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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언어의 집 Apr 27. 2022

사회적 처벌 맥락을 즐기는 한국인들

사회적 처벌 맥락에 깃들어있는 "망신 서사"

표지 사진 출처 - KBS




몇 개월 전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 자주 눈에 뜨이던 쇼츠 영상이 있었다.


바로 미국 여가수 아리아나 그란데(Ariana Grande)가 켈리 클락슨(Kelly Clarkson)의

Stronger라는 노래를 지미 팰런(Jimmy Fallon) 라이브쇼에서 부르고 있는 30초짜리의 영상이다.


해당 쇼츠 영상의 링크는 다음과 같다.


영상 링크 -  https://youtube.com/shorts/AbuFLoSRHyk?feature=share




어느 날, 나는 또 이 영상을 보며 노래를 듣고 있었는데,

이 영상이 어떤 방송에서 나온 영상인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짧은 쇼츠 영상이 아닌 본래 방송의 영상을 찾아보았다.




영상 링크 - https://www.youtube.com/watch?v=wUDbxd54lnw

조회수 1000만 이상!   Jimmy Fallon hosts the ultimate karaoke party!




찾아보니 이 영상은  Jimmy Fallon이 진행하는 예능 토크쇼의(간단히 Jimmy Fallon 쇼라고 하겠다.)

일부였고 당시 아리아나 그란데는 토크쇼에서 "가사 맞추기 게임"을 하고 있었다.

가사를 틀리게 말하면 마이크에 설치되어 있는 스프레이를 통해 물이 분사된다.


마치 옛날에 방영했던 한국의 예능 '쟁반 노래방'처럼 출연진들이 "가사 맞춰 부르기 게임"을 하면서

가사를 잘 맞춰 부르면 벌칙을 당하지 않고 만약 가사가 틀리면 벌칙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영상을 한참 집중해서 보다가 한국의 예능 방송과는 조금 다른 느낌을 받았다.



출처:The Tonight Show Starring Jimmy Fallon  / 분사되는 물을 자연스럽게 피하는 모습, 한국의 예능에서 처벌을 피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힘들다.


위의 영상에서 아리아나 그란데가 Stronger을 부르다 가사를 까먹은 후 물이 분사되었는데,

한국의 예능에서 가하는 벌칙의 수위를 비교하면 처벌의 수위가 훨씬 약하게 느껴졌다.


벌칙을 당하는 출연진들도 물이 분사되니 무서워하기는 하지만,

한국 예능에서 연출하는 벌칙의 강도보다 훨씬 약했다.  

작은 물의 방울방울들이 몸에 닿는 정도이고

출연진들이 자신의 팔을 이용해 물을 막거나 피하는 행위 또한 자연스럽게 허용이 되었다.



나는 이 영상을 보면서 우리나라 예능에서 나오는 벌칙의 수위가 미국보다는 비교적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앞서 말한 쟁반 노래방의 경우도 꽤나 높은 곳에 매달아 놓은 커다란 쟁반을

그대로 머리 위로 떨어뜨리는 벌칙이 있었다.

커다란 쟁반이 세게 떨어지는 것과 그 쟁반이 머리에 부딪히면서 큰 소리를 내는 것,

그리고 쟁반을 맞고 아파하는 출연진들의 모습 등

세 요소가 합쳐져 웃음 포인트로 작용했다.


2000년대 초반 "위험한 초대"라는 방송에서는 특수 의자를 통해 문제를 맞히지 못할 시

수영장으로 날려버리기도 했다.


2000년대 초반 인기 있는 예능이었던 "위험한 초대" / 사진 출처 - KBS


출연진들이 문제를 못 맞히면 의자가 뒤집어져서 의자에 앉아있는 출연진을 수영장으로 날려버린다.

특히 이 방송은 처벌의 수위가 비교적 강하고,

그에 따라 연출되는 출연진들의 소스라치게 놀라는 반응과 벌칙을 피하게 위해

서로 경쟁하는 상황을 통해 많은 한국인들에게 웃음을 주었다.


나 또한 매우 이 방송을 재미있게 보았고 나에게 이러한 방송들은 어렸을 때의 좋은 억 중 일부로 남아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이러한 강한 처벌의 수위는 한국 예능 몇몇 방송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사진 출처 - SBS 런닝맨


사진 출처 - KBS 1박2일





그렇다면 아리아나 그란데나 다른 미국의 셀럽들에게 위와 같은 벌칙을 수반하는 방송에 출연하는 것을

요구할 수 있을까?


만약 그것이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쇼 중 하나라면 아리아나 그란데가 잠시 고민은 하겠지만,

결국에는 거절을 할 것이라 생각이 된다.


한국의 예능의 수준이 떨어지고 미국 예능의 수준이 높아서가 아니라,

(이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개인의 몫이다.)

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로는

미국인이 수용할 수 있는 상황의 맥락과

한국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의 맥락에 있어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적 규칙을 어겼을 때 수용할 수 있는 유•무형의 처벌에 대한 수용의 범위가

미국인은 좁은 반면에 한국인은 비교적 넓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물론 내부에서 보았을 때는 매우 다양한 문제가 또 나름 많을 수 있지만,

우선 일상의 맥락에서

개인 그 자체 혹은 개인의 자기표현이

사회적 규칙보다 중요시된다.


