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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14. 2024

끝나지 않는 교실 청소

  교실 청소를 했다. 학교에서 2월은 옮기게 되는 학교, 그리고 학년 및 업무 배정에 따른 이사가 이루어지는 이른바 성수기이다. 올해 새로 교실에서 한해살이를 시작할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 정든 교실에서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내 짐을 꾸리고, 교실 곳곳에 남아있는 스쳐간 이들의 흔적들을 지워야 한다.


  학교의 한 교실에서 다른 교실로 짐을 옮기는 일은 비교적 쉬운 일이다. 짐을 대충 꾸려 새로 사용할 교실로 옮기고, 텅텅 빈 교실의 먼지와 묵은 때만 벗겨내면 된다. 반면 학교를 옮길 때나, 휴직이나 파견 등으로 잠시 학교를 떠나야 할 때는 교실 비우는 일이 마냥 쉬운 일은 아니다. 특히 학교에서 오래 근무하며 짐과 추억이 많이 쌓였다면 더더욱 그렇다.


  교실을 청소하다 보면 이런 물건이 우리 교실에 있었는지 생각이 들 정도로 존재를 잊고 지내던 물건들이 많이 발견된다. 교실에 있는 것을 보면 분명 한 해 전 내가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여 고이 모셔둔 것일 텐데. 일 년 내내 눈에서도, 마음에서도 멀어진 채 교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다가 발견되는 것들이 한두 개가 아니다. 보통 이런 애물단지들은 다시 무슨 쓸모가 있겠지 싶어 새로운 고스란히 포장되어 새로운 교실로 함께 자리를 옮기는 경우가 많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인간은 망각의 동물인지라 해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된다.


  교실에 가득 쌓인 먼지를 치우는 것은 고된 일이다. 매일매일 청소를 해도 수많은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청소한 보람도 없이 매일 먼지가 쌓이기 마련이다. 급하게 방학식을 마치고 아이들을 보낸 어수선한 교실 바닥을 쓸고, 묵은 먼지를 털어내니 먼지 속에 감추어져 있던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리저리 뛰었는지 넓은 간격으로 진하게 남아 있는 실내화 자국, 떨어진 우유 방울, 의자가 밟고 지나간 샤프심의 흔적, 그리고 수업 시간 몰래 그린 낙서들. 아이들이 남긴 흔적들을 보면 교실을 떠나가고 없는 아이들의 얼굴, 그리고 목소리가 떠오른다.


  교실을 청소하는 일은 한 해를 돌아보는 의식이기도 하다. 교실을 청소하면서 아이들의 흔적을 발견하고, 아이들과 함께 했던 1년을 떠올리다 보면 즐거웠던 일들도 떠오르지만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지곤 한다. 아이들을 좀 더 친절하고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아쉬움. 진도에 대한 압박 속에서 좀 더 여유롭고 즐겁게 보내지 못한 아쉬움. 매년 아쉬움을 떠올리고, 올해에는 좀 더 잘 지내봐야지 다짐하고 또 다짐해도 늘 교실을 치울 때면 함께 교실에서 지내던 아이들에 대한 애틋함과 미안한 감정이 차오른다.


  올해는 잠시 학교 현장을 떠나는 해. 켜켜이 쌓인 추억과 새해 다짐을 가득 담은 짐을 새로이 옮겨 넣을 교실이 내게는 없다. 고스란히 집안 구석진 곳으로 옮겨져 내년 이맘때쯤, 육아휴직을 하게 된다면 내후년 이맘때쯤 다시 빛을 보게 될 짐들을 보며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상상하다 보니 어느덧 해솔이를 하원시키러 갈 시간이 되었다. 이렇게 또 청소의 마무리를 다음으로 미루게 되었다. 벌써 청소만 며칠째인지, 마무리가 미루는 것을 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교에, 그리고 우리 교실에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이렇게 나는 내일도 못 이기는 척 교실 청소와 짐 옮기기를 핑계로 출근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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