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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원 Feb 17. 2024

과자 집을 짓자

  "아빠 과자 집 만들기 언제 해요?"


  눈을 뜨기가 무섭게 해솔이가 물었다. 마치 내가 눈을 뜨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오늘은 해솔이와 과자 집을 만들기로 한 날이었다.


  며칠 전부터 그림책에서 본 과자 집이 만들고 싶어 함께 만들자며 노래를 부르던 딸내미. 나도 과자로 만든 집은 동화 속에서나 구경해 봤지만, 딸내미의 소원이 너무나 간절해서 어제 해솔이의 하원길에 함께 마트에 들러 소박하지만 아빠와 딸의 취향이 골고루 섞인 자재들을 준비해 두었다.


  먼저, 집의 형태를 만들기 위해 종이 상자 위에 초코 잼을 접착제 삼아 비스킷을 붙였다. 평소에는 참을성 있게 잘 기다리는 딸내미이지만, 오늘은 참기가 좀 힘들었던 모양이다. 해솔이가 나의 비스킷을 집고, 초코 잼을 바르고, 상자에 붙이는 손길이 이어지는 순간마다 "언제 과자 집이 만들어져요?"하고 재촉하는 통에 절로 식은땀이 흘렀다.


  상자의 면을 따라 비스킷을 붙이고, 초콜릿 과자로 어설픈 지붕을 얹기가 무섭게 기다렸다는 듯 해솔이의 집 장식이 시작되었다. 집을 만들기 전에 낭비되는 과자도 줄이고, 만들고 난 후에 과자도 적당하게 먹일 생각으로 과자는 필요한 만큼만 뜯기로 약속했었는데…. 약속은 기억조차 안 나는지 분주하게 과자를 뜯고 바닥을 장식하는 해솔이의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아빠가 만든 어설프고 황량한 판잣집이 딸내미의 손길을 거쳐 예쁜 정원이 있는 과자집으로 변했다.



  집이 완성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지만, 집이 무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빠 괴물과 해솔이 괴물, 그리고 해담이 아침을 먹이고 합류한 엄마 괴물의 협공이 시작되었다. 아빠 괴물은 바닥에 널브러진 집의 잔해를 곁들여 모닝커피까지 진하게 한 잔 마셨다. 그렇게 오늘의 과자 집 만들기는 사진 속, 그리고 나와 딸내미의 머릿속에 추억의 한 조각을 남기고 흔적도 없이 뱃속으로 사라졌다.


  그림책에 나온 것처럼 예쁜 집은 아니었지만 아빠와 함께 과자 집을 만들고 맛있게 먹었던 오늘이 즐거웠다는 해솔이. "다음에는 어떤 과자 집을 만들까?"라고 물으며 벌써부터 다음 작품을 구상하는 듯하다. 나도 딸내미 덕분에 어릴 적부터 동화 속에서만 보던 과자 집을 만들어 보는 호사를 누렸다. 아이와 함께 노는 시간은 동심으로 돌아가기 가장 좋은 시간인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다면 게걸스럽게 과자를 먹어치우는 우리 부녀의 모습에 화들짝 놀란 아내가 2호 과자 집 건축 허가를 내줄지는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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