하고, 섬기라
주
결국, 까놓고 보면 사기다. 과학 기술이 늘려 준 것은 수명이 아니라 노년이다. 죽기 직전까지 우리를 쌩쌩한 30대, 40대의 외모와 건강 상태로 살게 해준다면, 혹은 우리가 선택한 연령대로 살아가게 해준다면, 그게 진짜 기적일 것이다. ‘수명 연장 기술’이 세포 및 미토콘드리아 관련 요법, 수술, 연구를 통해 그러한 방향에 매진하고 있다지만 아직은 먼 얘기다. 30쪽.
빅토르 위고는 좀 더 간단하게,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짐은 정말로 사는 것 같지도 않은데 사는 것”이라고 했다. 어쩌다 보니 주어진 이 20년, 30년으로 뭘 해야 하나? 우리는 이미 제대했는데도 또다시 전투에 동원된 병사들과 비슷한 신세다. 할 일은 얼추 다 했고 결산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 같은데, 그래도 계속 하기는 해야 한다. 삶이 두렵고 이 길의 끝에 모든 짐을 내려 놓고 쉴 수 있는 약속의 땅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는 늙는다는 것이 역설적으로 위로가 된다. 그러나 인디언 서머, 역사에 전례가 없는 이 새로운 만년晩年은 그들의 소망을 부정한다. 그들은 쉬기를 원했는데 버티라고 한다. 24쪽.
노년은 으레 노망과 저주라는 이중의 함정에 빠진다. 트집쟁이, 투덜이, 꼰대가 우리 안에서 조금이라도 수가 틀어지면 당장 튀어나올 준비를 하고 있다. 몽테뉴는 이런 병을 ”영혼의 주름“이라고 불렀다. ”늙어가면서 시어지고 곰팡내 나지 않는 영혼은 없으며, 있다 해도 몹시 드물다. “ 95쪽.
노망 나고 정신 나간 노인도 많지만,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고령에도 통찰력과 푸릇푸릇한 정신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노인, 분별력의 대가들도 있다. 123쪽.
일반적인 붕괴의 법칙에는 예외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유독 일찍 시들어 30세면 벌써 얼굴이 달라져 있는데, 어떤 사람은 나이 들수록 우아해지고 관록에서 풍기는 멋까지 더해진다. 나이가 그들을 아름답게 해주진 않았지만 가장 좋은 모습으로 만들어 주었다. 멋있고 잘생긴 노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은 시간의 귀족이다. 204쪽.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또 하나 해야 할 일이 있다. 퇴장을 확실히 할 수 있도록 윤리적이거나 의학적인 결정을 가급적 모두 마무리해야 한다. 생물학적 생존에는 궁극적 가치가 없다. 자유와 존엄이 더 중요하다. 자율성, 세상을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능력이 사라지면 먹고 자고 숨 쉬는 것이 고문처럼 괴롭다. 그러면 사라질 때가 된 거다. 할 수 있는 한 우아하게, 세상과 작별할 때다. 201쪽.
모든 사람은 두 번 죽는다. 영혼이 육신을 떠날 때 처음으로 죽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마지막 사람이 죽을 때 다시 죽는다. 모두가 소중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같은 속도로 사라지지는 않는다. 어떤 이는 당신의 장례식에서 제일 서럽게 울지만 가장 먼저 당신을 기억에서 지울 것이고 또 어떤 이는 두고두고 당신을 그리워할 것이다. 263쪽.
매일 아침, 받은 바에 감사하면서 입 밖으로 소리 내어 “고맙습니다”라고 말하자. 당연히 받았어야 했던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 터무니없는 은총이 감사하다. 30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