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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하이 칙센트미하이, 『몰입의 즐거움』

by 선희 마리아

내가 읽기 싫어하는 책 중에 하나가 자기계발서이다. 한때는 자기계발서를 참 많이 읽었다. 그런데 한참 읽다 보니까 이게 뭐지 싶었다. 하나같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모두가 맞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자기계발서를 읽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내느냐가 문제였다. 똑같은 인생, 똑같은 길이 있을까. 수없는 자기계발서들을 읽고 난 뒤의 결론은 남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를 찾자. 남의 조언이 아닌 내 방법을 찾자. 였다. 이것이 그동안의 자기계발서를 읽은 효과라면 효과였다.

오늘 소개하는 『몰입의 즐거움』은 도서관 서가에서 우연히 만난 책이다. 제목이 좋아서 뽑아낸 책이었다. 그런데 저자의 이름이 특이했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 어느 나라 사람인가? 뭐하는 사람인가? 하는 궁금증으로 책을 펼쳐 들었다. 저자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한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Mihaly Csikszentmihalyi. 1934년 9월 29일 ~ 2021년 10월 20일)는 헝가리계 미국인 심리학자이다. 이탈리아의 피우메(현재의 크로아티아 리예카)에서 태어났으며, 22살에 미국으로 이민했다. 시카고대학교 대학원에서 수학하였으며 미국 시카고대학교 심리학과, 레이크포레스트 칼리지의 인류학과 학과장, 미국 클레어몬트대학교 경영대학원 심리학 명예석좌교수, 미국 클레어몬트대학교 피터 드러커 경영대학원 심리학 교수, 미국 클레어몬트대학 삶의 질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몰입(flow)’ 이론의 창시자이며 오랫동안 인간의 창의성과 행복에 대해 연구하였다, 주요 저서로 『몰입(flow)』, 『몰입의 경영』, 『창의성의 즐거움』, 『십대의 재능은 어떻게 발달하고 어떻게 감소하는가』, 『칙센트미하이의 몰입과 진로』, 『달리기, 몰입의 즐거움』 등이 있다.

나는 『몰입의 즐거움』을 철학 서적으로 생각하며 읽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이 책은 자기계발서의 정본으로 알려져 있었다. 나도 모르게 향했던 나의 취향이 자기계발이었을까. 아니면 철학서적인데 자기계발서로 활용한 것이었을까.


『몰입의 즐거움』을 읽으면서 그동안 애매하게 생각해 왔던 개념들의 정의가 분명해졌다는 게 가장 큰 수확이라고 생각하였다. 예를 들면, ‘삶’, ‘선과 악’ 같은 추상적인 것들의 정의가 막연하였다. 느낌은 오는데 명쾌하게 설명하기는 애매하였다. ‘삶’은 사는 것, 인생, 생활 등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명료하지 않았고, ‘선과 악’은 착한 것과 나쁜 것 정도로 설명할 수 있는데, 착한 것과 나쁜 것의 정의가 무엇이고 그 구분의 기준과 한계는 어디까지인가의 정확한 인식이 애매하였다. 그런데 『몰입의 즐거움』에서 그 정의를 명확하게 정리할 수 있었다.


미하이 교수는 몰입을 ”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버겁지도 않은 과제를 극복하는 데 한 사람이 자신의 실력을 온통 쏟아부을 때 나타나는 현상“(44쪽)이라고 하면서 몰입이란 "삶이 고조되는 순간에 물 흐르듯 행동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느낌을 표현하는 말"(43쪽)이라고 정의한다. 또 그는 ”사람의 기분은 몰입 상태에 있을 때 절정에 이른다. 그것은 도전을 이겨내어 문제를 해결한 뒤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몰입을 낳는 활동은 대부분 명확한 목표, 정확한 규칙, 신속한 피드백이라는 공통점을 갖는다. 바로 이런 외적 조건들이 갖춰졌을 때 비로소 우리는 집중하고 긴장한다.“(80쪽)고 말한다.

사람들은 일이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생산 활동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일을 할 때 집중하지 못하고 의욕이나 만족감이 떨어진다. 마지못해, 어쩔 수 없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놀이로 여겨지는 여가 활동은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지만 실제로는 여가 활동을 할 때 더 의욕이 생기고 만족감이 높아지는 것을 경험한다.

