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란, 모든 사람이 알고 있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다.”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이 말을 들으면서 가슴이 뜨끔하였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이 얼마나 많은가. 읽은 것처럼 익숙하지만 아는 척했던 책들이 얼마나 많은가.
세계 문학사에 크게 이름을 남기고 있는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뛰어나고 위대한 작품 중의 하나라는 것과 작가인 마르셀 프루스트의 찬연한 업적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왔는가. 그렇지만 아직도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지 못했다. 차마 읽을 엄두를 낼 수 없다는 생각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어들 수 없게 하였다. 대신 마르셀 프루스트의 단편집 『밤이 오기 전에』를 읽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기 위한 준비 작업처럼 말이다.
프루스트에 대해서는 책에 소개된 것을 올린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대한 학자들과 문학계의 연구와 관심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쓰기 전인 프루스트의 다른 작품들을 발굴하여 프루스트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집필하기까지 어떠한 궤적을 밟았는가를 추적하기에 이르렀다.
『밤이 오기 전에』는 프루스트가 20대 초중반에 쓴 작품들로, 프루스트 생전에 발표한 6편, 프루스트 사후에 공개된 4편, 그리고 2019년에 처음 공개된 8편까지 모두 18편이 수록되어 있다. 작품들은 대부분 짧은 단편들로 분량이 많지 않고 내용 또한 그렇게 난해하지 않지만 생소한 프랑스의 정서와 프루스트의 감성과 지성을 엿보는 즐거움이 있다.
『밤이 오기 전에』를 다 읽은 다음에 계속 뇌리를 맴돌았던 것은 표지 그림과 향수라는 단어였다. 향방을 알 수 없는 향기가 계속 내 곁에 머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의 출처는 「추억 2」라는 작품 때문이었다. 「추억 2」는 프루스트 생전인 1893년에 발표되었는데 프루스트의 고등학교 때 친구인 윈터에게 보내는 서간문의 형식으로 쓴 짧은 단편이다.
주인공은 친구에게 지난해 머물렀던 호텔에서 우연히 맡게 된 향수에 대한 이야기를 써 보낸다.
하루 종일 거의 폭풍에 가까운 거센 바람이 불어대던 어느 날, 복도를 따라 방으로 가던 나는 어디선가 나오는 황홀하고 진귀한 향기에 의해 그 자리에 못 박혔다. 그 향기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지만, 다만 너무나 복합적이고 진한 꽃 향기여서 단 몇 방울의 진액을 얻기 위해서 드넓은 들판 전체의 꽃을 모조리 따버렸을 것이라 추측할 뿐이었다. 쾌감에 사로잡힌 나는 움직이지 않은 채 상당히 긴 시간 그 자리에 머물렀다. 57쪽.
주인공은 자기도 모르게 향기의 출처를 따라가다가 문이 조금 열려있는 방 앞에 이른다. 약간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객실의 내부는 투숙객의 뛰어난 취향을 엿볼 수 있게 꾸며져 있었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들려오는 발자국 때문에 내부를 더 들여다보지는 못한다.
그 순간 성난 바람이 제대로 닫히지 않는 복도의 창문 하나를 활짝 열어젖히며 바깥의 짠 내음이 거대하게 몰려와 진한 꽃향기를 희석시켜버렸지만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토록 가느다란 향기가 거대한 바람에 침투하여 기어코 자신의 흔적을 남기던 집요함을 결코 잊을 수가 없다. 복도에 밀어닥친 바람에 의해 방문이 닫혔고 나는 내 방으로 들어갔다. 58쪽.
주인공은 그 방의 투숙객들에 대한 궁금증으로 호텔 지배인에게 그 사람들의 신상을 묻지만 이름만을 알게 되었을 뿐, 그들에 대해 알아내지 못한다. 더욱이 그 방의 투숙객들은 식사를 다른 방에서 했기 때문에 그들과 만나거나 부딪칠 기회도 없었다. 다만 그들이 “바이올렛”, “ 클라랜스”라고 서로를 부르는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목소리와 키가 큰 여인이 사라지는 뒷모습만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도 그들의 놀라운 개성과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며칠 후 문제의 방에서 떨어진 복도 끝 계단을 오르던 나는 다시 미약하지만 향기로운 냄새를 맡았고, 그것이 처음 맡았던 것과 같은 향기임을 단번에 알았다. 나는 향기가 나는 곳으로 향했고 방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는 한 걸음 가까이 갈 때마다 그만큼씩 더 큰 진동을 울리는 파이프오르간처럼 휘몰아치는 향기의 반향에 정신을 못 차릴 정도였다. 짐이 빠진 그 방은 활짝 열린 방문 때문에 배가 갈린 것 같았다. 20여 개의 깨진 유리병이 바닥에 뒹굴고 있었고 타일 바닥은 흥건히 젖어 있었다. 59쪽.
그 방의 투숙객들은 그곳을 떠나면서 많은 짐 때문에 가지고 갈 수 없었던 향수병을 모두 깨뜨려서 아무도 사용하지 못하게 하고 간 것이었다. 그들만의 향기, 그들만의 향수를 지키고자 한 것이다. 주인공은 유리병 바닥에 몇 방울 남아 있는 깨진 향수병을 집어 들고 자기 방으로 돌아온다. 향기는 주인공의 방을 가득 채운다.
그러면서 주인공은 그 향기로부터 자기 인생의 향기를 내뿜던 때를 회상한다. 무미건조하던 자기의 삶을 갑자기 진귀한 향으로 가득 차게 한 것은 다가올 사랑의 예고였다.
나의 평범한 삶에서 그때까지 무미건조함만으로 가득했던 세계가 갑자기 진귀한 향을 내뿜은 순간이 있었다. 그것은 다가올 사랑이 예고하는 혼란스러운 신호였다. 사랑은 장미와 샴페인을 한 아름 안은 채 고혹한 향기를 내뿜으며 매혹적인 모습으로 성큼 다가왔다. 사랑은 거대한 입김을 내뿜는 생각에도 스며들어 그것을 약화시키기는커녕 한층 풍요롭게 만들었다. 하지만 내가 사랑에 대해서 알게 된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의 신비를 풀었던가? 그것의 슬픈 향기와 내음 외에 나는 무엇을 더 알게 되었던가? 어느새 사랑은 떠나버렸고 그 자리에 남겨진 깨진 병에서 향기는 한층 순수하게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때의 희미한 방울 하나가 지금까지도 내 삶을 감싸고 있다. 60쪽.
아름답지 않은가? 향기롭지 않은가?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향기가 머리가 아찔하도록 다가오던 때가 있지 않았던가?
나는 연구자들이나 독자들이 경탄하는 프루스트 문학에 대해서는 모른다. 그렇지만 내가 읽었던 이 짧은 작품에서 느꼈던 아름다움과 여운이 바로 프루스트 문학의 진수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무런 선입견 없이, 아무런 지식 없이 프루스트 문학에 입문하면서 느낀 나의 느낌이 맞는 것인가는 프루스트 문학의 정점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읽으면서 다시 확인해 볼 생각이다. 올해의 숙제를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한 권이라도 읽는 것으로 삼는다.
**< 황홀한 책읽기 1> 30화를 마무리합니다. 그동안 읽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 인사 올립니다. 독자님들의 응원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한숨 고르고, <황홀한 책읽기 2>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