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읽는 눈
처음 미국이 건국되던 시기, 유럽과 아시아의 ‘올드 월드(Old World)’ 인구는 새로운 기회를 찾아 대거 ‘뉴 월드(New World)’라 불리던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주했습니다. 국제분쟁과 전쟁, 종교 박해 등 피할 수 없는 이유도 있었지만, 당시 중산층 또는 중하층 이민자들의 이면엔 "나도 한 번 잘살아보자!"는 간절한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기득권층의 견고한 신분 장벽, 카르텔, 세습 구조 — 올드 월드에서 절대 넘을 수 없던 이 장벽들을 허물 수 있는 ‘기회의 땅’이 신대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1900년대를 전후해 수많은 이민자들이 미국으로 향했고, 이 중 일부는 기업가로, 노동자로, 예술가로 성공을 거두며 이른바 ‘아메리칸 드림’을 상징하는 신화를 만들어냈습니다. 록펠러, 앤드루 카네기, 헨리 포드와 같은 인물들이 이 시대를 대표하죠. 이민자의 자식이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은 당시 미국 사회의 가장 강력한 ‘드림 마케팅’이기도 했습니다.
19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저 역시 그런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자랐습니다.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루던 한국도 미국 미디어의 영향권 아래 있었고, 저 또한 잔디밭이 펼쳐진 미국식 주택에서 사는 꿈을 꾸며 교복을 입고 등교하던 소녀였습니다. 미국은 넓고 자유로우며, 기회가 넘치는 곳으로 보였죠.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단단했습니다.
이미 이민자 포화상태에 이른 미국에서, 스무 살 한국 여성이 홀로 진입할 수 있는 경로는 극히 제한적이었죠. 시민권자와의 결혼? 당시 저로서는 낯설고 비현실적인 선택이었고, 무엇보다 저는 ‘결혼이민’보다는 ‘주체적인 탈출’을 꿈꿨던 사람이었으니까요.
그때 운명처럼 한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중동 항공사 승무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됩니다.
"집도 주고, 직업도 주고, 월급도 준다고?!"
20대 구직자에게 그보다 매력적인 조건이 있을까요?
그래, 여기서 일도 하고, 여행도 하고, 돈도 모으고, 경력도 쌓고... 그러다 보면 길이 보이겠지!
그렇게 스물세 살의 저는 인터넷에서 짜깁기한 정보만 들고, 참치캔을 바리바리 싸서 중동으로 날아갑니다.
fast forward to now — 눈 깜짝할 새, 20년이 흘렀습니다.
북한 장교 같은 유니폼을 입고 참치캔으로 끼니를 때우던 스물세 살 소녀는
이제 두 아이를 키우는 사십 대 워킹맘이 되었습니다.
과연, 부모님의 금전적 지원 없이 ‘중산층 수저’를 들고 떠난 저는 두바이에서 꿈을 이루었을까요?
잔디밭이 펼쳐진 뒷마당은 아니지만, 손바닥만 한 가든이 딸린 이층집.
다정한 남편, 건강한 딸과 아들, 상주 메이드, 그리고 매년 두 달씩 이어지는 여름휴가.
이쯤이면 제가 어릴 때 상상했던 ‘드림의 형태’와 꽤 닮아 있지 않나요?
두바이 드림의 시작은 단순합니다.
세금 감면, 주거비 지원, 학비 보조, 연금 없는 고임금 등 한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근로조건이 핵심이죠.
제가 중동에 입성하던 2000년대 초반, 항공사는 크루 전용 풀빌라 숙소, 공항 왕복 셔틀버스, 유니폼 세탁 서비스까지 제공했습니다.
필요한 모든 생활 인프라가 제공된 덕분에, 정말 '모으려고 마음먹으면' 꽤 모을 수 있었던 환경이었죠.
"기회의 땅"은 시대에 따라 바뀝니다.
한때 미국이 그러했듯, 지금의 두바이는 많은 이들에게 새로운 ‘드림의 목적지’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두바이 역시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비자 체계, 노동시장의 유동성, 장기 체류의 불안정성 등 장벽도 존재하지요. 하지만 '나의 능력만으로 삶의 판을 바꿔보고 싶은 사람'에게 두바이는 여전히 열려 있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입니다.
20년 전, 참치캔을 들고 도착한 저는 이제 이 도시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꿈꾸는 또 다른 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아메리칸 드림이 저물어 가는 지금, 두바이 드림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그건 꿈이 아니라, 내가 직접 설계하고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일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