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샌디

by 선희 마리아

1970년대 우리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정세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하고 어려웠다. 전쟁의 위협이 항상 도사리고 있었고 먹고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보다 안정되고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나가려는 경향이 팽배하였다. 아메리칸드림을 좇아 기회의 땅,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는 집이 수두룩 하였다. 본인은 가지 않더라도 형제, 친척, 친지 중에서 한 가정이라도 이민을 떠나지 않는 집이 없을 정도였다. 샌디네 집도 그런 아메리칸드림에 편승하였다. 작지만 알차게 사업을 하던 아버지와 학교 교사를 하던 어머니가 공부 잘하는 자식들의 꿈을 이뤄주자고 미국으로의 이민길을 택한 것이었다.

샌디가 미국에 갈 때의 나이는 아홉 살, 한참 한국에서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즐기던 때였다. 미국에 도착한 샌디 부모님은 한국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LA에 자리 잡고 새로운 생활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낯선 나라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하지 못하자 어머니가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었다.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식당을 열게 된 것이었다. 한국에서 선생님만 해봤던 어머니가 주방일을 맡고 아버지가 식당 관리일을 맡고 세 아이들이 심부름을 하며 식당을 운영해 나갔다.


두 아들과 딸인 샌디는 부모님의 말을 잘 듣는 착하고 성숙한 아이들이었다. 낯선 환경에서도 공부를 곧잘 하여 미국에 온 보람을 느끼게 해 주었다. 또 집안 사정을 잘 이해하여 힘닿는 대로 식당일을 도와서 부모님의 일을 덜어드렸다. 샌디가 명문 주립대학에 입학할 무렵 하지 못하던 노동에 시달리던 아버지가 병이 들어 집에 눕게 되었다. 샌디는 더욱 가정일을 돕고 어머니에게 조력할 수밖에 없었다. 샌디의 대학 생활은 학교와 식당, 집 세 군데를 뱅뱅 돌면서 이루어졌다. 날마다 식당에서 접시를 닦고 청소를 하였다. 그때 닦았던 접시가 평생 닦을 접시보다 더 많았을 것이라고 회고할 정도로 힘든 대학시절을 보냈다.

샌디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 함께 미국으로 건너왔던 외할머니가 노인병원에 입원하시게 되었다. 샌디 어머니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어머니를 찾아 병원으로 면회를 갔다. 그러다가 어머니를 담당하는 한국 간호사를 만나게 되었다. 한국 간호사 역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처지였고 함께 고생하는 형편이었기에 서로 마음을 트고 지내게 되었다. 그러다가 샌디 어머니가 딸 이야기를 하였다. 자기 딸 샌디가 나무랄 데 없는 아이인데 남자를 사귀지 못한다고 했다. 결혼을 할 남자가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하였다. 딸이 뚱뚱하고 인물이 좀 떨어진다는 말도 덧붙였다. 간호사는 어머니의 인품을 닮았으면 딸도 속이 깊고 조용할 것 같다는 생각 하면서 자기의 막내 남동생 이야기를 꺼냈다. 나이는 엇비슷하겠지만 남동생이 샌디에 비해 학력도 부족하고 더구나 한국에 있으니 만날 기회가 없겠다고 말하였다.


샌디 어머니는 반색을 하며 남동생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하였다. 별 기대 없이 전화번호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얼마가 지난 후, 샌디가 남자를 만나러 한국을 나간다고 하였다. 그동안 두 사람은 국제전화를 하면서 서로를 알아갔고 이제는 얼굴을 한 번 보자고 하였다는 것이었다. 그때 국제전화는 쉽지 않았고 몹시 비싸서 일반인들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랑에 빠진 두 남녀는 거리 불구하고 전화요금 불구하고 날마다 긴 시간을 전화를 주고받았다. 사랑의 힘이었다. 남자의 누나인 간호사는 두 사람의 전화요금 이야기를 듣고는 화들짝 놀라 샌디의 전화요금을 몇 번 대주기도 하였다.


샌디가 한국으로 나가 남동생을 만난다는 이야기를 듣자 누나인 간호사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남동생은 막내였지만 위로 잘난 형, 누나 덕분에 항상 치여 살았다. 고등학교 때부터 알게 된 질병도 있었다. 평생 가지고 가야 할 병이었다. 그래서 남자와 가족들은 결혼을 포기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머리 좋고 자기 생각이 확고한 샌디가 동생에게 만족할 리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불안해하였다. 한국에서 만난 두 사람은 일주일 동안 잘 만나고 샌디는 미국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의외로 남자에 대한 샌디의 생각이 긍정적이고 호의적이었다. 무엇보다도 남자의 집안에 좋은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남자의 집 식구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그 뒤로도 두 사람의 장거리 전화 연애는 계속되었고 몇 달이 지나자 샌디는 또다시 한국으로 갔다. 이제는 남자와의 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으로 가서 서로의 미래를 의논하자고 했던 두 사람은 결혼하기로 합의하고 바로 결혼식을 올리자고 결정하였다. 아무도 없는 한국에서 샌디는 남자 하나만을 믿고 남자의 집에서 준비해 주는 대로 결혼식을 하였다. 급작스런 결혼 소식에 샌디의 집에서는 누구도 참석하지 못하였다. 부랴부랴 아버지만 나와서 샌디의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였다.

샌디는 그렇게 결혼을 하고 한 달을 머물다가 미국으로 들어갔다. 상당한 준비기간을 거쳐 남자도 미국으로 들어갔다. 남자의 낯선 미국생활이 시작되었다. 그렇지만 남자는 샌디의 아버지처럼 미국에 적응하지 못하였다. 미국의 사회생활에 뛰어들려고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샌디가 경제를 책임지고 남자가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집안 살림을 하기로 결정하였다. 남자는 부지런하였지만 자격지심이 있었다. 잘하다가도 샌디와 아이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거칠게 대하였다. 샌디는 아버지의 폭력에 질려서 절대로 폭력을 쓰는 남자와는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남자의 성격이 유순하고 예의 바른 것에 의지하여 결혼을 했던 것인데 또다시 아버지와 같은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현명하고 현숙하였던 샌디는 남자의 모든 것을 이해하고 참아주고 덮어주었다. 두 아이의 아빠라는 것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남자도 자기의 성격을 바꾸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샌디는 한 번도 남자의 흉을 보지 않았다. 잘하는 점을 찾아서 이야기해 주고 다독여 주었다. 자기의 남편을 자기 입으로 깎아내리지 않았다. 아이 아버지의 권위를 지켜주고 싶었다.

샌디의 사회생활을 훌륭하였다. 유수한 직장에서 인정을 받아 승진을 거듭하였고 사람들의 신뢰를 받아 함께 일하고 싶어 했다. 시간이 흘러 두 아이들도 성장하여 대학생이 되고 더욱 따뜻하게 아빠를 끌어안았다. 남자의 오랜 노력과 가족들의 이해와 사랑 속에서 남자의 성격도 원만하고 너그러워졌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모범적인 가정을 이루어 내었다. 남자는 생각한다. 암담했던 젊은 시절, 샌디가 자기에게 온 것이 우연이었을까. 하나님의 깊은 섭리였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우연으로는 있을 수 없을 일이라고 생각한다. 남자와 여자의 반려를 미리 정해 놓으신 분이 분명히 계시다는 생각을 한다. 하나님이 정해주신 유일한 서로의 짝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두 사람은 인생의 황혼길을 아름답게 걸어가고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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