우리는 자신이 하는 일에 몰입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몰입한 일은 탁월한 성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몰입하기를 원하지만 또 몰입하지 못한다. 대부분 일은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이고 자기가 몰입하고 싶은 일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의 이러한 성향을 미하이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ESM 조사 결과를 보면 청소년들은 기성세대가 일에 대해 갖고 있는 이중적 태도를 아주 일찍부터 배우는 것으로 나타난다. 열한두 살이 되면 벌써 아이들은 일반 사회인이 전형적으로 보이는 사고방식을 내면화한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일‘처럼 생각되느냐 ’놀이‘처럼 생각되느냐 물어보면, 6학년 아이들은 학교 공부는 일 같고 운동 시합은 놀이 같다고 약속이나 한 듯이 대답한다. 재미있는 건, 청소년들은 대체로 자신이 일로 여기는 활동을 할 때 이 일이 자신의 앞날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며, 이것이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고 자부심을 높여준다고 대답한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막상 일같은 활동을 할 때는 의욕이나 만족의 수준이 평균치를 밑돈다. 놀이처럼 여겨지는 활동은 대수롭게 여기지 않고 굳이 집중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그때는 의욕이나 만족감이 올라간다. 달리 말하자면,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되면 필요하지만 내키지 않는 일과 쓸모없지만 즐거운 일을 확연히 구분할 줄 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 그 골은 한층 깊어진다. 72쪽.

그러나 사람들은 일을 끔찍하게 여기거나 여가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일같은 일, 놀이같은 놀이를 하지 못할 때 가장 괴로워 한다. 아무런 의미나 목표 없이 몰입할 수 없는 시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긴다.

그러나 청소년들이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건 그런 일이 아니다. 그들은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걸 할 때 가장 괴로워한다. 이를테면 평범한 유지 활동, 수동적 여가 행위, 그렇고 그런 만남에서 느끼는 감정이다. 그때 이들의 자부심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자기가 하는 행동이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고 여기는 탓이다. 자연히 만족감이나 의욕도 평균치 아래로 떨어진다. 청소년은 하루의 35퍼센트를 ’일 같지도 않고 놀이 같지도 않은 행동‘을 하면서 보낸다. 특히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은 집안의 아이들은 자기가 하는 행동의 절반 이상이 그렇다고 생각한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즐겁지도 않은 일로 소일하면서 자란 사람은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인생에서 이렇다 할 의미를 발견하기 어려울 것이다. 73쪽.

그렇다면 어떻게 자기가 하는 일에 의미를 찾고 몰입할 수 있을까? 미하이 교수는 몰입하기 위해서는 목표 설정이 필요하다고 한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뚜렷한 목표를 가지는 게 좋다. 목표를 달성하는 게 중요해서라기보다는 목표가 없으면 한곳으로 정신을 집중하기가 어렵고 그만큼 산만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등반가가 정상에 오르겠다는 뚜렷한 목표를 내거는 이유는 꼭대기에 못 올라가서 환장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런 목표가 있어야 등반에서 충실한 경험을 할 수 있기 있기 때문이다. 정상이 없는 등반은 무의미한 발놀림에 지나지 않으며 사람을 불안과 무기력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할 것이다. 177쪽.

목표는 주어진 과제나 일에 관심을 쏟게 하는데, 이 목표를 얼마나 끈질기고 일관되게 추구하는가는 "동기 부여가 얼마나 잘 되어 있느냐에 달려 있다.” (34쪽)고 말한다.

또, 미하이 교수는 목표설정의 요건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자신의 목표를 다스리는 요령을 터득하는 것은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중요한 첫걸음이다. 그것은 자연발생적 욕망에 몸을 맡기는 것과도 다르고 욕망을 무조건 억압하는 것과도 다르다. 최선의 방안은 자기 욕망의 뿌리를 이해하고 그 안에 숨어있는 편견을 인식하면서. 사회적, 물질적 여건을 지나치게 흩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자신의 의식에 질서를 가져 올 수 있는 목표를 겸허하게 선택하는 것이다. 이보다 덜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자신의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는 것이며, 이보다 과도한 목표를 세우는 것은 좌절을 자초하는 셈이다. 37쪽.

어려운 책을 읽었다. 읽으면서 계속 감탄히였던 것은 애매하고 구체화되지 않은 인간의 사고나 의식을 명료하게 설명하는 미하이 교수의 탁월성에 대해서였다. 우리도 생각은 그와 비슷하게 하지만 정리하고 구체화시키지 못한 데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이러한 지적 탐구 작업 역시 자기가 좋아하고 흥미를 느끼는 분야에 오랫동안 몰입했기 때문에 드러난 결과가 아닐까 생각한다. 사람의 사고와 정신 작업이 이렇게 차이가 나고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주어진 시간 안에서 경험과 노력과 인내를 통해서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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