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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by 선희 마리아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 이야기를. 그런데 과연 정확하게 알고 있을까. 또 기억하고 있을까. 그 슬픈 이야기를.

어쩌면 언젠가 어디에선가 한 번쯤 들은 이야기나 희미한 기억으로 그 이야기를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은 아닐까. 나의 경우에는 이런 경우가 많다. 정확하게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 하는 것, 아는 것 같은데 정확하지 않은 지식.

『성냥팔이 소녀』는 전체가 3쪽밖에 되지 않은 짧은 이야기이다. 그렇게 짧은 이야기가 왜 이토록 슬픈지, 그러면서도 왜 또 아름답다고 느끼는지, 아름다움의 구성 요소 중에 슬픔이라는 것이 있는 것은 아닌지....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 조마조마하면서도 아름답고 슬픈 감정을 동시에 느끼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였다.

『성냥팔이 소녀』 의 작가가 안데르센이라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다. 세계적인 동화 작가. 어린 시절에 안데르센의 동화를 한편도 안 읽거나 듣지 않고 자란 어린이가 있을까. 이 책에 나오는 안데르센에 대한 소개를 올린다.

『성냥팔이 소녀』 의 시작은 이렇다.

살을 에는 듯이 추운 어느 겨울날이었어요. 눈이 내리고, 날도 점점 어두워지면서 저녁이 다가오고 있었어요. 그해의 마지막 날인 섣달 그믐날 저녁이었지요. 엄청난 추위와 어둠 속에서 한 작고 가난한 여자아이가 모자도 없이 맨발로 타박타박 길을 걷고 있었어요. 물론 집을 나설 때는 슬리퍼를 신고 있었지요.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슬리퍼가 너무 컸거든요. 아이의 엄마가 지금껏 신다 준 슬리퍼는 아이의 발에 너무 컸어요. 75쪽.

그런데 이런 슬리퍼조차 작은 여자아이는 잃어버린다. 무시무시하게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두 대의 마차를 피하려고 허겁지겁 길을 건너다 한 짝을 잃어버리고 남은 한 짝은 한 남자아이가 들고 달아나 버렸다. 그래서 작은 여자아이는 매서운 겨울 추위에 맨발로 걸어야 했고 두 발은 꽁꽁 얼어 시퍼래졌다.

작은 여자아이는 밤이 되어도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한 데와 다를 바 없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가 무섭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작은 여자아이는 집에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성냥도 팔지 못했고, 동전 한 닢도 받지 못했으니까요. 그대로 집에 가면 아버지가 때릴 거예요. 또 집에 가도 춥기는 마찬가지였고요. 집이라고 해봤자 머리 위쪽에 달랑 지붕 하나밖에 없었거든요. 여기저기 엄청나게 크게 갈라진 틈을 짚과 누더기로 아무리 꼭꼭 틀어막아도 바람이 숭숭 들어왔지요. 76쪽.

거리를 헤매던 작은 여자아이는 집과 집 사이의 틈새로 들어가 쪼그리고 앉는다, 하루 종일 맨발로 돌아다닌 작은 여자아이의 몸은 점점 꽁꽁 얼어가고 있다. 추위를 참다못한 작은 여자아이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어 불을 붙인다.

추운 날씨 탓에 그 작은 여자아이의 작은 두 손은 거의 감각이 없었어요. 아! 성냥 묶음에서 딱 한 개비만 꺼내 벽에 그어 불을 붙이면 손을 녹일 수 있을 텐데! 마침내 그 작은 여자아이는 성냥 한 개비를 꺼내 담벼락에 휙 그었어요. ”칙! “ 소리가 나며 불꽃이 환하게 타올랐어요! 따스하고 밝은 불꽃이었어요. 77쪽.

성냥은 마치 요술처럼 한 개비씩 켤 때마다 작은 여자아이가 원하는 것을 보여준다. 첫 번째 성냥을 켜자 작은 여자아이는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멋진 놋쇠 장식품이 여러 개 달려 있는 커다란 쇠난로 앞에 앉아서 따스한 불을 쬐고 있다. 그러나 한 개비의 성냥이 꺼져 버리자 활활 타오르던 난로도, 따뜻한 온기도 사라진다.

또 한 개비의 성냥을 켜자 윤기 나는 하얀 식탁보가 깔린 식탁 위에 고급 도자기 그릇들이 놓여 있고 말린 자두와 사과로 속을 그득 채워 구워 낸 거위고기에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그런데 쟁반에 담겨 있던 거위들이 갑자기 바닥으로 뛰어내려 포크와 나이프를 꽂은 채 작은 여자아이에게로 달려온다. 그 순간 성냥불은 꺼지고 윤기 나는 하얀 식탁보도, 고급스런 도자기 그릇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던 거위도 사라지고 차디찬 담벼락만 남아 있다.

작은 여자아이는 세 번째 성냥불을 켠다. 멋들어진 크리스마스 트리가 나타난다. 푸르른 나뭇가지에 걸린 수없이 많은 양초들이 밝게 타오르고 알록달록한 그림들이 작은 여자아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작은 여자아이가 두 손을 높이 뻗어 잡으려고 하자 성냥불은 꺼지고 수천 개의 크리스마스 촛불은 하늘로 높이높이 올라가서 밤하늘에 빛나는 별이 된다.

그때 작은 여자아이는 그 별 중 하나가 하늘에 기다란 꼬리를 그으며 땅으로 떨어지는 것을 본다.

“누가 죽나 보다!” 그 작은 여자아이가 말했어요.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이 세상에서 그 작은 여자아이에게 잘해 주던 유일한 사람인 할머니가 이런 말을 했었지요. “별이 떨어지면 한 사람의 혼이 하느님에게 올라가는 거란다.” 78쪽.

작은 여자아이가 담벼락에 성냥 한 개비를 또다시 긋자 환하게 빛나는 불빛 한가운데 할머니가 서 있는 것이 보인다. 너무나도 밝고, 너무나도 빛나고, 너무나도 부드러운 모습으로. 여자아이는 성냥불이 꺼지면 할머니의 모습이 사라져 버린다는 것을 알고 나머지 성냥을 몽땅 긋는다. 성냥불은 대낮보다 더 환하게 타오르고 그 불빛 가운데 할머니가 작은 여자아이를 번쩍 들어 품에 안고 하늘 높이 날아 올라간다. 하늘로 올라가는 두 사람 주위에서 환하게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온다. 두 사람이 높이높이 날아 올라간 곳은 추위도 없고, 굶주림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곳, 하느님 곁이다.

이튿날 이른 아침, 동네 사람들은 길가 집 한 모퉁이에서 얼굴은 새빨갛고, 입가엔 생긋 웃음을 짓고 앉아 있는 작은 여자아이를 발견한다. 작은 여자아이가 죽은 것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 꽁꽁 얼어 죽은 여자아이의 작은 시체 위로 새해 아침이 막 피어오르고 있다.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을 맺는다.

하지만 그 작은 여자아이가 얼마나 아름다운 것을 봤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요. 할머니와 함께 얼마나 찬란한 빛을 받으며 새해 첫날, 하늘나라에 갔는지를 아는 사람도 물론 없었지요! 79쪽.

슬프디 슬픈 이야기 『성냥팔이 소녀』를 읽으면서 올 한 해 얼어 죽는 사람이 없고, 굶어 죽는 사람이 없고, 매 맞아 죽는 사람이 없고, 사고로 죽는 사람이 없고, 어른에게 학대당하고 죽임 당하는 가엾은 아이들이 없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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