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구필름이 벗겨지고, 문짝의 먼지는끈적한 퇴적층처럼 들러붙어서 물걸레질로는 닦이지도 않는다.
물론 아내나 나나 단 한번도 문짝은 닦는것이란 생각을 해본적도 없다. 그런건 부잣집에서 일하는 아줌마들이 해주는 거라고 드라마가 알려줬기 때문이다.
대신 cf속의 아내들은 거대한 드레스룸의 예쁜 옷장을 보며 행복해 하던데, 그런면에서 아내는 오래된 옷장을 남편보듯이 한다.
새 가구를 살 생각도 해봤으나, 내부는 휘어짐도 없이, 얄밉게도, 아직 튼튼하다.
무엇보다 이 큰 옷장을 빼내고 또 새로운 녀석을 넣고 하는 과정이 대공사처럼 느껴진다.
가구값 수백만원이야 뭐... 아내를 위해서라면...그까이꺼 쏘주 한두잔 안 마시면....쿨럭....-_-:::
문짝만 교체하는 건 어떠냔 아내의 제안에, "아이, 새 거 사주고 싶은데..."하며 돌아서서 가슴을 쓸어내린다.
대부분의 저렴한 옷장은 MDF합판에 나뭇결필름이나 디자인필름을 붙인 경우이다.
이미 떨어진 필름자리에 다이소에서 산 필름을 대체했었으나, 그것마저 수명을 다해버렸다.
기존의 문짝을 떼내는 일부터 시작한다.
15mm라왕합판을 뚫어 새 문짝을 만든다. 싱크경첩을 뚫는 도구로 간단히 정확한 위치에 구멍을 뚫는다.
전문공방 혹은 가구업체에서나 하는 작업같았는데, 조금만 검색해보니 별일도 아니다.
옛날 목수들이 5년동안 숙련한 정도는 요즘장비로 며칠이면 얼추 비슷하게 해낼 정도의 세상이 되었다는 어느 목수의 말이 실감이 된다.
단 며칠만에 모두 전문가가 되는 세상인데, 그렇게 쉬운 세상인데, 이도 저도 아닌 나의 유일한 장애물은 단지 그 문턱에서 한발을 들이지 못하는 내 망설임뿐일지도.
붙어있던 경첩은 15년이 지났음에도 멀쩡하다. 사람으로 치면 무릎연골이다. 내 연골은 이미 삐그덕거린지 오랜데, 너는 부럽게도 멀쩡하구나...
연골...아니 경첩은 재사용하기로 했는데, 손잡이가 의외로 비싸다.
아내가 선택한 건 대략 하나에 1만5천원정도.
나무손잡이를 직접 만들고 싶었으나, 매일 금을 만지는 착각이라도 느껴보려는 아내의 선택이 돋보인다.
스테인의 색깔은 전체적으로 도토리색이다.
한가지 색이 너무 넓게 퍼져있으면 단조로워보여서, 한쪽엔 멀바우색으로 변주를 좀 주었다...는 건 아내에게 한말이고, 사실 처음에 썼던 멀바우색 스테인을 다쓰고 새로 구하지 못하는 바람에 만들어진 창작물이다. 모든 위대한 발명은 실수에서 비롯되었다는 말이 새삼 가슴에 와 닿는군.
비용:
15mm라왕합판 5개 =대략 5만1천원X5개=약 25만원 (짜투리가 많이 남았다)
본덱스 수성스테인(도토리색)250ml 3개 =8,300X3개=약2만5천원
본덱스 반광 바니쉬 500ml 1개 = 18,500원
손잡이 15,000원X7개 = 10만5천원
아랫칸 수납장의 ㄱ자 꺽쇠 = 1만5천원정도.
총비용 대략 40만원.
만약, 아내가 이 과정을 모르고 새가구를 원하는데 이틀만 집을 비워준다면,200만원에 새 가구샀다하고, 160만원을 꿀꺽할 수 있다는 결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