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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01. 2024

아빠, 내 편자 어때?

딸내미의 질문 공세에 대처하기 위한 아빠의 자세에 대하여

  주방에서부터 시작된 달짝지근한 카레향이 온 집안을 가득 채우던 저녁시간이었다. 내가 흔들의자에 앉아 있는 해담이와 놀아주는 사이 거실 한쪽에서 무언가를 몰두해서 하던 해솔이가 뒤뚱뒤뚱 내 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자리에 털썩 앉아 양 손바닥과 발바닥을 자랑스럽게 내밀었다.


"아빠, 내 편자 어때?"


해솔이의 멋진 편자


  스티커로 도배된 손바닥과 발바닥을 자랑스럽게 내밀며 때아닌 편자 자랑을 하는 해솔이를 보고 웃음이 빵 터졌다. 아빠가 웃는 모습을 보고 무슨 영문인 줄 아는지 모르는지 곁에 있던 해담이도 방긋 웃었다. 편자가 어떻게 생긴 줄도 모르면서…. 문득 어제 놀이터 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해솔이와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해솔이 운동화가 많이 닳았네! 조금만 더 신고 새 신발 사 줘야겠다."


  "신발이 닳는 게 뭐예요?"


  "신발을 오래 신어서 신발 밑창이 미끄럽게 되었다는 거야."


  "신발이 닳으면 왜 새 신발을 사야 해요?"


  "새 신발을 신어야 해솔이가 미끄러지지 않고 신나게 뛰어놀지. 말도 잘 달리기 위해서 신발을 신어."


  "말이 왜 신발을 신어요?"


  "말도 오래 달리게 되면 발굽이 닳거든. 그래서 발굽도 보호하고 잘 달리게 하려고 '편자'라는 신발을 달아 줘."


  "새 신발을 신으면 말도 신나게 달릴 수 있겠다."


  아빠와 신발 이야기를 나누다 들은 '편자' 이야기를 기억하고, 손바닥과 발바닥에 스티커 편자를 붙이고 말처럼 딸깍딸깍 걷는 시늉을 하는 해솔이. 엉뚱하고 귀엽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사소한 대화도 잘 기억해 내는 모습을 보면서 물어보는 말에 '잘' 대답을 해 줘야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지난겨울 네 돌이 지나면서 해솔이의 질문이 부쩍 많아졌다. 처음에는 "이건 뭐예요?", "저건 뭐예요"와 같은 대답하기 쉬운 질문을 하더니, 이제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질문의 영역은 내 짧은 식견으로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간단한 것부터 검색창이나 책의 도움 없이는 섣불리 대답하기 어려운 것까지 폭도 넓어지고 깊이도 깊어졌다. 아빠로서 참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어떨 때는 아빠가 시원하게 대답을 못 해줘서 딸 앞에서 스타일을 구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기도 한다.


  딸내미의 질문공세에 대해 어떻게 하면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생각을 하게 된다. 우선, 나의 배경 지식의 폭을 넓혀야 할 것 같다. 평소에 좋아하는 분야의 책뿐만 아니라 해솔이가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의 책들, 그리고 자연 현상들을 세심하게 살피면서 관련된 책들을 찾아 함께 읽어야 할 것 같다.


  다음으로, 정확한 지식을 받아들이는 습관을 길러야 할 것 같다. 아이들이 흔히 "아냐, 우리 아빠가 그랬어!"라고 이야기하는 소위 아빠 피셜, 엄마 피셜이 우리 아이의 이야기가 될 줄이야…. 아직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어른이 부모님, 선생님 등 손으로 꼽을 만한 아이의 세계에서 아이의 질문에 대한 아빠의 대답은 절대적인 진리처럼 느껴지지 않을까. 내가 제대로 알아야 아이의 질문에 정확한 답을 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아이의 질문에 내가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수 없는 것이 있다면 대충 둘러대지 말고 "아빠도 잘 몰라."라고 솔직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할 것 같다. 아는 척 대신 정확히 찾아보고 알려주겠다고 양해를 구할 수 있는 용기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며 아이도 모르는 것은 모른다라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울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모르는 것은 아빠와 함께 찾아보고 아는 것으로 바꾸는 재미가 쏠쏠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아이들이 잠든 후 고요해진 밤, 책을 읽으며 내일은 해솔이가 어떤 질문 공세를 쏟아 낼지 상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마치 퀴즈 대회를 준비하는 것처럼. 내일은 부디 해솔이가 아빠가 아는 주제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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