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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 작 Nov 27. 2023

망치들고 공상에 빠지면 안되는데

길고양이도 쉬어가는 미니툇마루

단독주택은 대게 현관문 외에, 거실에서 바로 나갈 수 있는 큰 유리샷시문이 있다.

우리가족은 이상하게도 현관문을 놔두고, 꼭 이 샷시문으로 드나든다.

생각해보니 우리가족만 그런 건 아닌 것 같다.

MT로 간 펜션의 유리샷시문앞에 신발이 그득하게 널부러져 있는 장면이 쉽게 떠오르는 걸 보면 말이다.

원시시대부터 새겨진 인간의 DNA에는 '큰샷시문으로 다니고 싶은 유전인자'가 새겨져 있는게 틀림없다.  

나는 이 출입구때문에 아이를 자주 혼냈다.

초등생인 아들은 밖으로 나올 때, 열린 문을 잡고 신발을 신는다. 그냥 신기에는 균형을 잡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 아들의 행동이 굼떠보여 닦달한다.

"빨리 신어! 모기들어오잖아!"

"문 빨리 닫아. 집안의 고양이가 밖으로 튀어나가면 어쩌려고 그래!" 

"신발신는데 그렇게 오래 걸릴거면, 그냥 집안에서 신고 나가!!"

"아냐! 잘때부터 미리 신고 있어!"


아이에게 짜증을 내는 내 꼬락서니가 한심했다.

'편하게 신발도 신고, 문도 빨리 닫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그렇지! 우리나라에는 툇마루가 있었지!!

툇마루의 높이는 문을 열고 첫발을 디딜 거실의 높이에 맞추었다.

툇마루와 거실을 오갈 때 단차가 있으면, 무심코 발을 디디다가 허리를 삐긋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비바람이 들이칠 때, 슬리퍼와 운동화를 밑에 넣을 수 있는 정도의 높이다.

이건 예상치 못했지만, 길고양이가 우리집안을 편하게 염탐할 수 있는 높이이기도 하다.

툇마루를 만들고 나니, 문을 여닫는 일로 아이에게 짜증을 낼 일이 없어졌다.

아이가 신발을 신기 전, 툇마루 위에서 여유있게 엉덩이춤을 추었다.

그 모습을 보니, 그동안 버럭 짜증내던 생각에 미안해서 눈물이 찔끔난다.

세상의 큰일에는 분개하지 못하고, 문을 빨리 못닫는 아들에게나 짜증을 내는 '나'란 아버지가 꽤나 부끄러웠나보다.   

이런 작은 발판하나 만들 수 있는 아빠라서, 오늘은 너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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