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23일,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연합(EU)을 향해 6월 1일부터 50%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이틀 뒤, EU 집행위원장인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과의 통화 직후, 관세 시행일을 7월 9일로 연기한다고 발표하며 한 발 물러섰습니다.
이번 결정은 트럼프 행정부 특유의 '압박 후 협상' 전략의 연장선으로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보다 구조적인 문제가 숨어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랫동안 EU를 "미국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라고 비판해왔습니다. 그는 EU의 부가가치세(VAT), 디지털세, 각종 비관세 장벽을 불공정 무역 관행으로 지목하며, 약 3,000억 달러에 이르는 대EU 무역적자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EU 역시 쉽사리 물러설 수는 없습니다. 27개 회원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EU 특성상, 미국의 일방적 요구에 응하기는 구조적으로 어렵습니다. EU는 "위협이 아닌 상호 존중"을 강조하며, 외교적 원칙을 고수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대EU 무역적자를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흥미로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전체 무역적자의 약 3분의 2가 제약 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수치는 단순한 교역 불균형이라기보다는, 다국적 기업의 세금 전략에 더 가깝습니다.
미국의 주요 제약 기업들은 세율이 낮은 아일랜드 등 EU 국가에 생산 거점을 마련하고, 이들 제품을 미국으로 역수입하는 구조를 취해왔습니다. 2017년 트럼프 행정부가 단행한 세제 개편 이후,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실제로 제약 분야는 미국과 EU 간의 관세가 이미 0%입니다. 무역장벽이 없는 상태에서도 무역적자가 발생한다는 점은, 이 문제가 통상적인 무역정책의 영역을 넘어선 구조적 과제임을 시사합니다.
현재 양측의 협상 테이블에는 디지털서비스세 폐지, 농산물 검역기준, 의약품 가격 책정 등 다양한 의제가 오르고 있지만, 정작 무역적자의 핵심인 제약 산업 구조 문제는 논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습니다. 이는 무역정책이 세금 정책에서 비롯된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본질적으로 한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7월 9일까지의 협상 기간 동안, 양측이 이 같은 구조적 불균형을 어떻게 인식하고 대응할지 주의 깊게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문제의 뿌리가 세금 체계에 있는 만큼, 그 해법 또한 무역 협상이 아닌 보다 근본적인 접근을 요구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