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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운 Apr 23. 2021

행복도시 세종에서의 새로운 시작을 회상하며

참여정부에서 결정된 행정부의 세종 이전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백지화 시도가 무산으로 끝나자 이명박 정부 말에 본격 이전이 시작되었다.


당시 정부의 전폭적인 지지가 없는 상태에서도 계획된 일정대로 이전을 위해 행복청(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 직원들이 사업시행자인 LH 세종본부와 함께 힘겹게 백지화 시도로 지연된 사업의 속도를 높이고 최대한의 기반시설을 마련하려 했던 열정과 노력으로 부족하나마 원만히 이전이 추진되었다.


제1단계 이전계획에 따라 2012년 9월 국무조정실이 먼저 이전하고 2012년 12월말  까지 기획재정부, 환경부, 당시 국토해양부, 공정거래위원회 등  6개 부처와 6개 소속기관이 이전하였다. 정부기관 세종 이전 백지화 시도 등 매우 어려운 여건하에서도 정부기관 이전의 임무를 완수한 행복청의 노력에 대하여 높은 평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시 국토해양부의 항공정책과장이던 나는 과천에 거주하고 있었다. 나는 주거지를 전격적으로 옮겨야 할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특히 나와 같이 과장급 이상 나이가 많은 공무원들은   자녀교육 문제, 배우자의 직장문제 등으로 세종으로 이사를 하는 것은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수도권에서 주거지를 유지하고 세종에서 근무할 수 있는 여유로운 여건도 아니었고 이중 살림하는 것도 싫어서 옮겨 가기로 마음먹고 소속 부처인 국토해양부의  이전 예정일 4개월 전인 2012년 8월에 먼저 세종시로 이주하였다.

 

 당시 세종시에 거주 가능한 주거지는 첫마을 1단계와 2단계  아파트가 유일하였기 때문에 기왕에 세종시로 이전을 할 것이면 미리 이전해서 정착하는 것이 경제적 부담의 경감 등 모든 것에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그리고 이곳에 평생 거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러한 판단이 우연이기는 하겠지만 일명 ‘행복도시’인 세종시 신도시 지역을 건설하는 행복청 도시계획국장으로  3년 9개월 일하는 것으로 연결되었다. 행복도시 건설이 본격화 되는 단계에서 장기간 건설사업에 참여한 나로서는 이제 이곳이 나의 ‘제2의 고향이다’라고 생각하고 평생 살겠다는 결심이 확고해 졌다.


지금 와서 되돌아보면 내가 건설에 참여했던 행복도시가  성장하고 변화하는 것을 보는 것이 커다란 즐거움이기도 하고   많은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면서 잘한 결정이었다고 생각한다.


2012년 8월 무더운 여름날 공사 준공이 완료되어 입주가 시작된 첫마을 2단계 아파트에 입주하였다. 2009년 초 필리핀 마닐라의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에서 근무하다 귀국했을 때 과천의 재개발 새 아파트에 전세로 입주하여 거주하였는데 또다시 새 아파트의 냄새를 맡으면서 입주하는 기분도 그에 못지않게 가슴이 설레고  좋은 일이었다.


아직 정부 기관이 이전되지 않은 상태라서 야간에 보면 각 단지별로 불과 몇 호 정도 불이 켜져 있었고, 아파트 전체 단지 내에 미니 슈퍼가 달랑 2개가 있는 상태였다. 야간에 슈퍼에 물건을 사러갈 때 정말 인적도 드물고 조용한 여름밤을 우리 가족은 매우 호젓한 느낌으로 보냈다. 마치 주말에 지방 좋은 곳에 있는 콘도에서 휴양한다는 느낌으로 무더운 여름을 즐겁게 보냈다.


토요일 아침 건너편 야산에서 토지조성 작업을 하느라 포크레인으로 바위를 깨는 소리에 전날 밤 정부 과천청사에서 퇴근 버스에 몸을 싣고 돌아와 홀가분하게 자던 단잠을 깨는 일이 수개월 동안 지속되었다.


1998년 미국 유학 당시 방학기간 동안 여행  했던 미국 서부의 애리조나와 유타 지역에 지각변동으로 땅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어지러운 자연상태를 다시금 보는 듯, 야산이 허물어져 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고 재미였다.


지금 그 부지조성 현장은 내가 행복청 도시계획국장으로 근무 시  건설사업 추진을 승인하였던 아파트와 상가로 가득 채워져 있다.  지금의 세종시는 천지개벽을 해도 몇 번은 하였다.