사회적 규칙 또한 개인의 자기표현을 훨씬 더 원활하게 하는 수단으로써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기준과 규칙이 존재하는 이론의 영역이 아니라, 새로운 사건들이 발생하는 개개인의 일상에서 말이다.)




하지만 한국인의 일상을 보자면,

가정 내에서부터 상호 간의 합의된 사회적 규칙을 우선시하여

소통의 맥락이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


양육자, 주로 어머니와 양육의 대상자인 아이들 간에

주로 합의되는 사회적 규칙은

단연코 교육과 관련한 규칙들이다. 


매일매일 반복되는 일상의 현장에서

집 안에서 양육자와 아이들이 대화를 한다고 할 때

'학원에 갔냐 안 갔냐', 혹은 '공부를 했냐 안했냐'등과 같은

교육에 관한 규칙과 약속이

무엇보다 중시되며,


양육자와 아이들 간 상호 합의 하에 맺어진 사회적인 규칙,

예컨대 '학원에 가기', '숙제 하기', '공부 하기' 등의 규칙을 아이가 어긴다면,

아이의 숙제를 하기 싫은 아이의 마음과 감정에 대한 소통보다는

우선적으로 아이들에게 명시적•암묵적 처벌가해지는 경우가 많다.


또한 한국에서는 가정뿐만이 아니라,

학교라는 사회에서도

개인의 자기표현에 대한 의미 있는 존중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자기표현보다 사회적 규칙, 그로 인해 파생된 공동의 작업•업무가 훨씬 중요시되며

자기표현은 사회적 규칙 이행과 성립에 있어 보조적인 수단으로 기능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사회적 규칙을 어기는 행동을 할 때,

이를 자기표현의 일종으로 대한 다기보다는 처벌과 교정의 대상으로만 대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고

대부분의 처벌은 벌점 부과 혹은 벌세우기 등의 모습을 띠지만,

이와 동시에 암묵적인 차원에서 '사회적 수치와 망신주기'가 이루어진다.


우리는 학창 시절 때

반에서 한 아이가 엉뚱한 행동을 한 후,

학생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벌을 서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한국 사람들은

사회적 규칙의 불이행이 사회적 처벌로,

그리고 그 처벌이 사회적 수치와 망신으로 흘러가는 이 '흐름'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었다.


사회적 규칙 불이행 ->
사회적 처벌 ->
사회적 수치와 망신



그러므로 한국인은

사회적 처벌 맥락과 그 안에 깃들어있는 '망신 서사'에

미국인들보다 비교적 익숙하며

좀 더 수위가 센 사회적 처벌의 맥락을 수용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은 혼자 살지 않고 타인과 함께 살기 때문에

공동체의 존립과 유지를 위해서라도 사회적 규칙은 중요하며

이러한 규칙을 어기거나 어지럽히려는 자에게는

처벌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회적 규칙을 흔들거나 공동체의 안위를 위협하려는 의도가 없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회적 처벌과 사회적 망신을 주려는 반응만 주로 이루어진다면,

이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자기표현을 막는 것이 되며

다양한 사람들의 주체적인 삶을 방해하는 폭력이 된다.



기표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명시적 폭력이 아닌
맥락*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 폭력




단순히 개인의 자기표현일 수도 있는 행위에 대해

사회적 처벌로 반응하는 폭력에 대해 아무런 저항감이 없고

이것이 오히려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사람이 많다면,

그 사회는 암묵적 폭력 노출이 만연하게 이루어지는 사회라 할 수 있다.



사회적 처벌의 수위가 미국의 예능과 한국의 예능에서 다르게 나타나는 사실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면서

우리 한국 사람이 사회적 처벌의 맥락을 즐기는 이유가

사실 우리가 이러한 폭력이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자주 노출이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처벌과 망신은 어떠한 집단에서나 존재하는 사회적 작용이지만,

그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자주 이루어지는지 아닌지에 따라 서로 다른 집단의 구성원이 어떠한 맥락을 좋아하고 어떠한 맥락을 싫어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요즘에는 벌칙과 처벌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혹은 한 개인의 생활과 이야기를 들어가면서

시청자들의 재미를 충족시켜주는 방송이 많이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러한 변화가 이루어지는 이유에는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점차 시간이 흐를수록 한국인들이 공유하고자 하는 맥락이 미국,

혹은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보편적인 맥락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맥락
내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맥락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인 의미로 쓰이는 '맥락'이 갖고 있는 말도 일부 포함할 수 있지만, 완전히 같지는 않다.

정신분석적 차원에서 맥락이란, 인간의 기의가 기표화를 거쳐 기표가 되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감각(육체적 감각뿐만이 아닌 감정까지 포함)'으로 전이되는 상황에 대한 암묵적 규칙과 감정적 차원의 질서(분위기)를 의미한다.
 저자의 여러 글에서는 '소통 맥락', '감정 맥락', '상황 맥락', '서사 맥락' 등으로 등장한다.
맥락이란 개념은 본 저자가 마음숲 심리상담센터 소장 윤지원 정신분석가로부터 그가 스스로 창안한 '심리서사분석' 이론과 치료법을 배우고
저자 본인이 대인관계에 관한 자기분석 과정에서 창안해낸 개념이며 이에 대한 저작권은 상징과맥락 작가에 있다.

맥락은 기의가 기표화 과정을 거치면서 형성되기도 하고, 기의가 기표화 과정을 거쳐 탄생한 기표 그 자체 또한 맥락을 만드는 독립적인 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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