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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빅 오픈과 상상도 못 한 빚잔치의 서막.

빚으로 빚을 갚을 수 있나요?

by 와와치

그는 두 번의 빅 오픈을 내게 선사했다. 빅 엿 급의. 한 번은 5년 간 이어오던 사업에 실패해서 큰 빚더미에 앉게 되었다고, 다음 번은 사업실패로 인한 개인회생이 폐지되어 버렸다고.


여기서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난 그의 그 어마어마한 빚이 사업실패로 인한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나에게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로 인해 죽으려고까지 했다는 그의 말 때문에 너무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빚의 규모와 세부적인 쓰임에 대해 일일이 따져 묻지도 못했다. 해명하다 보면 이 사람이 더 괴로워져서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게 너무 무서워서. 그렇게 그는 큰 빚의 정체를 잘도 숨겨왔다.


사업을 하며 생긴 빚이니까 앞으로 직장생활을 하면 이런 일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내가 아는 빚의 원인은 사업이었으니까. 그러나 개인회생을 하는 중에도 그는 매우 힘들어했고, 결국 이는 온전히 도박 때문이었다. 여러 정황을 통해 유추해 보건대, 결국 도박을 끊지 못해 개인회생 비용을 도박으로 불려 볼, 중독자 나름의 그럴싸한 계획을 세워서 끝내 다 탕진해 버렸으리라. 그러다 결국 회생이 폐지되었고, 이를 나에게 숨겨오다가 회생 마감 6개월을 앞두고 두 번째 오픈을 한 것이었다.


이때도 그는 사업실패로 마음을 잡지 못해 그랬다고 변명했다. 너무 울며 괴로워하는 그의 모습에 나는 또 사색이 된 채 바보처럼 “괜찮다, 다시 시작하면 된다”며 달랬다. 개인회생을 다시 시작하자고 나는 말했다. 이때부터는 내가 변호사를 함께 만나겠다고 했으나, 그는 극구 거부했다. 혼자 할 수 있다고, 안 좋은 모습 보이기 싫다면서. 이제 와서 보면, 빚의 원인을 내가 알까 봐 극구 거부한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며칠 후, 불쑥 회사 앞에 나타난 나를 보며 놀라던 눈빛, 진짜 변호사를 만난 게 맞는지 확인을 요청하는 내게 회사 근처에 있는 변호사사무실 위치를 알려주고는 내가 변호사를 만날까 봐 굳이 지하철 역으로 데려다주겠다던 그 고집… 나는 그런 그를 보면서 혹시 사채업자가 나를 볼까 봐 그러나 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물론 이혼하는 마지막 날까지도 정황상 그는 도박을 했다. 합의금이라 나를 속여서 매달 월급에서 백만 원을 유용했으며, 또 합의금 명목으로 내게 대출을 사정해 천육백만 원을 또 가져갔으니까. 그것도 모자라 이젠 눈에 뵈는 게 없었는지 친한 친구들에게도 꽤 큰 액수의 돈을 빌렸으며, 그 거짓 명목 또한 개인회생을 위한 합의금이었다. 그중 한 친구는 자신의 암 보험비를 군말 없이 줬는데, 이는 그가 아침까지 들어오지 않았던 날 실종신고 직전, 내가 그 친구와 통화를 하며 알게 된 사실이다. 참으로 다이내믹하게도 돈을 끌어모았고 이는 모두 합의금이 아닌 도박비였으리라. 나는 그것도 모르고 그의 거짓말에 참 오래도 속았다. 이 사람이 잘 못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나에 대한 걱정은 뒤로 미뤄둔 채로.


오픈은 도박중독자의 큰 특징이다. 도박에 빠져 가진 돈을 탕진한 후 1 금융, 2 금융, 카드론, 보험약관대출 등의 순을 거쳐 지인 빚과 사채를 쓴다. 그렇게 도박자금과 빚이 뒤엉켜 돌려 막기를 반복하다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가족에게 오픈을 한다. 눈물 콧물을 쏟으며, 죽고 싶다는 말과 함께. 이때 사업 등의 그럴싸한 핑곗거리가 없다면 차라리 다행이라고 볼 수 있다. 빚의 원인이라도 알 수 있으니까. 나의 경우는 그러지 못해 더 돌고 돌아온 케이스다. 보통 가족들은 첫 오픈한 그들의 빚을 갚아주게 된다. 이번만 구제해 주면 다시는 안 하리라는 본인의 다짐과 가족의 믿음 콜라보 때문이다. 실제로 빚 때문에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는 입장도 힘들다. 그래서 재산을 정리해 거액의 빚을 갚아주지만, 이는 큰 오산이다. 빚으로부터 가벼워진 몸과 마음은 또다시 도박을 원하고, 가족 덕에 회복된 신용으로 다시 빚을 내서 도박을 하는 루트의 무한 반복이다.


그렇다. 이는 비극이다. 도박은 결코 혼자만 망가지지 않는다. 멀쩡한 정신상태의 가족을 패닉에 몰아넣고 그들의 재산까지 다 잃게 만드니까. 더 무서운 건 그들이 오픈 전 거짓말로 가족들에게 대출을 부탁한다는 점이다. 나 또한 그 피해자인데, 그럴싸한 거짓말로 빠른 시일 안에 갚는다 장담하며 대출을 요구한다. 그간 관계가 좋았던 가족은 보통은 그를 믿고 대출을 해준다. 그러다가 도박을 오픈하면 속았다는 생각에 허탈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실망도 잠시, 중독자가 잘못될 까봐 두려워 내 빚에 대한 추궁은 하지도 못한다. 살려야겠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지배한다. 그렇게 공동의존증을 앓게 되는 것이다.


도박에 빠진 가족은 예전의 그 사람이 아니다. 같은 외형의 다른 내면을 가진 존재일 뿐이다. 오로지 돈이 목적이 된 사람, 가족의 고통을 느낄지라도 그 순간일 뿐 도박 생각만이 간절한 상태인 것이다. 경험해 본 결과, 물론 안 해봤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들을 돈으로 도우면 안 된다. 이는 상대를 더욱 중태에 빠트리는 일이며 동시에 본인의 재정 또한 파탄에 이르게 하는 길이다. 속을 당시에는 속절없겠지만, 모든 사실을 안 이후에는 중심을 잡아야 한다. 빚으로 빚을 갚을 수 없고, 도박으로 빚을 갚을 수도 없다는 것만이 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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