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킷 16 댓글 공유 작가의 글을 SNS에 공유해보세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물내기

땅이름으로 배우는 배달말(29) 찬물내기, 약물내기, 냉천, 약천

by 이무완 Apr 01. 2025

물내기

‘물내기’는 석회암 지대에서 나타나는 독특한 물 흐름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석회암이 빗물에 녹으면서 여기저기 우묵하게 땅이 꺼진 ‘굼’(돌리네)이 나타나고, ‘굼’으로 물이 스며들어 땅속 곳곳에 크고 작은 구멍이나 물길을 낸다. 그런 곳으로 물이 꼴꼴꼴 흐르면서 크기를 한껏 키우면 석회동굴이 되기도 한다. 멀쩡히 흐르던 물길이 갑자기 산자락이나 바위 아래로 감쪽같이 숨기도 하고 뜬금없는 데서 졸졸졸 솟아나기도 한다. 물이 솟아난다고 해서 배운 사람들은 내남없이 ‘용천(湧泉)’이라고 하지만 이곳 사람들은 ‘물내기’라고 했다. 

여기까지 듣고 나면 그게 샘 아니냐는 물음이 생긴다. 맞다. 샘은 물이 저절로 솟아나와 고이는 자리다. 부러 땅속 샘물을 찾아 가둔 우물과 다르다. ‘샘은 새미, 새암이라고도 하는데, 동해와 삼척에서는 ‘물내기’라는 말도 썼다는 소리를 얹으려고 이렇게 빙 돌았다. ‘내기’는 움직씨 ‘나다’의 이름씨꼴인 ‘나기’가 ‘ㅣ’ 모음 역행동화로 생겨난 말로 보인다. 


약물내기 

‘약물내기’는 된달방 마을에서 이기동으로 넘어가는 곳에서 나는 샘이다. 이곳 물이 ‘옻약물’이라서 속병 난 사람이 마시면 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샘 둘레에 옻나무가 많이 자라서 이 샘에서 나는 물을 ‘옻약물’이라고 했단다. 하지만 그닥 믿을 만한 말은 아니다. 이 샘이 있는 곳이 어디라고 했나. 된달방이다. ‘몹시 심하거나 모진’의 뜻이 있는 ‘되다’의 매김씨꼴인 ‘된’과 마을 이름 ‘달방’을 붙여쓴 땅이름이다. 아릇달방(아랫달방)에 견줘 웃달방, 상달방이라고도 했다. ‘웃달방에서 나는 샘’이라는 뜻으로 ‘웃약물’이라고 했는데 ‘웃’과 ‘옷’의 소리바꿈으로 ‘옻약물’처럼 되지 않았을까. 물론 ‘샘터’를 ‘약물터’라고 하고 ‘샘물’을 ‘약물’이라고 한 데서 생겨난 이름으로도 볼 수 있다.      


찬물내기

찬물내기는 샘을 뜻하기도 하지만 찬물내기 앞에 있는 마을을 싸잡아 가리키는 땅이름이기도 하다. 한자로는 차가울 냉(冷), 샘 천(泉) 자를 써서 ‘냉천’이라고 했다. 이곳 사람들은 콧소리를 살짝 섞은 ‘냉치이, 냉체이, 냉쳉이’라고 했다. 

이곳 말고 쇄운동 사리골 위쪽에 있는 샘도 ‘찬물내기’란 곳이 있다. 찬물내기를 ≪삼척군지≫ 「북삼면」 ‘천곡리’에는 “냉천동(冷泉洞)에 있는 차고 맑은 우물로 인하여 천곡<샘실>이라 부른다”고 적었다. 현재 동해시 중심지인 ‘천곡동(泉谷洞)’도 샘이 솟는 골(마을)이란 뜻이다. 냉천은 물이 찬 샘이고 샘실은 찬물내기가 있는 마을(실)이다. 석회암이 많은 땅에서 빗물은 개울을 따라 흐르지 않고 굼(돌리네)이나 ‘보테미(보트미)’라고 하는 물빠짐 구멍(침수혈, 싱크홀)으로 감쪽같이 땅속으로 사라졌다가땅속 석회동굴을 지나서 뜬금없는 자리에서 솟는다. 찬물내기도 그런 샘이다. 찬물내기(오마이뉴스: 찬물내기와 얼음새꽃)는 복수초 자생지로 유명하다. 복수초는 한겨울 눈 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꽃이다.      


샘물내기

샘물내기는 삼화동 주막거리에서 쐑실 마을로 통하는 홍월평 중답 중심에 있던 샘물이다. 삼화동과 정선군 도전리를 잇던 더바지재 큰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마시곤 했다고 전한다. 1937년 백복령으로 정선을 넘나드는 길이 새로 나고 1980년대 시멘트 공장이 들어서면서 샘물내기도 같이 사라졌다.     


물내기나 샘이나

땅이름엔 그 곳에 뿌리 내리고 살아온 사람들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았는지가 담긴다. 물이 땅에서 새어나오는, 같은 현상을 보지만, ‘솟는다’고 본 눈은 ‘샘’으로, ‘난다’고 보는 눈은 ‘물내기’라고 하는 게 재미나지 않나. 물론 표준말에서 ‘-내기’는 이름씨 뒤에 붙는 뒷가지로 흔히 쓴다. 서울내기, 시골내기, 풋내기, 신출내기에서 보듯 어떤 곳에서 나고 자라서 그 지역 특성이 보이는 사람을 낮잡는 말로 써왔다. 그러나 동해․삼척 땅이름에서 보이는 ‘내기’는 땅에서 물이 솟아나는 샘이나 샘이 있는 마을을 가리키는 뒷가지처럼 썼음을 알 수 있다.


#찬물내기 #약물내기 #샘물내기 #냉천 #샘실 #천곡 #천곡동 #달방동 #삼화동 #동해시      

[동굴 사진 출처: 픽사베이]

작가의 이전글 덕만이재와 발왕산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