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 작 Nov 16. 2023

망치들고 공상에 빠지면 안되는데

쥐꼬리만한 돈으로 페르시안고양이꼬리처럼 고오급 책장을 만들기

어느 집을 막론하고 집안 몇군데는 블랙홀이 있다.

3년전 명절에 넣어놓은 명태전을 발견하고 경악하면, 그 밑에는 5년전 돌잔치에서 받은 떡이 나를 비웃고 있는 냉장고 냉동실이라든가.

영화 [기생충]처럼 누군가 이 안에 살고있나?싶을 정도로, 내가 모르는 양푼이와 그릇, 텀블러 등등이 들어찬 싱크대 아랫수납장이라든가.

손님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책장이라든가.

보이지 않는 곳에 두는 모든 것이 그렇듯, 특히 책장은 수용하는 카테고리가 굉장히 넓다.

결혼직후에 한번 본 이후, 전설의 마법책처럼 다시는 열리지 않는 결혼앨범들.

아이가 유치원때부터 만들어낸 너무 사랑스럽고 소중해서 버릴 수 없는  그림스케치북 쓰레기들.(보통은 아이가 장차 결혼할 때 그 배우자에게 보여주겠다는 일념으로 보관하는 의지의 산물)

두 번 만들고나서는 사먹는게 정신건강에 좋다는 걸 깨달아버린 대여섯가지의 베이킹책들.

결혼전에 각자가 똑같은 책을 가지고 있단 사실을 알고, 이건 서로가 인연이다! 싶었는데, 정작 두 사람 다 끝까지 읽지도 않은 두권의 [그리스인 조르바]까지 말이다.


싸구려 MDF(톱밥과 접착제로 만들어진 합판. 주로 최저가 싱크대나 가구제작용으로 쓴다)로 만들어진 책장이 있었으나, 몇년만에 이 모든 책 무게로 인해 실직한 가장처럼 등허리가 휘어버린지 오래.

이 블랙홀을 붙박이책장 화이트홀로 바꿔보기로 했다.

 


벽에 한치각재를 CT64타카 ST핀을 사용해 박는다.

각재 위아래 5mm합판을 붙이고, 정면에서 보이는 부분은 합판을 켜서 쫄대로 만들어 붙인다.

제일 아래는 큰앨범과 파일첩, 이제는 반항아가 되어 밉살스런 아들의 예쁜쓰레기들을 넣을 공간을 40cm높이로 크게 만든다.

수납장의 문짝은 15mm 라왕합판을 사용했다.


목재중에 상당히 비싼 '멀바우나무'로 만든 합판을 쓰고싶지만, '멀바우색' 스테인을 바르기만 해도 고급스럽다.

아리수를 에비앙생수병에 담아서 주면, "음~ 역시 에비앙이야!"라며 마시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작은 만화책을 두 줄로 올리기 위해 선반의 너비도 40cm정도로 만들었다.

하지만 앞뒤로 나란히 책을 두면, 뒷열의 책은 일평생 남뒤에 가려져서 살았던 내 인생처럼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기다란 시상식 단을 만들어서 위로 올라올 수 있게 했다.

이제 남보기에 꽤 괜찮은 책은 앞에, 버릴 순 없으나 손님들이 시큰둥하게 볼 책은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 두면 완벽하게 처리가 된다.

책들이 너무 빡빡하게 꽂혀있으면, 사람이 너무 여유가 없어 보이기 때문에 책 진열에도 여유를 준다.

책이 잔뜩 꽃혀있다해도, 내가 그 책들을 몽땅 다 읽었을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을 없을거니까.

손님도 집주인도, 서로가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다는 걸 인정하고 살아야 마음의 여유라는게 생긴다.  

<재료비용>

목재 대략 4만원 + 경첩과 손잡이 대략 1만5천원 +고오급으로 보이는 수입 페인트 약 3만원 (1/3은 남음)

총 8만 5천원에 완성.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