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이었던 오늘 해솔이와 함께 국사봉 등산로를 걷는 중이었다.
"아빠, 근데 아빠 속에는 뭐가 있어?"
"아빠 속엔 음, 내장도 있고, 근육도 있고, 뼈도 있겠지?"
동화책보다는 과학책을 좋아하는 딸내미를 위한 아빠의 맞춤 대답이었다. 잠깐의 침묵이 흐른 후 해솔이가 입을 열었다.
"아빠는 해솔이를 좋아하니까 아빠 속에는 해솔이가 있을 거야, 그리고 엄마도 있고, 해담이도 있고. 그렇지?"
"내 마음속에는 아빠, 엄마, 그리고 해담이가 있어."
해솔이의 이야기를 듣고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리고 곧이어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올라오는 듯한 기분이 느껴졌다. 늘 어리고 장난만 가득한 줄 알았던 딸내미의 마음이 이토록 깊었을 줄이야. 요 며칠 칠 속상할 일들이 많이 생겨 잔뜩 얼어붙었던 마음이 눈 녹듯 사르르 풀렸다.
아침에 내린 눈 탓에 정상에 오르는 내내 길은 질척거렸지만, 나와 해솔이의 발길은 깃털같이 가벼웠다. 그리고 늘 오르내리던 길이었지만 오늘따라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졌다.
늘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한 머릿속, 시시각각 변하는 다양한 감정으로 늘 혼란스러운 마음속에서도 오늘 해솔이가 건넨 따뜻한 말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는지, 무엇을 위해 앞으로도 열심히 살아야 할지 이제는 명확하게 알 것 같다.
오늘도 딸아이에게 인생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