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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항진의 옛 이름, 안목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11) 안목, 남산, 남대천, 남항진, 남항포

by 이무완

[일러두기] 이 글에서 밑금 그은 붉은 글자는 옛 배달말 적기에서 쓰던 아래아(.)가 든 글자다.


안목, 앞에 있는 갯목

강릉시 동쪽 바닷가에 ‘안목’이란 곳이 있다. 커피 거리로 이름난 곳이다. 바람이 전하는 말로는 ‘남대천을 따라 시내(안)로 통하는 길목’이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하는데 흠, 미심쩍다. 지도를 펴서 옛 사람들 마음을 담아 마음의 눈으로 보려고 끙끙 대다가 ≪조선지지자료≫(강원도3)를 찾아 보았다.

오늘날 ‘안목’은 ‘덕방면’에 ‘南港浦 /안목개’로 나온다. 안마을, 안묵호, 안구미, 안이골에서 보듯 땅이름에서 ‘안’은 흔히 ‘안쪽’을 말하니 ‘안목’도 목 안쪽을 가리키는 땅이름일 수 있겠다 싶다. 그런데 어째서 한자 땅이름은 ‘남항포’일까?


남산과 남대천

‘안목’의 말밑을 풀어갈 실마리는 바로 ‘남항포’에 있다. 우리 말에서 ‘안’은 ‘앞’, ‘남’과 통하는 말이다. 안마당은 ‘집 안의 안채 앞에 있는 마당’을 말하며 안산은 집터 맞은편, 곧 앞에 있는 산과 통한다. <애국가> 2절은 ‘남산 위에 저 소나무’로 시작한다. 이때 ‘남산’은 고유이름씨가 아니라 ‘앞산’을 가리키는 두루이름씨로 봐야 한다. 이 땅에 서울 말고 다른 곳에는 남산이 없을까. 아니다. 당장에 ≪동해시 지명지≫에 실린 ‘남산(봉)’만 해도 만우동 두 곳, 삼화동 세 곳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 간성군 ‘고적’ 조에서 ‘고성산’과 관련하여 “열산현 북쪽 1리에 있는데 곧 현의 남산(南山)이다. 군에서 거리는 35리”로 적었고, ≪척주지≫(1662)에 “중종 25년에 삼척부사 허확이 남산(南山)에 소나무 천 그루를 심었다”고 했으며, ≪여지도서≫(1757)에 설악산과 관련하여 “방태산에서 뻗어와 인제의 안산(案山)이 되는데 이름은 남산(南山)으로 미륵천에 이르러 그친다”고 적은 대목이 나온다. 이러한 기록으로 비추어볼 때 애국가의 ‘남산’은 서울에 있는 ‘남산’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다. 남대천도 남쪽, 곧 앞쪽을 흐르는 큰 내를 가리키는 두루이름씨에 가깝다. 실제로 강릉뿐만 아니라 양양, 철원에 남대천이 있다.

홍천군 남산.jpg 1872년 지방지도로 강원도 홍천군의 일부다. 홍천 관아(지도에서는 현아(縣衙)로 씀) 앞에 남산이 보인다.


앞산과 안산

잘 알다시피 우리 조상들은 예부터 집을 지을 때 산을 등지고 볕 바른 남쪽을 보고 집을 지었다. 자연히 앞이 ‘남쪽’이 되고, 뒤는 ‘북쪽’으로 통했다. 동해시에 ‘북평’(北坪)이 있다. 지역 말로는 ‘뒤뜨르’라고 하는데 ‘후평’(後坪)이란 딴 이름도 있다. 삼척도호부 동헌에서 볼 때 뒤쪽(북쪽)에 있는 들이기 때문에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남과 앞, 북과 뒤를 같은 뜻으로 썼다. 실제로 ≪훈몽자회≫(1527)에 보면 남(南)은 ‘앏 남’으로, 북(北)은 ‘뒤 북’으로 새김을 달았다. 그런데 ‘남산’을 달리 ‘안산’이라고도 했다. 풍수지리 영향으로 볼 수 있는데, 이때는 안팎을 나누는 ‘안’이 아니라 책상 ‘안’(案) 자다. 풍수지리 사상이 널리 퍼지면서 진산(鎭山)은 마을 뒷산을, 안산은 집터나 묏자리의 맞은편에 있는 산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탓이다. 책상을 앞에 두고 앉듯 마을 맞은편에 있는 산이니 곧 ‘앞산’이요 ‘남산’이다.

≪훈몽자회≫(1527)에 南을 '남녘/남쪽'이 아닌 '앏'(앞)으로 새김을 달아놨다.


안목과 남항진과 남항포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안목’의 말밑을 톺아보자. 강릉의 남산과 남대천, 남항진의 ‘남’은 모두 ‘앞’을 뜻한다. 강릉도호부 자리에서 보았을 때 ‘앞’이기 때문이다. ‘안목’에서 ‘안’도 안쪽이 아니라 앞쪽이다. 바꿔 말하면 앞목인 셈이다. 지도를 보면 견조봉이 있는 곳은 남대천 물줄기가 흘러와 모래가 쌓이면서 목이 잘록하게 좁아든 곳이다. 이런 곳을 ‘갯목’, ‘개목’, ‘목개’라고 했다. 안목은 ‘앞 목’, 다시 말해 ‘앞 (갯)목’이다. 그런데 앞갯목에 있는 나루라면 ‘앞갯목+개’처럼 써야 하는데 ‘앞갯목개’처럼 되는 까닭에 ‘앞목개’로 바뀌었고 이 말을 ≪조선지지자료≫는 ‘안목'로 적었을 것으로 본다. 요컨대 ‘남항진’(南項津)은 ‘안목개’를 ‘앞 남(南), 목 항(項), 나루 진(津)’으로 받아 쓴 땅이름으로 볼 수 있다. 또 다른 이름인 ‘남항포’(南港浦)는 목 항(項)을 잘못 알고 쓴 듯하다.

오늘날 ‘안목’이라는 배달말 땅이름은 남대천 북쪽 바닷가 마을만 가리키지 원래 땅이름의 임자였던 남대천 남쪽 마을은 한자말 땅이름인 ‘남항진’으로만 남았다.

안목3.jpg <지방지도>(1872)와 <조선지형도>(1909~1917)에서 보이는 '남항진'(안목의 옛 땅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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