국토해양부가 세종으로 이전하는 12월까지 세종에서 새벽 6시 조금 넘은 시간에 출근 버스에 서둘러 올라타서 과천청사로 1시간 40분에서 2시간 정도 걸려 출근을 하고, 퇴근 시간에는 또 허둥지둥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서둘러서 퇴근 버스를 타고 내려오는 일상을 반복하였다.


출퇴근을 잘하는 것이 하루의 큰 일이 되었다. 퇴근하고 나면 바로 또 일어나서 출근하는 느낌이었다. 행복도시 첫마을 입주 초기에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아  여유롭게 혼자 좌석에 앉아 출퇴근하였다.


그러나  정부이전 시기인 12월이 가까워져 오면서 세종으로 이사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이 늘어나고 버스타는 것조차도 경쟁적으로 되었다. 때로는 갑자기 늘어나는 수요때문에 좌석이 없어 입석으로 세종으로 내려오기도 하고 수원으로 가서 무궁화 열차를 타고 조치원역을 거쳐 오기도 했다.

 

과천에서 세종으로 퇴근하는 금요일 저녁은 매번 가슴이 설레이고 주말 한적한 곳의 콘도같은 새 아파트에서의 생활과 금강을 포함한 인근 지역을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였다.


첫마을 수질복원 센터에 조성된 테니스코트를 우연히 발견하고 클럽에 가입하여 주말마다 테니스를 칠 수 있었던 것도 큰 재미의 하나였다.

이전 공무원들이 아닌 대전과 청주 등에서 이주한 지역주민들과의  새로운 만남과 교류도 또 하나의 재미였다.


나중에 정부 세종청사 스포츠센터가 완공되어 그곳의 테니스장을 이용하게 되자 행복도시 첫마을 아파트가 있는 한솔동의 동명을 따서 '한솔 테니스클럽'이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다. 한솔 테니스클럽은 '행복 중심 한솔! 대한민국 중심 한솔! 테니스 중심 한솔!'이라는 거창한 캐치 프레이즈도 만들어서 테니스 발전을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2012년 12월 세종시로 이전한 공무원들은 스스로를 과장되게 난민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세종시로 이주 결정을 하지 못해  출퇴근 버스로 수도권에서 오가야 하는 공무원들의 나날은 매일 출퇴근을 걱정하고 비좁은 버스에서 선잠을 자는 피곤함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었다.


먼저 세종으로 이주를 결정하고 4개월 정도 과천으로 역출근하는 어려움을 거쳐 세종에 정착을 한 나로서도 공무원들이 무리를 지어 수도권 지역으로 매일 출퇴근하는  광경을 보면 안쓰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초기에는 구내식당도 비좁고 불편해서 외부 식당에라도 가려면 신도시 지역인 행복  도시 내에는 내가 이주한 첫마을 식당가뿐이어서 많은 공무원들을 수용하기에 한계가 있었다. 대기중인 출퇴근 버스를 이용해  여러 부처 직원들이 함께 타고 20~30분이 걸리는 조치원읍이나 외곽 한적한 곳에 있는 식당으로 식사하러 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출퇴근 버스가 관광버스가 된 듯하였다. 불편하기는 했으나 가끔 버스를 타고 외식을 하는 점심시간은 관광을 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추억이었지 않나 한다. 웃지 못할 서글픈 추억이지만!


당시 지역사회에서는 왜 출퇴근 버스를 운행하여 공무원들이  세종에 이주하지 않느냐는 비난이 있었다. 여전히 열악한 거주  환경인 상태에서 상급학교 진학을 준비하는 고학년 자녀를 두고  있거나 수도권 직장에 근무하는 아내와 함께 이전하는 것은 입장을 바꿔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전 공무원들이 비좁은 출퇴근 버스에 매일 몸을 실어야 하는 고충에도 불구하고 이주할 수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였다면 좋았겠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이주를 강제할 수는 없고 개인적 사정을 고려하여 점진적인 이주가 이루어져야  당연한 것이 아니었을까? 일찌감치 행복도시 주민이 된 나로서 감히 얘기한다면 지역 이기주의였다고 본다.


 여건이 많이 좋아진 지금은 많은 공무원들이 세종으로 이전해서 쾌적하고 만족한 삶을 누리고 있다. 여전히 나이가 많거나 정년이 얼마 남지 않은 공무원들은 이중생활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앞으로 국회가 이전하게 된다면 더욱 좋은 여건이 갖추어져서 국회 직원들이 경쟁적으로 세종에 이전하고 싶어할 것이다. 행복도시가 모두의 부러움을 사는 살기좋고 특별한 도시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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