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럭무럭 자라나는 청소년 도박중독자.
내가 초등학교 때… 아니지, 국민학교 시절 학교 앞 문방구에 신기한 뽑기 기계가 들어왔다. 백 원을 넣고 버튼을 탁 누르면 가짜 동전이 와르르 쏟아지는 그런 기계였다. 그 가짜 동전은 딱 그 문방구에서만 사용할 수 있었는데, 하나에 백 원의 가치를 지녔었다. 딱 한번 그 뽑기를 해봤는데 가짜 동전이 16개 정도 나왔던 걸로 기억된다. 백 원을 넣고 천육백 원을 번 셈이었다. 나는 그 가짜 동전을 집에 놓고 쓰지 않았는데, 해적들의 은화 같은 그 모양이 맘에 들어서 그랬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 또한 도박이다. 매일 방과 후 남자아이들이 그 뽑기 앞에 진을 치고 앉아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잭팟을 기대하면서.
과거에는 그나마 찾아가는 수고라도 해야 도박을 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사정이 다르다. 도박이 내 손 안으로 찾아온다. 이 편리하고 강렬한 유혹을 한창 도파민이 분출될 나이의 청소년들이 참아낼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그 도박을 바로 옆 친구가 하고 있고, 이기면 용돈 그 이상을 딸 수 있으니 도박에 중독되기가 너무나 쉽다. 요즘 아이들은 나보다 명품을 더 잘 알고 돈의 가치나 돈 쓰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도박의 유혹 앞에 말 그대로 무력할 것 같다. 게다가 온라인도박은 사다리 타기나 홀짝처럼 쉽고, 또 어릴 때부터 게임에 익숙한 아이들이기에 별다른 거리낌 없이 ‘한번 해볼까?’하는 마음으로 가볍게 접근한다. 아직 도박의 두려움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이런 특성을 이용해 사탕을 쥐어주며 도박의 세계로 아이들을 인도한다.
청소년 돈내기 경험 비율 25.8%, 돈내기 게임 최초 경험 연령 11.3세. (2023년 여성가족부 사이버 도박 진단조사) 물론 현재의 상황은 더욱 심각해 보였다. 가깝게 뉴스나 인터넷 카페글만 찾아보더라도 아이들의 인터넷도박중독은 이미 우려를 넘어선 수준이다. 아이에게 약물치료(항갈망제)를 권하는 부모들, 아이의 병원입원을 고민하며 상담하는 부모들, 도박빚 때문에 아이가 학교폭력을 저질렀거나 당했다는 글들, 도박을 못하게 하자 아이가 가출해 버렸다는 걱정들, 심지어 도박비를 달라며 부모를 폭행했다는 글까지… 어쩌다 한창 행복해야 할 아이들이 이렇게까지 되어버렸을까. 수많은 사연들을 읽다가 몇 번을 멈췄을 정도로 너무 무서웠다.
여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도박의 맛을 본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더욱 만만하게 도박을 할 수 있다. 성인도 끊기 힘든 도박을 청소년 시절에 딱 끊고 뒤도 안 돌아보기란 어불성설이다. 이 점이 청소년 도박의 가장 무서운 점 같다. 어린 나이에 이미 강렬한 도파민을 경험하고 습관이 되어버린 도박. 이러한 도박의 성격을 잘 아는 도박총판들은 청소년들을 도박에 끌어들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한다. 그들에게 청소년은 미래의 고객이자, 또래집단이라는 강한 파급력을 가진 매력적인 고객층이니까. 실제로 온라인 도박 사이트에 가입하기 위해 필요한 신상정보는 오로지 전화번호와 계좌번호뿐이다. 이름도 성도 나이도 다 필요 없다. 그러니 청소년도 쉽게 사이트에 가입해서 어떠한 제제도 없이 도박을 접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세상이 너무 무섭지 않은가?
청소년 도박중독에서 더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아이들의 범죄연루 가능성이다. 수입원이 없는 청소년 중독자들은 도박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다. 실로 경제활동을 하는 성인 도박중독자들에 비해 범죄의 비율이 월등하다고 한다. 중고거래사기를 비롯해 심지어 도박총판, 마약운반과 같은 위험한 행위도 서슴지 않고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오로지 도박비용을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도박은 바퀴벌레 같다. 아주 오랜 과거부터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기필코 번식해서 종족을 늘리는 바퀴벌레의 생명력과 도박은 닮았다. 결코 사라지지 않고 도리어 환경에 맞게 점점 진화해서 우리가 살고 있는 주변에 지능적으로 콕콕 박혀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완전히 뿌리 뽑고 싶지만 불가항력이라는 점도, 인간에게 백해무익하다는 점도, 아주 어둡고 습한 음지에 그 본거지를 둔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그럼에도 우리가 희망을 잃지 않는 이유는, 암만 징그럽더라도 바퀴벌레가 보이면 때려잡아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이라는 점 때문이다. 세상에는 물심양면 불철주야 도박을 때려잡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지금 이 순간에도 지난날 자신의 과오를 사람들에게 고백하며 도박의 무서움과 해악을 전파하기 위해 노력하는 회복자들이 있기 때문에 아직 희망이 있다. 도박을 하는, 했던 분들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전파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절대 스스로 희망을 놓지 말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등쳐먹는 세상은 지옥보다 가혹하다. 넘어져 우는 아이를 일으켜주지는 못할 망정, 손수 구덩이를 파고 올가미를 놓는 추악한 어른만은 정말 안되어야 하지 않겠나. 그 죄를 어떻게 다 씻을 수 있겠나. 인생에 끝에서야 겨우 뉘우칠 것인가 말이다. 멀쩡하다 못해 앞날이 창창한 사람들을 중독에 빠트려 망가트리는 짓은 아마도 인간이 짓는 죄 중에 가장 무겁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 그런 세상에서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와 내 주변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비통한 임무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