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야 비로소 객관적인 의견을 얻을 수 있다.
가정에서 일어난 일은 가정 안에서 해결되어야 한다?
나는 이 말을 싫어한다. 그리고 틀렸다고 본다. 저 말은 약자에게 그 상황을 그냥 견디라고 하는 일종의 압박과도 같다. 학교폭력을 겪고 있는 아이에게 학교에서 일어난 일은 학교에서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한다면, 그 아이는 도움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잃은 채 끝도 없이 무기력해질 것이다.
외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외부로의 소통을 ‘나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정말 쉽지 않다. 상황이 극에 치달아 이러다간 진짜 내가 죽겠다, 더는 못 버틴다 싶을 때, 그때조차 외부로 도움을 청할까 말까다. 그러나 용기를 내야 한다. 아주 작은 소리라도 내야 누군가 나의 상황을 알게 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벗어날 수 있는 틈이 생긴다.
전 남편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정말 갖가지 문제들이 있었지만, 나는 내 얼굴에 침 뱉기가 될까 봐, 또 내식구를 욕하기가 싫어서, 그런 사실들을 외부로 말하지 않게 되었다. 그렇게 몇 년을 지나다 보니 어느새 소통하는 사람들이 사라져 있었다. 사실을 말하기 쉽지 않으니 자연스레 내쪽에서 소통을 피해버렸고, 그렇게 친정과 친구, 선후배들로부터 멀어져 남편과의 관계로만 고립되어 갔던 것이다.
그런 중에도 나를 걱정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기적으로 나의 안부를 묻고, 기별이 없는 나를 찾아와 주는 그런 ‘진짜’ 같은 사람들이 곁에 있었다. 그들이 곁에 있었기에, 나는 오랜 기간이 걸렸으나마, 이 관계의 문제가 보통의 수준을 훨씬 넘어섰다는 것을 점차 인지하게 되었고, 그들의 도움 덕분에 스스로 빠져나올 수가 있었다. 그 안에서는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기가 쉽지 않고 상대가 지속적으로 거짓말을 할 경우에는 진실이 무엇인지 헷갈리는 지경까지 간다. 그러니 외부의 끈을 절대 놓으면 안 된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는 분명 당신을 도울 것이다.
사람들은 간혹 누군가의 오지랖을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안다. 누군가의 선한 오지랖이 때론 한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살아가게 한다는 것을. 홀로 어려움에 빠진 약자에게 적당한 오지랖을 부려도 된다는 것을, 그 행동이 먼 훗날 약해진 자기 자신을 구하는 것과도 진배가 없다는 것을. 인생이란 돌고 도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부디, 돕고 도움받자.
다시 말하지만, 가정 내의 문제가 지속될 때는 스스로 고립되지 말고 외부로 자신의 상황을 알리길 바란다. 해당되는 국가기관이나 취미모임, 친구, 가족, 동네이웃, 하다못해 브런치, 블로그, SNS 등에라도 자신의 현재 상황을 알리고 기록하기를. 문제에 매몰되어 자포자기하는 대신, 다양한 객관적인 의견을 통해 하마터면 상황에 타협할 뻔했던 자기 자신을 스스로 구하기를 바란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