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도박중독자의 가장 큰 특징.

by 와와치

미국의 한 심리학 연구진에 따르면 사람은 하루 평균 200번의 거짓말을 한다고 한다. 거짓말은 도박중독자의 가장 큰 특성이다. 인간은 본래 곧잘 거짓말을 하는 존재임을 감안하고서라도 도박중독자의 거짓말은 그 규모나 파장 면에서 상상을 초월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눈 뜨고도 속을 수밖에 없다. 단, 상대가 도박을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나마 속아서 휘둘리는 일이 줄어들 것이다. 물론 빚을 터트려서 새로운 금전 압박 공격을 가해오겠지만, 그것은 그다음 문제로 일단 미뤄두고 말이다.


앞서 말했듯이 이혼 후 그의 도박중독을 알게 된 나는 이제야 눈치챈 그의 거짓말들로 정신이 혼란스럽다. 함께 살면서 크고 작은 일상 거짓말은 있을 수 있지만, 도박을 유지하기 위한, 또한 숨기기 위한 거짓말은 스토리텔링 기법의 정점에 있을 것 같을 정도로 정교하고 진짜 같아서 결국 듣는 사람의 주머니에서 돈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일단 나도 두 번(어쩌면 세 번일지도)이나 속아 대출을 해줬다. 금액을 말하면 내가 너무 가슴이 아프니까 이건 차차... 말하도록 하고.


돈도 돈이지만, 일단 그들에게는 알리바이가 필요하다. 이는 도박을 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다. 회사원은 회식이나 거래처 모임 등을 핑계대기 쉬울 것이고, 사업자도 여러 비즈니스 핑계를 댈 것이다. 대학생들은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울 것이며 요즘은 휴대폰 하나로도 언제 어디서나 도박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시간에 크게 구애받지 않기도 한다. 이는 각 도박의 성격에 따라 다를 수 있겠다. 어쨌든 그는 사업할 때는 사업 비즈니스를, 직장을 다닐 때는 회식과 거래처 모임을 핑계로 새벽에 귀가하는 일이 잦았다. 그럴 때는 꼭 음주도 곁들였기 때문에 나는 깜빡 속을 수밖에 없었다. 술과 술자리를 줄이라는 잔소리는 했을지언정 도박은 눈치챌 수가 없었기에 더욱 발견이 늦어버렸다. 이렇게 보면 겉으로 드러나는 물질중독은 그나마 타인의 도움을 받기가 쉬워 다행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도박중독은 그 상태가 심각해지기 전까지는 알아채기가 정말 쉽지 않다. 감당 못할 빚을 오픈할 때 알게 되거나, 그마저도 다른 핑계로 거짓말을 해버리면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가족이 돕기도 쉽지가 않다.


도박중독자들은 도박을 즐기는 한편 이를 자신의 치부로 생각하기 때문에 남들에게 이 사실을 숨기려고 든다. 이 때문에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게 된다. 도박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면서 자신의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 중독자들의 말을 빌리자면, 평소에는 직장이나 학교, 가정 등에서 보통사람인 것처럼 어울려 생활하다가 혼자가 되면 자신의 욕구로 돌아와 도박에 모든 걸 거는 이중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들 스스로도 자신의 상태가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다 보니 이러한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고 거짓말을 하면서 일상을 지키고 싶어 한다. 그의 경우에도 끝끝내 도박한다는 사실을 내게 숨겼으니 진실을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모양이다. 결국에는 모두 드러날 진실인데도 말이다.


그다음으로는 돈을 빌리기 위한 스토리텔링을 시전 한다. 도박을 한다고 인성이 나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평소에 성실히 쌓아놓은 관계를 바탕으로 돈이 필요한 사연을 말하면 대부분은 소액부터 거액까지 빌려주게 된다. 이는 그들이 도박사실을 숨기는 것과도 연관이 되는데, 만약 도박을 오픈한다면 가족이나 지인들이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오픈 후 대리변제의 위험성을 모른 채 어쩔 수 없이 빚을 갚아줄 수는 있을지언정, 어렵게 번 피 같은 돈을 도박자금으로 선뜻 대줄 사람은 없지 않은가. 허나 안타깝게도 여기저기서 돈을 빌리다 보면 갚을 수 없는 시점이 오기 마련이다. 도박은 잃기 게임이기 때문에. 돈을 빌리기 위한 중독자의 사연들이 전부 거짓이었으며 모두 도박자금으로 쓰인 것을 알게 된 지인들은 배신감에 그들과의 연을 끊기도 한다. 그들은 거짓말로 순간의 위기를 모면하면서 학습된 거짓말을 해왔겠지만, 결국 그로 인해 돈보다 소중한 사람과 신뢰를 잃는 비극을 맞이하게 된다.


종합하자면 도박중독자들이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결국 도박을 계속 유지하기 위함이다. 그들은 도박을 유지하기 위해 어떠한 거짓말도 불사하며 극강의 스토리텔링 능력마저 보여준다. 연기력마저 수준급이다. 그래서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는 속을 수밖에 없고 결국 돈을 빌려준다. 그들은 자신이 내뱉은 거짓말을 숨기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그런 자신의 모습에 자괴감을 느끼며 괴로워하지만, 쉽게 이 악순환을 끊어내지 못한다. 도박이란 것에 지독히 중독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들은 오늘도 내일도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을 한다.

keyword